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환경이 변해서 경영자의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리더십이 약해지는 바람에 기업이 쇠퇴하는 것일까?
아마도 둘 다 맞을 것이다. 굳이 리더십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한국기업과 기업인의 부침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제조기업들이 일제히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기업들이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제조기업의 호황에 한몫을 했던 원화약세기조가 급격하게 흔들리면서 제조기업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다.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수출로 극복해 왔는데, 원화강세로 수출이 예전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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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한국의 제조기업들은 곳곳에서 휘청이고 있다. 짧은 시간에 주요 재벌로 부상했던 STX그룹은 파산했고, 자수성가형 기업의 대표격이었던 동부그룹은 팔다리가 잘려나가 쪼그라들었다.
태양처럼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던 현대중공업그룹은 임원의 1/3을 내보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현대중공업과 함께 세계 조선시장을 주름잡던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뿐이 아니다. 애플을 능가해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 자리를 꿰찰 것 같았던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사업의 부진으로 위상이 흔들리고 있고, 이것에 영향을 받아 삼성의 전자계열사들은 일제히 실적부진으로 신음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경쟁하면서 전자기업의 명예를 되찾으려는 LG전자 역시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한 때 기린아로 주목받던 팬택은 법정관리에 들어가 매각이 진행중이다.
이밖에 철강이나 석유화학 등 이른바 중후장대형사업으로 세계의 선두를 노렸던 거대기업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꺼번에 경쟁력을 잃고 2선으로 밀려나고 있다.
자동차기업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현대차와 기아차로 대표되는 자동차기업은 그동안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면서 선전했다.
그러나 최근 현대기아차는 유럽시장과 북미시장을 비롯한 선진공업국시장에서 판매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후발개도국 시장에서 판매를 늘려 그나마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와 기아차가 계속 선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는 전문가들이 많다. 자동차사업 역시 제조업의 한 분야이고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가 이미 경쟁력을 잃고 몰락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경영진들이 다른 자동차회사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잘 대처할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지켜보는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그 핵심이유는 현대차와 기아차를 포함해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 경영자들이 대부분 ‘중후장대형 리더십'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목표가 정해지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밀어붙이는 불도저형 리더들이다. 결단력이 뛰어나고 추진력이 강하다. 과감한 베팅을 마다하지 않고 목표한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도 갖추고 있다. 게다가 목표를 위해 갖고 있는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돌격형 성향’이 강하다.
이들에게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탈법이나 불법은 그리 큰 문제가 안 된다. 권력과 줄을 대거나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을 호소해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주관계나 노사관계도 이들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기업은 대주주의 것이고 나머지 주주들은 투자자에 불과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처럼 투자자들은 이익이 적으면 알아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사관계도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회사는 내 것이고 임직원들은 내 집에서 일하는 월급쟁이 일꾼일 뿐이다. 싫으면 언제라도 나갈 사람들이니 회사는 주인인 내가 지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사업방식도 대개 비슷하다. 사업규모를 키우고 영역을 확대하고 최신의 설비와 장치를 갖춰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내는데 경영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량으로 만든 제품을 싸게 팔아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전략이다.
이런 경영방식과 전략으로 한국의 기업인들은 단기간에 세계적 기업에 뒤지지 않을 만큼 기업규모를 키웠다.
그런데 이런 경영방식이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세계시장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국식 경영방식은 이제 한국 기업인보다 중국이나 인도의 기업인들이 훨씬 잘 구사한다. '많이, 싸게, 크게, 빠르게'로 표현되는 경영방식은 이제 중국기업의 장점으로 바뀌었다.
중국발 쓰나미를 피해 한국의 제조기업이 갈 곳으로 제시되는 분야는 크게 봐서 둘이다.
하나는 첨단기술분야다. 바이오 에너지 나노 로봇 같은 최첨단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나머지 하나는 기계와 부품, 그리고 소재분야다.
전자는 연구개발분야의 최고급인력들이 필요하고, 후자는 정밀가공이나 품질관리에 필요한 숙련된 기술인력이 있어야 한다. 후발개도국들이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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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두 분야 모두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선진공업국의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기업의 진입은 쉽지 않다.
그러나 도전할 수 있는 분야고, 도전해야 하는 분야다.
문제는 리더십이다. 석박사급 연구개발인력이나 숙련된 기술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이들을 이끌고 사업을 추진할 경영자들은 참 드물다.
연구개발인력이나 기술인력을 조직해서 성과를 만들어 내려면 기존 제조업의 중후장대형 리더십으로 한계가 있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이끌면서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한 경영자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리더십을 갖춘 경영자들은 많지 않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경영자들도 뒷전에 서 있다. 대기업의 오너경영자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더십의 교체가 필요한데, 새로운 리더십은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나 현대차의 정의선 부회장 같은 차세대 경영자들의 리더십이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 등 이전 세대와 다르다는 점이다. 이들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리더십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이들이 경영일선에 서면 주주관계나 노사관계, 소비자관계가 훨씬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차세대 경영자들이 경영권을 승계한 뒤 실제 경영에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속단하기 어렵다.
삼성과 현대차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에서 오너와 가신그룹들이 핵심리더십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차세대 경영자들이 자신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제조기업의 경영진들은 리더십의 보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영환경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기 리더십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탈출을 도모할 수 있다.
아울러 새로운 리더십의 발굴과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 리더십은 단기에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하는 리더십을 얻으려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신현만은 한국 최대 헤드헌팅회사인 커리어케어의 회장이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신문에서 창간 때부터 기자를 했고 한겨레신문 자회사 사장을 맡아 경제주간지를 발행하고 컨설팅사업을 전개했다. 아시아경제신문사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보스가 된다는 것> <능력보다 호감을 사라>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 <이건희의 인재공장> 등 많은 베스트셀러의 저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