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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조현아 사태 막는 방법은 없을까

조은아 기자 euna@businesspost.co.kr 2014-12-19 22: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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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조현아 사태 막는 방법은 없을까  
▲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18일 새벽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건을 계기로 재벌의 경영세습에 대한 사회적 경계가 높아지고 있다.

재벌가 자녀들이 능력이나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채 고속승진해서 경영에 참여하고 회사를 물려받는 데 대한 우려가 나온다. 조 전 부사장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재벌가 자녀의 잘못된 행동 하나가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상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재계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오너 자녀들이 많았다. 조 전 부사장 사건이 터지면서 임원 승진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 자녀들에 대한 불안한 시선도 집중되고 있다.

오너들도 경영에 참여하는 자녀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며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너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경영권을 물려받는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검증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 소유와 경영 분리 요구 높아져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을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재벌가의 경영세습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이들의 특권의식에서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의 변화는 오너 일가의 경영참여와 가업승계를 당연시하는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송민경 연구위원은 19일 '오너 리스크와 경영승계, 기업지배구조 관계 분석 및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은 대한항공의 오너 리스크와 핵심 경영진 승계, 회사 차원의 대응 등에 관한 종합적 지배구조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전반적 과정에서 이사회의 역할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며 "오너 리스크 대응, 최고경영자 및 경영권 승계를 책임있게 추진할 회사 내부 기구는 없으며, 정관·이사회 규정에서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권한과 책임 소재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8일 “경영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세습경영을 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이번에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적극적으로 제도화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도 최근 “이번 사건은 재벌체제의 가장 추한 모습”이라며 “만약 재벌이 대한항공처럼 가족, 개인 안에서 소유와 경영을 구별할 수 없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재벌체제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석현 국회부의장도 “이번 사건은 성격 나쁜 재벌 3세가 저지른 우발적 사건이 아닌 잘못된 재벌정책의 산물”이라며 “정부는 친 재벌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 경영승계 앞둔 재계, 자녀 임원승진 늘어

올해 경영전면에 등장한 오너 자녀들도 많다.

정몽준 전 의원의 장남인 정기선(32) 현대중공업 상무는 지난 10월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수석부장에서 바로 상무로 승진했다.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대주주다. 정기선 상무는 입사한 지 5년, 회사에 복귀한 지 1년4개월 만에 임원이 됐다.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대중공업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기선 상무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하게 될 경우 경영권 승계에 대한 명분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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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광모 LG 상무
LG그룹 오너가 4세인 구광모(36) 상무도 지난달 LG그룹 임원 인사를 통해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구 상무는 2006년 LG전자 재경부서 대리로 입사해 8년 만에 임원을 달았다.

한화그룹도 경영승계를 위한 후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3남인 김동선씨는 지난 10월 한화건설에 입사했다. 이로써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실장과 차남 김동원 한화L&C 팀장 등 3명이 모두 경영수업을 받게 됐다.

김동관(31) 실장은 최근 있었던 삼성의 화학계열사 인수합병에서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8일 태양광사업 계열사인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을 합병하는 등 태양광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합병은 김 실장의 경영보폭을 넓히기 위한 초석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해외에서 근무하던 허준홍(39) GS칼텍스 상무도 본사로 자리를 옮기며 경영권 승계에 한 발 다가섰다. 허준홍 상무는 허만정 GS그룹 창업주의 증손자로 GS그룹의 4세다.

이들 대부분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해외에서 유명대학을 나왔고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30대에 임원이 됐다. 경영능력이나 자질에 대해서도 알려진 점이 거의 없다.

◆ 자녀 단속 나서는 재계

재계 관계자들은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의 불똥이 튈까 회사 안팎에서 오너 자녀들의 노출을 피하는 등 매우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특히 최근 SNS가 발달하면서 내부고발이 쉬워지고 오너 일가가 손쉽게 노출되면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한 대기업 회장은 최근 가족들에게 “처신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집에서도 자식교육을 철저하게 시켜라”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의 고위간부는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자녀를 최근 오너가 더욱 엄하게 다뤄 사고를 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편을 들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재벌가 자녀에게 현장근무를 필수적으로 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는 오너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혹시나 큰 사고를 칠까 긴장된다”며 “이 사건이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지 몰랐던 상황에서 지금의 분위기가 매우 당황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연말 임원인사를 앞두고 있는 일부 그룹에서 오너의 자녀의 승진을 놓고 여론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2의 조현아 사태 막는 방법은 없을까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2일 대한항공 본사 복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검증 안된 오너 자녀 승계의 위험성


능력과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자녀들의 경영세습은 기업을 몰락하게 하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재벌 구조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부분 총수 1인이 한다. 총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기업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거나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등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매우 큰 것도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특징이다.

세습경영에서 빚어지는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이번 사건에서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왜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아무도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기업들 가운데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지 못한 2세가 총수 자리에 올라 독단적이고 방만한 경영으로 기업을 위기에 내몬 경우가 많았다.

진로그룹이 창업 80년 만에 법정관리를 거쳐 매각된 것은 2세인 장진호 전 회장의 방만경영 탓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장 전 회장은 36세 때 그룹 총수에 올라 유통, 주택건설, 전자, 기계, 금융 등으로 사업영역을 급속히 확장했다.

장 전 회장 취임 당시 5개였던 계열사는 몇 년 뒤 30여 개까지 늘었다. 무리한 확장으로 재무구조가 급격히 나빠졌고 외환위기 이후 결국 버티지 못했다.

쌍용그룹도 31세의 나이에 그룹을 물려받은 김석원 전 회장이 무리하게 자동차에 욕심을 낸 데 이어 정치 쪽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그룹이 해체되는 사태를 맞았다.

세습경영은 태생적으로 횡령에 대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벌 2~3세 경영자들이 사법처리되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돈 문제다.

세금을 정상적으로 내면서 경영권을 물려받기는 상당히 어렵다. 기업을 상속받을 때 최고 50%의 상속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금을 동원하기 위해 편법이나 탈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어떻게 안전장치를 만들 것인가

우리나라는 외국과 다르게 재벌 자녀들의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장치가 거의 없는 데다 그동안 경영세습을 그다지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가 경영세습을 더욱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럽에 창업자는 기업을 설립하고, 2세는 기업을 물려받고, 3세는 기업을 파괴한다는 말이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경영세습에 대해 더욱 조심하는 전통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독일의 프리미엄 가전제품 기업 ‘밀레’는 공동 창업주인 두 가문에서 오너 경영인을 1명씩 배출하고 전문경영인 3명과 함께 5인의 공동 경영체제를 갖추고 있다. 오너가에서 1명씩 경영자를 선임하는 과정은 외부 전문가위원회의 평가까지 거치며 매우 까다롭게 진행된다.

스웨덴 발렌베리그룹도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오고 있지만 그룹의 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 매우 엄격하다. 부모의 도움 없이 명문대를 졸업해야 하고 혼자 해외유학을 마쳐야 하며 해군장교로 복무해야 한다. 최고경영자의 독단적 결정을 막기 위해 2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두는 것도 이 가문의 전통이다.

국내에서도 경영세습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영승계를 무조건 막기보다 경영능력을 검증하는 장치를 만들어 능력을 인정받을 경우 경영자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총수 일가의 자녀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권을 승계받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외국처럼 대주주 자녀들이 소유만 하고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한 뒤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경영승계 자체를 문제로 보지 않지만 재벌가의 구조가 좀 더 개선돼야 한다”며 “3세들이 지주회사나 핵심계열사 이사회의 의장직 등을 맡고 큰 틀에서의 조종자 역할을 수행하다 능력을 인정받을 경우에 경영자로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내부에서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을 제도를 마련하거나 승계를 위한 자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법도 제기된다. 현재 거수기 노릇을 하는 사외이사 제도를 취지에 맞도록 권한을 주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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