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대통령이 인공지능(AI) 산업 분야에 한정해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를 막는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해 온 더불어민주당의 당강령과 배치될 수 있어 향후 논의 결과가 주목된다.
 
AI 투자 위해 '금산분리 완화' 카드 꺼낸 이재명, 민주당 반대 입장 변화 주목

이재명 대통령이 AI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위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향후 논의에 관심이 모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오후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접견한 뒤 AI 산업의 대규모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AI 산업 분야에 한정해 금산분리 등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당정 사이에 심도 깊은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삼성과 SK 등 국내 관련 기업이 반도체 공장 등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적극적 투자 유치가 필요한 시점인 만큼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산분리는 은행과 같은 금융회사가 일반 기업(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막고 반대로 일반 기업(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규제를 뜻한다.

금산분리는 대기업의 금융자본 ‘사금고화’나 ‘계열사 부당지원’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금융회사를 활용해 대규모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것뿐 아니라 기업 주도의 초대형 펀드 조성 및 운용이나 유망 스타트업 투자까지 막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최태원 SK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등은 지난 9월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이 대통령에게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김 정책실장도 해당 브리핑에서 “기업인이 말씀하신 것을 이 대통령이 귀담아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AI 투자 위해 '금산분리 완화' 카드 꺼낸 이재명, 민주당 반대 입장 변화 주목

▲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샘 올트먼 오픈AI CEO 접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의 언급처럼 삼성과 SK의 대규모 AI 투자와 관련해 금산분리 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공정거래법 등 여러 법률에 걸친 체계적 개정이 필요하다. 

특히 공정거래법 상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기업형 벤처캐피털) 설립 및 운영 규제 완화가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주식 소유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AI 등 국가 전략 산업 투자 목적에 한정해 특정 형태의 금융회사(CVC, 투자전문회사 등)나 펀드에 대한 출자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거나 한도를 확대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규모 펀드 조성을 위해 현재 '40% 미만'으로 제한돼있는 CVC의 외부 자금 조달 비율 한도를 상향하거나 전략 산업 분야에 한해 예외를 둠으로써 대규모 글로벌 자금 유치를 용이하게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금산분리 완화가 더불어민주당의 기존 입장과 완전히 배치된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당강령에 “부당한 자본집중 억제 및 효율적 자원배분과 함께 금융소비자의 편익 및 권익을 증대시키고 경제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금산분리 원칙을 견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구나 금산분리 완화는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서민 경제를 보호한다'는 민주당이 추구해 온 오랜 가치와 직결되는 문제일 수 있다.

대기업이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거나 불공정 거래에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금산분리 규제를 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완화하는 것을 두고 당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실제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벤처 금융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100% 자회사 형태로 제한적으로 보유하는 제도를 도입했을 때 민주당 내부에서 치열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결국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총수 일가 사익 편취 방지를 위해 '외부 자금 조달 비율 40% 미만 제한' 등 강력한 안전장치를 두도록 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2023년 CVC 외부자금 조달 비율 '40% 규제'를 완화하려 했을 때에도 민주당은 금산분리 원칙 훼손을 이유로 반대했다.

김 정책실장도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금산분리 완화는 논쟁적 사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민주당이 금산분리 완화를 반대했던 만큼 당정간 논의도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다만 이 대통령이 직접 ‘독점 폐해를 막는 범위 내에서’ 금산분리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만큼 AI 투자에 한정해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재명 정부는 'AI 대전환'을 중요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여당인 민주당도 팔짱만 끼고 있을 순 없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인터넷전문은행의 자본 확충 및 ICT 기업 주도 경영을 위해 은산분리(은행-산업자본 분리) 규제완화를 추진하자 민주당이 거세게 반대한 적이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제도가 신산업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며 규제완화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고, 당내 진통을 거친 끝에 결국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상향하는 내용의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통과됐다. 

더구나 모든 영역에 금산분리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기엔 시대가 변화했다는 점도 민주당이 금산분리 완화 논의에 조금 더 열린 자세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정보기술(IT) 발달로 금융과 비금융의 업무 영역 구분이 사라진 이른바 ‘빅블러’ 시대가 열리면서 국내에선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금융 영역에 진출했고 해외에서도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이 전통 금융업을 위협하고 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백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의 금산분리 완화 언급에 관한 질문에 “어제 특별한 자리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논평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면서도 “원론적이지만 민주당에 있는 강령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고 지금은 AI 시대”라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