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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방식만 다를 뿐

백우진 smitten@naver.com 2017-12-29 14: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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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관련해 중요한 개념을 제시했다고 여겨진 사고실험이 있다. ‘중국어의 방’ 사고실험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이뤄진다.

영어만 구사하고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방에 들어가게 한다. 그에게는 한 중국어 문장을 다른 중국어 문장과 연결해주는 지침서가 있다. 지침서의 설명 부분은 영어로 쓰였다.
 
인공지능은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방식만 다를 뿐
▲ 백우진 글쓰기 강사·작가

방 밖에서 그에게 중국어로 쓰인 문장이 주어진다. 그는 지침서를 보고 다른 중국어 문장을 찾아 그것을 적어 제출한다.

방 밖의 사람들은 그에게 준 문장을 질문이라고 여기고 그가 내놓은 문장을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두 문장은 애초에 그런 관계로 묶였다. 그래서 중국인들도 방 안의 사람이 중국인이라고 믿게 된다.

이 사고실험은 미국의 언어철학자 존 설이 1980년에 내놓았다. 설은 “방안의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나?”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로부터 컴퓨터가 앞의 지침서를 프로그램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중국어 입력에 대응해 중국어로 출력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는 나아가 그 컴퓨터의 중국어 이해는 구문론적일 뿐 그 어떤 의미론적 내용도 지니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언어를 이해하는 상태는 형식적 기호들을 소유하는 것 이상을 포함하기 때문에 컴퓨터는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어의 방 사고실험은 컴퓨터 번역에 대한 사고실험으로 변형할 수 있다.

앞에서와 똑같이 영어만 구사하고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방에 들어가게 한다. 이번에는 지침서 대신 번역 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가 그에게 주어진다. 중국어 제시문이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지고 그는 번역 프로그램을 실행해 제시문을 영어로 번역한다. 그리고 이 영어 문장을 내보낸다.

방안의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해 영어로 번역한다고 말할 수 있나? 아니다. 번역은 프로그램이 했다.

여기서 우리는 더 의미가 있는 물음과 마주친다. ‘그 번역 프로그램은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나?’라는 물음이다. 번역이 정확했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설이 사고실험의 의미를 엉뚱한 곳에서 찾았음을 알게 된다. 첫 사고실험에서도 유의미한 물음은 ‘방 안의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나?’가 아니라 ‘지침서가 중국어를 이해한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나?’가 돼야 한다.

첫 사고실험에서 사람의 역할은 지침서를 실행하는 데 그친다. 알파고가 찾아낸 수를 실제 바둑판에 돌로 두는 사람의 역할과 비슷하다. 바둑을 전혀 모른 채 알파고 대신 돌을 놓을 수 있는 것처럼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지침서가 지정한 답변을 적어 낼 수 있다.

중국어의 방 사고실험은 튜링 테스트를 반박하기 위해 고안됐다.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50년에 발표한 논문 ‘계산기계와 지능’에서 “기계는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튜링 테스트는 분리된 방에서 서로 타자기만으로 대화하도록 한다. 방 안의 화자가 컴퓨터라고 할지라도 해당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컴퓨터라고 판단하지 못한다면그 컴퓨터는생각할 수 있고 어떤 정신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고 튜링은 주장했다.

이에 맞서 설은 컴퓨터가 의미를 모른 채 기계적으로 답변함으로써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중국어의 방 사고실험으로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이제 유효하지 않게 됐다. 아직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은 없지만 한정된 분야에서는 지적 활동으로 사람의 두뇌를 능가하는 인공지능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런 인공지능을 두고 “결과는 그럴싸하지만 그 분야를 사람처럼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예컨대 알파고가 인간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이제, 알파고가 어느 인간 고수보다 치밀한 계산과 깊은 직관으로 다음 수를 결정함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생각할 수 있다. 그 방식이 사람과 다르고 사고의 결과를 아직 인간에게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의 발달을 차오르는 수면의 이미지로 설명한다. 인공지능은 체스를 넘어 이미지 인식을 거쳐 바둑까지, 과거에 넘보지도 못한다고 여겨진 수준으로 올라왔다.

중국어의 방 사고실험을 통해 주장된 한계를 인공지능이 넘어선 지도 오래 됐다. 중국어의 방은 한참 전에 물에 잠겼다. 
 
백우진은 글쓰기 강사로 활동한다. 책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 『글은 논리다』를 썼다. 호기심이 많다. 사물과 현상을 관련지어 궁리하곤 한다. 책읽기를 좋아한다. 글을 많이 쓴다. 경제·금융 분야 책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주식투자법』, 『안티이코노믹스』, 『한국경제실패학』을 썼다. 마라톤을 즐기고 책 『나는 달린다, 맨발로』를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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