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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래리 페이지 구글 CEO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
이재용체제로 접어들면서 삼성전자가 달라지고 있다. 인수합병에 공격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도 1곳을 인수하는 데 그쳤다. 최대 라이벌 구글과 애플이 40여개 기업을 인수한 데 비하면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반기 들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기업 2개와 캐나다기업 1개를 잇따라 인수했다.
이런 모습을 놓고 삼성전자가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인수합병이라는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IT기업의 경우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인수합병이 필수적인데 삼성전자가 뒤늦게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룡기업인 구글과 애플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IT기업의 경우 몸집이 커지면 제조회사와 달리 독자적으로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신속히 대응하기 힘들다. 기업 내부에서 모든 준비를 하기 어렵다.
혼자서 도맡기에 경쟁 IT기업들의 변화속도는 너무 빠르다. 구글과 애플이 인수합병에 열성인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빠른 추격자’ 전략을 통해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웠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기업들의 추격으로 제조부문에서 예전과 같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시장 선도자’로서 소프트웨어 등 새 분야에서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의 현금보유액은 세계 5번째 수준이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그동안 글로벌 경쟁기업에 비해 인수합병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이재용체제 등장 이후 삼성전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인수합병을 통해 삼성전자에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인가?
◆ 사물인터넷과 B2B기업을 집중 사냥
삼성전자는 2007년부터 8년 동안 모두 21건의 인수합병을 했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인 10건이 지난해부터 8월까지 이뤄졌다. 이는 삼성전자가 최근 들어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3일 캐나다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 회사인 ‘프린터온’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프린터온의 모바일 솔루션은 업계 최고수준으로 세계 120여 국가에서 활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를 통해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고 기업간거래(B2B) 고객을 확보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에도 굵직한 인수합병을 두 건이나 진행했다.
삼성전자는 2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사물인터넷 개방형 플랫폼 개발업체인 ‘스마트싱스’를 인수했다. 이어 미국 공조제품 유통회사인 ‘콰이어트사이드’를 인수해 북미에서 기업간거래(B2B)와 스마트홈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삼성전자의 최근 인수합병을 보면 사물인터넷과 기업간거래(B2B) 분야의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미국 멀티스크린 플랫폼 개발회사인 모블, 지난 5월 미국의 비디오 어플리케이션업체인 셀비의 인적자산을 인수했다.
모두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취약하면서도 이재용체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고 있는 분야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에서도 반도체에 과감히 투자한 경험이 있다”며 “이재용 부회장도 여기서 얻은 학습효과를 통해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수합병 투자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와 제조업 위주로 인수를 추진했다. 2007년 이스라엘의 반도체설계 업체인 ‘트랜스칩’을 인수했다. 그뒤 3년이 지난 2009년 폴란드 가전업체인 ‘아미카’를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의료기기 분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2010년 치과용 CT업체인 레이, 2011년 의료기기업체인 메디슨과 심장질환 진단업체인 넥서스를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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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월 '한-중 경제통상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
◆ 공격적 인수합병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에 비해서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룸버그통신은 해외인사들의 이 부회장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며 “절제된 감각과 친근한 태도, 유창한 언어 능력은 삼성의 초점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뿐 아니라 국제적 제휴확대로 옮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자인 그레그 타르는 이 부회장이 애플의 아이폰 핵심부품에 삼성의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는 데 공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협상을 하러 애플에 온 사람이 바로 이 부회장이었다”며 “삼성 임원으로 유일하게 잡스의 추도식에 초대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들어 미국 유럽 중국 등을 돌며 글로벌기업과 접촉을 확대하고 있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애플의 팀 쿡 등 글로벌기업 리더들과 만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0일 미국 선밸리에서 열린 미디어콘퍼런스에 참석하기도 했다. 선밸리 콘퍼런스는 세계 경제계 인사가 모이는 행사인 만큼 대형 인수합병이 성사되거나 전략적 파트너십이 이루어지는 장으로 통한다.
이 부회장은 이런 국제적 만남을 통해성과도 내고 있다. 최근 애플과 특허소송을 취하하고 애플에 모바일 메모리를 공급하기로 한 것도 이런 성과의 하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의 이런 리더십이 삼성전자로 하여금 더욱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도록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한다. 이 부회장도 이건희 회장에 비해 인수합병을 통해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라는 말이 삼성 안팎에서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인수합병에 대한 삼성의 입장이 바뀌어 인수기업 또한 다양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전략이 성공하려면
이재용 체제 이후 적극적 인수합병이 삼성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인수합병은 그 자체보다 오히려 인수합병 이후가 중요하다. 인수합병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직문화가 필수적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삼성메디슨과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의료기기사업 확대를 위해 삼성메디슨을 인수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결국 경영진단 결과 통합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메디슨을 인수한 뒤 운영방식 차이로 기존 인력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조직역량이 흔들렸던 점을 성과부진의 한 원인으로 꼽는다. 삼성전자가 최근 해외에서 잇따라 인수한 기업들에 대해 독자적 경영을 보장하는 것도 이런 반성의 결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인수 후 본사와 협업이 원활해야 인수가 성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인수합병은 경직됐던 삼성문화를 바꾸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인수합병이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강제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창의적 문화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삼성의 공격적 인수합병이 성공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조직적 역량을 갖춰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재용체제가 지속적 인사를 통해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인력구조를 갖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재 삼성전자의 수뇌부는 ‘토종 엔지니어’ 출신들로 포진돼 있다. 이들은 아무래도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보다 자체 개발쪽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사업모델을 이해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삼성전자 수뇌부에 좀더 폭넓게 자리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의 연말 인사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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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강을 듣고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
◆ 곳간 풍족한 삼성전자, 그동안 왜 주저했나
삼성전자는 현금 보유액이 올해 1분기 59조 원에 이른다. 10조 원대였던 2009년에 비해 5배나 늘었다.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규모다. 인수합병을 할 수 있는 재원은 어느 글로벌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그동안 인수합병보다 단독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는 삼성전자가 그동안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하드웨어 중심으로 성장해온 것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IT기업이라고 하지만 하드웨어 중심이다 보니 내부적으로 기술투자에 집중하는 데 더 익숙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글로벌기업들이 인수합병 각축전을 벌였지만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여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부를 추스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월 갑자기 쓰러졌고 계열사 인수합병 등 지배구조와 사업구조 개편에 더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을 말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의 정책방향이 명확하지 않아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인수합병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기업은 계열사간 상호출자를 해소하는 데 힘을 쏟아야 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며 “어떤 투자계획이든 세울 수 있도록 정부가 밑그림을 명확히 그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