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트럼프 정부가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압박하며 인텔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자급체제 강화를 위한 정책이 대만의 국가 안보에 변수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성조기와 인텔 반도체 이미지. <연합뉴스>
미국이 자체적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중국의 침공과 같은 위협에서 대만을 지켜내야 할 필요성도 자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트럼프 대만 반도체 겨냥해 압박, 국가 안보에 변수
25일 대만 중국시보와 경제일보 등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만의 국가 안보와 관련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시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 직후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훔쳐갔다고 재차 주장했다”며 “대만이 '실리콘 방패'를 지키기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실리콘 방패란 반도체의 주요 소재가 실리콘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대만의 첨단 반도체 기술 경쟁력이 국가 안보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뜻하는 표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15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나라의 경제 협력 방안과 다양한 안보 현안이 논의됐다.
특히 대만 문제가 미국과 중국이 가장 이견을 보이는 의제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았다. 중국이 ‘하나의 영토’ 원칙을 앞세워 대만에 영유권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에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견제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에 첨단 반도체 공급망의 중요성이 더 높아지며 대립이 심화됐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대만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공장이 대부분 대만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형성된 '실리콘 방패'가 중국의 침공 위협에서 대만을 지켜내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미국의 인텔 반도체 파운드리 지원 정책 본격화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정상회담 뒤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대만을 언급하며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훔쳐갔다고 재차 주장해 대만이 다소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러한 주장을 펼치며 대만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TSMC가 미국에 최대 1650억 달러(약 248조 원)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배경으로 자리잡았다.
이번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에 있는 반도체 제조사들이 미국에 오기 바란다”며 압박을 더했다.
이에 더해 트럼프 정부가 TSMC의 경쟁사인 인텔의 파운드리 수주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정황도 나타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이 트럼프 대통령에 직접 요청을 받아 인텔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기기 위한 초기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테슬라와 엔비디아 등 다른 대형 반도체 고객사들도 이와 비슷한 요청을 받아 인텔과 협력을 추진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인텔 지분 약 10%를 인수하고 보조금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여기에는 첨단 파운드리 공급망을 대만과 TSMC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각) 포춘과 인터뷰에서도 미국 정부가 인텔을 보호하는 정책을 일찌감치 펼쳤다면 대만의 반도체 사업을 모두 확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도 같은 날 발표자료에서 “인텔의 주가 상승세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미국이 빼앗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드러난 것으로 읽힌다.
▲ 대만 '실리콘 방패'와 미국 반도체 공급망 자급체제 강화에 따른 변화를 요약한 그래프. <챗GPT 제작>
◆ 중국 영향력 강화에 미국 반도체 투자 유치 서둘러
결국 대만이 국가 경제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TSMC의 반도체 사업을 지켜내는 일이 불안해지면서 이를 기반으로 하는 안보에도 더욱 큰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시보는 TSMC가 미국에 설비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결국 미국을 위한 대만 정부의 ‘공물’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이르면 2028년부터 TSMC가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정부의 인텔 파운드리 지원 성과가 점차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시보는 “전문가들은 대만 정부가 자국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지켜내는 일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바라본다”며 “인텔은 아직 TSMC와 경쟁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미국 정부와 애플 등 고객사의 지원을 받는다면 수 년 안에 상황이 뒤바뀔 수 있다”고 전했다.
대만 경제일보도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이 반도체 전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며 “반도체는 핵심 경쟁력인 만큼 대만 정부가 이러한 위협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에 다소 ‘저자세’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태도가 중국의 국력 강화를 반영한 실용주의적 태도였다"고 바라보며 "미국이 무리하게 중국과 갈등을 일으키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자연히 트럼프 정부가 대만 영토에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두고 대만에 집중된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내려 할 이유도 커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을 겨냥한 압박을 이어가는 이유는 결국 TSMC의 미국 투자에 한층 더 속도를 내도록 하려는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인텔 파운드리 사업에 지원 정책도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이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미 테슬라의 자율주행 및 인공지능(AI) 반도체 위탁생산이 예정되어 있다.
이같은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조를 고려하면 삼성전자 미국 공장의 중요성도 더욱 높아질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