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장에서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을 겨냥한 미국과 중국정부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며 한국 반도체기업을 직접 겨냥한 제재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연구개발과 생산투자를 대폭 늘리며 자급자족을 추진해 한국 반도체기업 의존도를 낮추는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효과적 대응전략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 실적뿐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압박 강화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4월 수출실적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71억4천만 달러로 역대 2위 성적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실적인 3월을 포함해 6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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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시스템LSI 사업부 사장(왼쪽)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반도체는 전체 수출액의 15%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산업으로 꼽힌다. 최근 세계시장에서 반도체 가격상승세가 이어지며 중요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기업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것을 우려하는 해외국가의 정부차원 압박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특히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에서 가장 활발하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D램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75%, 낸드플래시에서 46% 정도를 기록해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시장지배력을 차지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는 스마트폰과 PC, 전장부품과 서버에 이르는 모든 IT산업분야에 필수로 사용된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등 신기술 발달로 수요가 점점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 1996년부터 정보무역협정(ITA)에 따라 미국에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을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며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트럼프 정부 핵심인사인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미국산업 보호가 가장 필요한 산업분야로 조선과 철강, 자동차와 항공기에 이어 반도체를 꼽았다.
그는 특히 한국 반도체기업을 겨냥해 “반도체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의 무역수지를 악화하는 데 점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한국과 재협상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마이크론과 인텔, 웨스턴디지털 등의 기업을 통해 메모리반도체를 충분히 수급할 수 있다. 낸드플래시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매각에도 직접 관여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대만 홍하이그룹의 궈타이밍 회장이 최근 백악관을 방문한 것도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에 미국정부를 지원군으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라고 파악했다.
미국은 반도체를 경제에 이어 국가 안보차원에서도 중요한 산업으로 파악해 미국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기업뿐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압박도 점점 강화하고 있다.
미국정부는 중국 반도체기업이 해외기업을 인수합병하거나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제재하고 있다. 최근 연방수사국(FBI)을 통해 중국 반도체기업의 지적재산권 도난 여부룰 놓고 조사에도 나섰다.
중국정부는 이에 대응해 국영기업인 칭화유니그룹에 최근 25조 원 정도의 자금을 투자하는 등 생산투자와 인력확보에 막대한 금액을 쏟아부으며 자체적인 반도체 기술확보에 힘쓰고 있다.
자오웨이궈 칭화유니그룹 CEO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와 인터뷰에서 “한국 반도체기업이 빠르게 성장한 전례를 볼 때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패권을 쥐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응 중요해져
칭화유니그룹은 이미 생산투자에만 60조 원 이상을 쏟아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적극적인 물량공세와 기술확보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뛰어넘겠다는 목표도 강조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기업이 한국과 기술격차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막대한 자금력을 통해 핵심기술인력을 영입하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어 한국이 안심하기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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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칭화유니그룹이 이미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기업 임직원을 대거 영입해 반도체사업 경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극복하려는 단계에 와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반도체 최대 수입국가로 수년 안에 반도체를 자체공급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한국 반도체기업의 기술력이 뛰어나도 정부차원의 무역조치가 이뤄지면 시장진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전기차배터리에서 삼성SDI와 LG화학 등 국내기업의 기술력이 압도적으로 앞서있지만 최근 중국의 무역보복으로 시장진입이 사실상 어려워진 사례가 반도체에서 되풀이될 수도 있는 셈이다.
미국정부 역시 인텔과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기업이 현지에서 생산투자를 확대하는 대가로 법인세 등에 유리한 혜택을 제공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동시에 한국 반도체에 관세인상 등 무역보호조치가 내려질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메모리반도체 생산시설이 없다. 신규공장 투자에 나서기는 자금부담이 만만찮은데다 인건비도 한국이나 중국 등에 비해 높아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한국 반도체산업을 겨냥한 미국과 중국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응방법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향후 실적에 타격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이익의 60%, SK하이닉스는 99% 이상을 메모리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최대 수출국가인 중국과 미국에서 사업이 어려워질 경우 한국의 수출실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최근 열린 세미나에서 국제 통상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대응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차원에서도 반도체산업 규제완화와 인력양성지원 등에 힘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과 반도체 관련 무역협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과 한국 반도체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정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모두 차기 대통령의 중요한 과제로 남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정부는 현재 검토중인 보호무역조치가 더 공격적인 통상전략의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와 전반적인 재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