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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동산시장을 강도높게 규제하는 새 대책을 내놓았으나 ‘보유세 인상’ 방안을 포함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 부동산 보유세 인상 빠진 ‘8·2 부동산대책’ 발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오후에 정부서울청사에서 ‘실수요자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브리핑을 통해 ‘8·2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부동산대책은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 지정,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등을 뼈대로 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2005년에 세금과 청약, 공급 등을 총망라한 대책으로 내놓은 ‘8·31 부동산대책’ 이후 12년 만에 가장 강력한 부동산대책이 부활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투기성 주택수요를 억제하고 과열지역에 대한 전매권 거래금지 기간을 강화한 ‘6·19 부동산대책’을 이미 내놓았다. 하지만 서울권의 집값상승세가 멈추지 않자 정부는 40여일 만에 다시 대책을 발표하며 부동산시장을 조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김 장관은 이번 부동산대책에 보유세와 관련한 사항은 담지 않았다.
김 장관은 국토교통부 장관에 취임하면서부터 집값상승이 투기세력 탓이라고 규정했다. 투기세력과 전쟁을 선포한 셈인데 이에 따라 보유세 인상과 같은 고강도 규제가 조기에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정치권은 바라봤다.
김진표 전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년 조세 시스템을 개혁할 때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를 낮추는 쪽으로 부동산 세제를 손질하겠다”고 말한 점도 보유세 인상의 현실화 가능성에 힘을 보탰다.
보유세 인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관심을 쏟았던 사항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1월 중순에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라는 대담집에서 “부동산 보유세가 국제기준보다 낮다”고 지적하며 임기 안에 부동산 보유세를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국내 부동산시장에 보유세 인상방안이 도입될 경우 시장에 강한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어 문 대통령의 대선 핵심공약에서는 제외됐다.
◆ 왜 보유세 도입에 관심 쏠리나
보유세는 말 그대로 부동산을 보유하고만 있어도 내야 하는 세금을 의미한다. 보유세에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있는데 주택 소유자는 재산세를 납부해야 할 의무가 있고 9억 원이 넘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면 종합부동산세도 내야 한다.
다시 말해 비싼 주택이나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한 다주택자의 경우 부동산 보유세가 인상될 경우 직격탄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에서 부동산과 관련한 세금을 걷을 때 보유세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과 행정자치부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국내 부동산 보유세 현황에 따르면 2015년에 보유세와 관련한 세금은 모두 13조5035억 원이다.
이는 2015년 부동산 시장가격 9135조 원과 비교해 실효세율이 0.15% 수준이며 재산세 부과대상으로 등록된 부동산 공시가격 4843조 원과 비교해도 유효세율이 0.28%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토지+자유연구소가 7월에 내놓은 ‘주요국의 부동산 세제 비교 연구-보유세 실효세율 비교’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한 미국의 실효세율은 1%로 한국의 6배가 넘는다. 캐나다(0.84%)와 프랑스(0.56%), 일본(0.53%), 네덜란드(0.29%) 등과 비교해도 한국의 보유세 비중은 턱없이 적다.
다른 나라의 경우 토지나 집값 등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부동산을 보유할 때 내야하는 세금부담이 심해 부동산을 오랜 기간 보유하는 비중이 적은 것으로 파악된다. 부동산 장기보유 비중이 줄어들면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힘들어 부동산시장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보유세를 늘리는 대신 거래세를 줄일 경우 부동산시장의 거래위축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집값 안정화를 위해 보유세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태화 가천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KBS 공감토론에서 “국내 부동산세수를 보면 거래세 비중이 굉장히 크고 보유세가 낮다”며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계속 보유하는데 전혀 부담을 안느끼고 있다. 이런 것을 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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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하는 모습. |
◆ 보유세 인상에 신중한 모습 보이는 까닭
보유세 인상이 부동산시장의 과열현상을 막을 수 있을뿐 아니라 다주택자의 수요가 쏠리는 왜곡된 국내 주택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이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김 장관이 8·2 부동산대책에서 보유세 인상을 제외하자 시민단체는 정부가 투기세력과 전쟁을 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일 8·2 부동산대책을 놓고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여러 규제정책은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검토했던 대책”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투기 근절과 집값 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권의 부동산대책을 답습하는 것은 그동안 적폐를 양산해온 토건관료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가 보유세 인상 도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과거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부동산정책의 실패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정치권은 바라본다.
참여정부는 2005년에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해 보유세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종합부동산세에 ‘세금폭탄’이라는 딱지가 붙은 탓에 강력한 조세저항에 부딪혔다.
참여정부는 종합부동산세의 적용을 받는 국민이 전체 국민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며 투기세력과 전쟁이라는 점을 적극 강조했으나 한 번 악화한 여론을 되돌리는데 실패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으로 참여정부는 2006년 치러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거의 대부분의 단체장을 빼앗겼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대한민국 역사상 집권여당이 가장 크게 참패한 선거로 기록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의 악화 가능성이 있는 보유세 인상을 밀어붙이는 것을 잠시 보류했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문재인 정부가 보유세 인상을 추진하더라도 1가구1주택자 등을 포함해 저소득자 계층이나 고령자들에게는 부동산 보유세를 낮추는 대안이 마련되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소유자가 투기목적이 아닌 실거주 목적으로 집에 사는 데 과도한 세부담은 강한 조세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