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5월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올리브영 패서디나점 개점 첫날 현지 소비자들이 줄지어 매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CJ올리브영 >
4일 새벽. CJ올리브영의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미국 온라인몰을 내는 과정에서 솔직한 반응을 공유해줘서 감사하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4가지 핵심 쟁점과 관련해 답변을 제공하고자 한다.”
미국 첫 1호 매장 ‘올리브영 패서디나점’ 개장, 그리고 이와 함께 이뤄진 미국 온라인몰 개편을 놓고 일부 고객들 사이에서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대응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며칠 사이 미국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을 비롯해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유명 SNS 채널에서는 패서디나 매장을 다녀온 현지 소비자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적지 않게 번졌다.
이들은 CJ올리브영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멤버십 등급 기준이 기존보다 상향조정됐다는 점, 기존 글로벌몰과 비교해 미국 전용몰의 할인 혜택과 상품 선택지가 축소됐다는 점, 미국 매장에서 한국 내수용 인기 제품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점 등을 집중적으로 문제 제기했다.
80만 팔로워를 지닌 유명 인플루언서가 올리브영 패서디나점을 소개하는 영상에도 비판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는 모습을 CJ올리브영으로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CJ올리브영의 해명글에 고객들의 마음도 조금은 녹아내리는 듯하다.
소비자들이 많이 분노했던 ‘멤버십 기준 상향조정’과 관련해 실망감을 이해한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멤버십 위크를 열테니 기대해달라’며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것은 건설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대응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여전히 다수의 고객들은 CJ올리브영의 미국 진출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한 누리꾼운 “솔직히 미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제품들을 굳이 올리브영에서까지 판매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한국 브랜드나 한국에서 유행하는 제품들, 그리고 한국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제품들을 더 많이 소개해줬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다행인 것은 CJ올리브영이 고객들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주일 동안 쌓인 현지 고객들의 불만에 대응을 시작한 만큼 앞으로도 고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전략을 조금씩 수정해나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며 K뷰티 대표 유통채널로 자리매김한 저력을 미국에서도 재현할지, 아니면 미국의 수많은 뷰티 유통채널 가운데 그저 그런 존재 하나로 남게 될지는 CJ올리브영의 선택에 달렸다.
▲ 4일 새벽 CJ올리브영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글(왼쪽). 현지 소비자들의 불만과 관련해 해명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글에 한 누리꾼은 CJ올리브영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는 댓글(오른쪽)을 남겼다. < CJ올리브영 인스타그램>
이 회장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올해 부쩍 현장경영에 많이 나섰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CJ올리브영을 방문한 횟수가 많았는데 미국 진출을 앞둔 총수의 기대가 그대로 반영된 행보라는 해석이 많았다.
“올리브영 미국 1호점 개장은 단순히 매장 하나를 여는 것을 넘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내딛는 첫걸음이자 전 세계로 나아가는 위대한 시작이다.”
이재현 회장이 직접 올리브영 패서디나점 현장을 찾아 뱉은 이 말에는 올리브영의 해외 진출이 지닌 전략적 무게감, 그리고 이를 향한 그룹의 진정성이 잘 담겨 있다.
다만 불안함도 적지 않을 것이다.
CJ그룹은 자주 주류와 다른 길을 걸었다.
다른 대기업들이 내수 시장에 안주하거나 해외의 검증된 브랜드를 수입하는 방식으로 안정적 이익을 취할 때 CJ그룹은 굳이 자신들의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나갔다.
한국 문화가 세계에서 통할 것이라는 신념에 누구나 코웃음을 치던 시절,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막대한 자본을 들여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 해외 시장의 문을 수십년 두드린 기업이 바로 CJ그룹이다.
남들이 다들 해외에서 검증받은 식음료 브랜드를 들여와 고객들을 모을 때 CJ그룹은 굳이 ‘비비고’라는 자체 브랜드를 앞세워 ‘K푸드’라는 개념도 없던 척박한 토양을 일궜다.
오늘날 대한민국 문화 영토의 지평을 넓히고 소프트파워를 이 자리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 CJ그룹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여정이 CJ그룹을 행복하게 만든 것은 결코 아니다.
CJENM이 한국 콘텐츠 산업의 토양을 다지고 가치를 증명했더니 정작 K콘텐츠 열풍의 가장 달콤한 과실은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공룡인 넷플릭스가 따고 있다. CJ제일제당이 힘겹게 알린 K푸드 카테고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제품은 ‘비비고’가 아닌 삼양식품의 ‘불닭’이다.
CJ그룹이 기반을 닦았지만 정작 주인공 자리는 다른 이에게 내어주는 아쉬운 양상이 늘 반복됐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얘기가 그룹 안팎에서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이런 전례 때문인지 CJ그룹 곳곳에는 CJ올리브영 역시 자칫하다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되지 않겠냐는 불안함이 배어 있다.
▲ 2026년 5월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올리브영 패서디나점 개점 행사의 리본 커팅식. 행사에 참석한 이선정 CJ올리브영 대표이사(왼쪽에서 네 번째), 빅터 고도 패너디나 시장(왼쪽에서 여섯 번째). < CJ올리브영 >
어렵게 일군 사업을 다른 기업의 축하잔치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K뷰티 브랜드와 함께 태평양을 건넜는데 그 과실을 미국 현지 뷰티 채널들이 낚아채는 미래는 결코 반갑지 않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CJ올리브영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왜 올리브영에 열광하며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는지, 그들의 시선에서 올리브영은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을 대표하는 유통 플랫폼이 세계 최대 시장에서도 당당하게 특정 분야의 패권을 쥐고 주역으로 설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으면 한다.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시장의 찬사에 취하지 않는 냉철함, 그리고 K뷰티를 아끼는 고객들의 작은 목소리조차 놓치지 않는 정교한 피드백 수용 능력이다.
캠핑의자를 가지고 개장 첫날 저녁부터 긴 대기줄을 형성하던 고객들의 환호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K뷰티 대표 유통 플랫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가리는 냉정한 비즈니스의 시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부디 CJ올리브영이 미국에서 실력으로 당당하게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남희헌 유통&4차산업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