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부회장의 사퇴를 계기로 삼성전자의 이사회와 경영체제에 쇄신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배구조개편과 주주권익 확대를 위한 여러 변화가 점쳐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영공백 사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주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추진하는 변화들이 오히려 기업가치 상승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16일 “삼성전자는 CEO 사퇴라는 갑작스런 변수를 맞게 됐다”며 “리더십 부재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어 새 리더십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바라봤다.
권 부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에서 모두 물러나기로 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데 이어 삼성전자에 경영공백이 현실화할 가능성에 더욱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들은 대체로 권 부회장의 사퇴가 삼성전자의 실적이나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압도적인 기술력과 선제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최소 향후 수년 동안의 성장을 책임질 수 있는 든든한 사업부문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과거 병상에 오르며 경영일선에서 손을 뗀 이건희 회장이나 박근혜 게이트로 구속된 이 부회장과 달리 권 부회장이 스스로 사퇴를 결정한 만큼 충분한 수준의 후속조치를 마련해둘 것이라는 관측도 유력하다.
이에 따라 내년 3월 권 부회장 퇴진에 맞춰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역대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주주들은 지난 수년동안 꾸준히 이사회와 지배구조개선을 요구해왔다”며 “권 부회장 퇴진 이후 CEO와 이사회 의장의 역할에 변화가 예상된다”고 버라봤다.
김 연구원은 과거 애플이 스티브 잡스 전 CEO의 사망 뒤 처음으로 CEO와 이사회 의장을 구분했던 변화가 삼성전자에도 이번을 계기로 비슷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CEO는 본업인 사업운영에 집중하고 이사회 의장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담당해 주주 중심의 투명한 자율경영체제가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신규조직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하고 주주환원 정책수립과 주주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사안을 검토하도록 하는 등 이사회 역할을 강화했다.
거버넌스위원회가 향후 중장기적 사업전략수립 또는 인수합병과 같은 중요 경영사안을 판단하고 승인하는 기능을 맡아 영향력을 대폭 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 연구원은 이를 위해 삼성전자가 이사회에 해외기업 임원 출신 전문가 또는 여성 등으로 사외이사의 다양성을 보완하며 인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 재벌기업들은 대체로 사외이사들이 주요 안건에 반대표를 내놓지 않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총수일가 중심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요소들이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줘 주가 저평가의 원인이 된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전부터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게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내놓은 만큼 이제는 이사회에 지배구조와 투명성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변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원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으로 주주를 중심으로 한 경영체제가 강화되는 것은 삼성전자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10월 말 3분기 실적발표 뒤 새 주주환원정책을 내놓는다. 이 때 권 부회장의 퇴임 뒤 이사회에 벌어질 변화와 같은 주주권익 강화 계획을 내놓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앞으로 3년 동안 계속될 중장기적 주주환원정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발표를 내놓은 것도 권 부회장의 사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3분기 실적발표 뒤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 기존에 진행하던 주주환원정책 관련 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그 이상의 발표가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