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한 마디에 방송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당장 김진석 CJ헬로비전 사장의 한숨 소리가 깊어졌다.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업계의 해석 역시 분분하다.
|
|
|
▲ 김진석 CJ헬로비전 사장 |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근 방송시장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방송채널을 늘리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중소 프로그램 제공업체의 입지가 좁아져 방송의 다양성이 훼손된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방송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고 관련부처에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또 “방송통신 서비스 분야는 우리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민 눈높이에 맞고 균형감 있는 정책이 중요하다”며 “방송 산업 활성화에 있어서 공정성과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 CJ, 방송시장 몸집불리기 빨간불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유료방송과 채널시장에서 덩치를 키워가고 있던 CJ는 급제동이 걸렸다.
업계에서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상 CJ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방송시장에서 ‘수직계열화’를 논할 수 있는 대기업이 CJ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CJ는 텔레비전 케이블망 등을 운영하는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CJ헬로비전과 16개 TV 방송 채널(PP)을 운영하는 복수채널사용업자(MPP)인 CJ E&M을 보유하고 있다.
CJ헬로비전은 전체 케이블TV 가입자의 27.1%를 차지해 업계 1위를 달리고 있으며, CJ E&M은 tvN, 엠넷 등의 채널을 통해 전체 PP(채널사용사업자) 매출의 20%대 후반을 자지한다.
특히 케이블 업체인 씨엔엠 인수전을 앞두고 있는 김진석 CJ헬로비전 사장은 더욱 고민이 깊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 인수검토를 해야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적극적인 참여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장 자리에 오른지 불과 3개월째인 김 사장의 향후 사업계획이 발목을 잡힌 셈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 중인 SO 인수전을 앞두고 정부가 대형 케이블 방송사업자 탄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룹 총수인 이재현 회장이 횡령과 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점 역시 김 사장이 정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잇따른 관련 부처들의 대응도 김 사장을 압박한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17일부터 24일까지 CJ헬로비전의 주가는 6거래일 연속으로 하락했다. 김 사장이 더욱 몸을 낮출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박근혜 정부의 정책 대변화···어디까지?
이번 박 대통령의 발언이 정부 정책에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지도 관심사다. ‘유료방송의 규제완화’와 ‘콘텐츠 산업육성’은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세워왔던 공약이자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정책 기조였던 만큼 이번 발언은 박 대통령의 인식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 다음날인 18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케이블TV, IPTV 등 유료방송에 중소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를 의무적으로 할당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일에는 정부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정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갑작스레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고려한 새로운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 가이드라인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래부와 연구원 측은 일단 대통령 발언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CJ헬로비전 등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은 발표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에서 SO의 가입자 점유율 규제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를 반영한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SO의 점유율 규제는 케이블 시장 33%에서 전체 유료방송 33%로 확대됐다. PP 매출 규제 역시 글로벌 미디어 그룹 육성, 콘텐츠 산업 경쟁력 확대 차원에서 현행 33%에서 49%로 단계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업계에서는 'PP 매출 규제완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거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 업계, 박 대통령의 진의는 글쎄...
업계에서는 박 대통령의 태도변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우선 정부의 규제 유지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매출 규제를 완화해 줄 경우 특정 기업의 점유율이 더욱 높아지고 가격담합 등이 이어지면서 지상파 PP와 CJ계열 PP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다양성’을 위해 의무적으로 중소PP에 편성권을 준다 해도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눈높이가 올라간 시청자들에게 시청까지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로 유료방송 시장이 전면 개방되는 상황에서 국내사업자를 규제하는 것은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 FTA에 따라 내년부터 외국기업이 보도, 종합편성, 홈쇼핑 채널을 제외한 일반 채널에 대한 간접투자 허용 비율이 49%에서 100% 확대된다. 이를 통해 디즈니, 폭스채널 등 미국 유력 방송사업자들에게 한국법인을 통한 진출 통로가 열리게 되면서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의 무한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시장 육성과 방송의 공공성을 양립하는 정책을 펼쳐야 할 정부 당국이 방대통령의 한 마디에 너무 쏠리는 상황”이라며 “규제완화와는 별도로 중소PP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