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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 형제의 난, 박찬구의 항변

오대석 기자 pscientist@businesspost.co.kr 2014-10-16 21: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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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아시아나 형제의 난, 박찬구의 항변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운명을 가를 날이 다가오고 있다. 박찬구 회장에 대한 횡령 및 배임혐의 재판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곧 열린다.

이 재판은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갈등이 형제의 난으로 비화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형제의 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박찬구 회장이 횡령 및 배임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면서 형제는 시쳇말로 같은 하늘 아래 살기 어려운 사이가 되고 말았다.

박찬구 회장은 이 재판에 대해 박삼구 회장이 자신에게 치명타를 가하려고 기획한 작품이라고 의심한다.

따라서 박찬구 회장이 항소심에서 검찰기소 내용의 상당 부분을 무죄로 이끌어낸다면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

박찬구 회장은 형과 여러 소송을 하면서 '형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교적 문화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동생이 형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그런 비난을 만들어 냈다.

이 때문에 항소심 결과가 박찬구 회장에게 유리하게 나온다면 '형과 갈등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라는 자신의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횡령 및 배임혐의가 그대로 인정되면 박찬구 회장은 부도덕한 경영인이라는 오명과 함께 형을 상대로 끝없이 소송을 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박찬구 회장의 항소심의 결심공판은 오는 24일 예정돼 있다. 박찬구 회장은 지난 1월 1심 재판에서 일부 배임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 박찬구 “처음부터 잘못된 재판이다”

박찬구 회장은 이번 형사재판의 발단이 박삼구 회장의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그룹이 위기에 처하면서 빚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찬구 회장은 지난 9월 열린 재판에서 “이번 사건은 잘못된 인수합병에서 파생된 것”이라며 “무리한 인수합병의 여파를 금호석유화학에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박찬구 회장에게 징역 7년에 벌금 300억 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박찬구 회장이 273억 원을 횡령 및 배임하고,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처할 것이라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보유하던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102억 원의 손실을 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은 이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은 배임 및 횡령 혐의와 관련해 일부 절차상의 하자가 있지만 이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또 금호산업 주식을 판 대목에 대해서도 내부정보를 이용해 손실을 피하려한 것이 아니라 박삼구 회장의 방만한 경영으로부터 금호석유화학이라도 지키려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박찬구 회장이 당시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한 이유는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기 위해서였다”며 “손실을 피하려고 했으면 금호석유화학보다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더 낫지 않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형사사건의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박찬구 회장이 자회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을 통해 아들 박준경 상무에게 34억 원을 대여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기소한 7개 혐의 가운데 1개만 유죄로 본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 검찰이 기소한 내용 대부분에 대해 증거부족 또는 범죄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다.

박찬구 회장은 이 형사재판에 대해 형이 자신을 해코지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을 이끌고 나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위기를 키웠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검찰에 제보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박찬구 회장이 재판에서 "이번 형사사건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부실경영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 것과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박찬구 회장은 검찰수사를 받는 도중 박삼구 회장을 포함한 금호아시아나그룹 임직원 4명을 사기 및 위증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박찬구 회장은 2011년 “형과 관계는 루비콘강을 건넜다”며 “형이 먼저 검찰에 손을 댔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 형제의 난, 박찬구의 항변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오른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왼쪽)이 2010년 5월12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모친 빈소를 지키고 있다.

◆ 금호석유화학 딴집 살림을 차리지 못하는 박찬구


채권단이 2009년 12월부터 워크아웃을 진행하면서 금호그룹은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사실상 분리됐다.

이에 따라 두 형제는 각각 경영에 복귀했다. 2010년 3월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그해 10월 박삼구 회장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돌아왔다.

박찬구 회장은 그뒤 금호석유화학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박찬구 회장은 2009년 말 기준 498%에 이르던 금호석유화학의 부채비율을 2012년 189%로 낮춘 데 이어 2013년 160%까지 줄였다. 회사신용등급도 BBB-에서 A-로 올렸다. 금호석유화학은 2012년 말 채권단 자율협약을 졸업했다.

그룹의 계열분리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형제의 갈등은 완화되는 듯 했다.

특히 2010년 5월 모친인 이순정씨가 세상을 떠난 뒤 빈소에서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며 두 형제가 화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2011년 3월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그룹에서 제외해달라고 신청하면서 둘 사이는 다시 악화됐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삼구 회장이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 합의에도 불구하고 당시 약 10%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분리될 수 없었기 때문에 역으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그룹에서 제외해 달라고 신청한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지분율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여전히 인사 등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계열 제외 신청을 거부했다.

그러자 금호석유화학은 같은해 7월 공정위를 상대로 계열분리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금호석유화학은 2012년 11월 서울 고등법원에서 소송이 기각되자 대법원에 항고했고 지금도 계류중이다.

◆ 형제경영의 역사, 네 장의 공동경영합의서

금호가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형제 사이의 화합으로 이름이 높았다.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는 늘 가족의 화합을 당부했다.

박인천 창업주는 1984년 세상을 떠나기 전 2세경영을 대비해 원칙을 세워놓았다. 경영권을 아들만 상속하는 것으로 제한했고 그룹 회장직은 형제간 합의에 따라 결정하라고 했다. 주요사안은 합의와 다수결로 해결하되 최종 결정권은 손윗사람에게 있다고 못박았다.

막내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을 제외한 네 형제는 창업주의 유훈에 따라 금호그룹을 25년 동안 경영해 왔다. 이 과정에서 65세에 금호그룹 회장직을 물려준다는 원칙도 세워졌다.

장남인 박성용 회장은 12년 동안 그룹 회장으로 재임하다 65세가 되자 회장직을 차남 박정구 회장에게 물려줬다. 박정구 회장은 공교롭게도 65세가 되던 2002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따라 박삼구 회장이 57세의 나이로 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뒤 박성용 회장의 주도로 2002년 8월 4형제 가계가 공동경영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문서는 회장의 임기를 10년으로 하며 정년을 만 65세로 한다는 것을 뼈대로 한다.

그러나 공동경영합의서는 2005년 12월, 2006년 12월, 2008년 5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내용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명시됐던 회장 임기 10년 조항이나 65세 정년 원칙이 빠졌다.

네번째 공동경영합의서는 박삼구 회장 주도로 2008년 5월 만들어졌다. 합의서를 위반하는 주주에 대한 벌칙조항이 강화됐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 등 일부는 이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정에 정통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65세 정년 원칙을 지킬 경우 박삼구 회장은 동생을 거쳐 회장 자리가 그의 아들에게 돌아오는 데 너무 많은 세월이 흐른다고 봐 이런 조항들을 뺀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 쪽의 한 관계자는 “처음 65세 정년 원칙을 합의서에서 뺄 때 형님인 박삼구 회장이 한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으나 박삼구 회장이 형제경영이라는 원칙을 깨고 그룹을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자 박찬구 회장은 결국 네 번째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2005년 금호아시아나에 입사한 뒤 1년 만에 전략경영본부 이사로 승진했고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보고를 받는 등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 측근들 사이에서 “65세 회장 승계 원칙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이 나와 박찬구 회장을 자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아시아나 형제의 난, 박찬구의 항변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2011년 12월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 박삼구와 박찬구가 주고받은 편지


박찬구 회장은 2009년 6월12일 박삼구 회장에게 ‘공동경영합의서 해지’를 통보하는 편지를 보냈다.

박찬구 회장은 이 편지에서 박삼구 회장의 독단적 경영과 이 때문에 일어난 그룹 전체의 위기상황을 꼼꼼하게 지적했다.

박찬구 회장은 “수차례 언행을 통해 너무 깊은 상처를 주었고, 본인과 가족을 더 이상 공동경영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너무도 명확히 보여주었다”며 “그룹의 자금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인수합병을 추진해 그룹 전체의 위기와 각 계열사에 큰 손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박삼구 회장은 2009년 6월26일과 7월2일 두 번에 걸쳐 답신을 보냈다.

박삼구 회장은 “귀하(박찬구)의 여러 행태는 4가계(4형제)의 화목과 존속, 나아가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발전과 안녕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며 “(박찬구 회장이) 금호산업 주식을 매도하고 금호석유화학을 매수한 행위는 합의서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은 또 박찬구 회장이 지적한 ‘독단적 경영’ 지적에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조건이나 가격 등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기 전에 알려주고 협의했다”고 밝혔다.

박찬구 회장은 2009년 8월1일 다시 서신을 보내 박삼구 회장의 답신을 반박했다.

박찬구 회장은 “다분히 형식적이며 강압적 분위기에서 각자의 이름과 적정 입찰가를 적어 내도록 한 일을 두고 제가 가격결정 단계까지 참여해 동의했다고 하는 것이냐”며 반문했다.

박찬구 회장은 “처음부터 대한통운 인수에 적극 반대했고 제가 경영을 맡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은 대한통운 인수에 참여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 편지는 형제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무적이었다. 둘은 사실상 남남이었다.

◆ 형제를 갈라놓은 대우건설 인수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는 박찬구 회장과 박삼구 회장을 갈라놓았다.

박삼구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했다. 박찬구 회장은 당시 “무리한 인수에 따른 후유증이 염려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 회장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박삼구 회장은 2008년 대한통운까지 사들였다. 박찬구 회장은 이번에도 인수에 반대했지만 박삼구 회장의 인수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형제 사이에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금호그룹은 결국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안으면서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데다 주요 계열사의 실적부진까지 겹쳤다.

박찬구 회장은 경영을 맡고 있던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 강화에 나섰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의 주식을 사들였다. 아들 박준경 상무의 지분까지 포함해 한 달 만에 18.47%까지 지분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 회장이 그룹의 경영권을 노린 행위라며 분노했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은 “금호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노린 것이 아니라 그룹 위기 상태에서 금호석유화학만이라도 살려보자는 의도”라며 반박했다.

박삼구 회장은 2009년 7월 금호석유화학 이사회를 열어 박찬구 회장을 해임했다.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사들여 똑같이 10.01%씩 보유하는 형제경영의 원칙을 깼다는 이유를 들었다. 박삼구 회장도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금호그룹의 모태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2009년 12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금호석유화학은 채권단 자율협약을 맺었다. [비즈니스포스트 오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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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리
형제 간에 우정과 의리... 참 어려운 거군요...
길지 않은 인생인데... 가까운 사람들과 소중한 기억 함께 만들어 가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될 텐데 말이에요..
저녁 노을 지는 나무 아래에서 사랑하는 친지들과 함께 밀크 티 한잔 마실 수 있는 인생... 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네요... 그룹에서 안 태어나서 참 다행인 것 같아요~~~
   (2014-10-17 19:2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