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미국의 무리한 요구로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한미 당국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방식을 두고 강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새롭게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협상에서 한국 쪽에 '좋은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 평가가 나온다.
16일 정부 내 움직임을 종합하면 한국 정부는 한미 통상협상에서 미국 측에 새롭게 제안한 '무제한 통화 스와프' 카드를 가다듬으면서 당국 간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 인접한 댈러스 국제공항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하는 중"이라며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는 등 전방위로 국익의 반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의 이번 미국행은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만나고 귀국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 국면에 접어들자 접촉 횟수를 늘리면서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현재 한미 통상협상은 3500억 달러(48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의 방식 및 운영을 둘러싸고 양쪽이 상당한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7월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합의한 관세협상 결과를 두고 "한미 조선협력 펀드 1500억 달러가 선박 건조, 유지보수(MRO),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며 우리 기업들의 수혜에 기반해 구체적 프로젝트에 투자될 예정"이라며 "반도체, 원전, 이차전지, 바이오 등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 대한 대미 투자펀드도 2000억 달러 조성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바람과 달리 3500억 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투자하고 그 운영도 미국 측이 전담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미국 내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고 그곳에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넣으라며 구체적으로 압박해 오고 있다. 반면 한국은 현금 등 직접 투자가 아닌 보증이나 대출 형식의 투자를 바라고 있다.
김 정책실장은 7월31일 언론 브리핑에서 대미 투자펀드과 관련해 "에쿼티, 직접투자 비율은 높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이 대출과 보증으로 본다"며 "보증이 가장 많은 금액을 차지할 거 같고 그다음이 대출, 직접투자 비중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한꺼번에 투자하라는 미국 측 요구는 우리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면 한국은 곧바로 '외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재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미 통화 스와프를 역으로 제안했다.
통화 스와프는 외국 정부에서 원화를 빌려주고 대신 외화을 빌려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나중에 정해진 이자와 정해진 환율로 외화를 갚아야 하는데 국가 단위의 '마이너스 통장'인 셈이다.
통화 스와프 제안은 나름의 합리성도 갖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5일 갱신한 외환보유액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약 4163억 달러다. 미국이 직접투자 방식으로 요구하고 있는 3500억 달러는 이의 83%에 달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직접 투자를 강행하면 과거 IMF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가 올 수도 있다"며 "통화스와프가 없으면 3500억 달러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이 한국의 통화 스와프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특히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점은 결정적이다.
한국이 미국에 한미 통화스와프를 제시하고 있는 데는 이미 일본이 미국과 상설 무제한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다는 점이 배경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원화는 엔화처럼 기축통화가 아닌 만큼 ‘담보 가치’가 사실상 없다. 자칫 달러화만 한국 정부에 무한정 쏟아붓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한국과 미국은 두 차례에 걸쳐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적이 있다. 다만 현재 우리 정부가 제안한 '무제한 통화스와프'와 달리 규모도 작았고 기간도 정해져 있었다.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08년 10월 리번브라더스 파산 사태 당시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기한도 2009년 4월30일까지 6개월에 불과했다.
양국 중앙은행은 또한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 당시 600억 달러 규모로 6개월짜리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2021년 3월까지 6개월 연장되기도 했다.
현재 진행되는 한미 통상협상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최소 3000억 달러 이상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협정 체결 규모의 10배에 이른다.
이처럼 미국이 현실적으로 통화스와프 제안에 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이 이를 제시한 것은 ‘협상 카드’의 성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도 한국의 통화스와프 제안에 화를 내면서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순 없어 보인다.
한국이 '안전 장치' 없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다가 '제2의 IMF 사태'를 맞이한다면 동아시아 경제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997년 IMF 사태 당시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전체 경제가 도미노처럼 흔들린 바 있다.
동아시아 경제가 흔들리면 이는 미국에도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줄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동아시아 및 인도태평양 지역 외교 패권 전략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16일 SBS Biz 뉴스의 '용감한 토크쇼 직설'에 출연해 "3500억 달 러라는 금액은 재임기간에 다 투자를 하게 될 경우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현재 4100억 달러인데 이게 바닥수준까지 내려갈 우려가 있다"며 "우리가 1년 내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부채가 있는데 이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사태가 터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외환위기가 온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어 "이런 상황을 미국 측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고 무제한 무기한으로 통화스와프를 받아낼 필요가 있다"며 "사실 통화 스와프 마저도 안 된다면 우리는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 국익에 훨씬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한편 이렇게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지자 미국이 요구하는 무리한 조건에 동의하기보다는 ‘노딜’이 한국에 이득이라는 주장마저 나왔다.
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선임경제학자는 11일(현지시각) CEPR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3500억 달러(약 488조원)를 투자 약속하는 것보다 그 재원을 국내 수출업자 지원에 쓰는 것이 휠씬 낫다"며 "투자 약속의 성격이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트럼프가 설명하는 방식과 약간이라도 비슷하다면 한국과 일본이 합의를 수용하는 게 너무나도 어리석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100일 기자회견에서 세 협상안에 최종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익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인을 왜 하는 것이냐"며 "우린 뭘 얻으러 간 게 아니다, 미국 관세에 방어하면 됐지, 뭘 사인을 하냐"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권석천 기자
한미 당국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방식을 두고 강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새롭게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협상에서 한국 쪽에 '좋은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 평가가 나온다.

▲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공항에 도착해 특파원들과 만나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여 본부장은 이날 한미 무역협상 후속 협상을 위해 미국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16일 정부 내 움직임을 종합하면 한국 정부는 한미 통상협상에서 미국 측에 새롭게 제안한 '무제한 통화 스와프' 카드를 가다듬으면서 당국 간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 인접한 댈러스 국제공항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하는 중"이라며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는 등 전방위로 국익의 반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의 이번 미국행은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만나고 귀국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 국면에 접어들자 접촉 횟수를 늘리면서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현재 한미 통상협상은 3500억 달러(48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의 방식 및 운영을 둘러싸고 양쪽이 상당한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7월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합의한 관세협상 결과를 두고 "한미 조선협력 펀드 1500억 달러가 선박 건조, 유지보수(MRO),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며 우리 기업들의 수혜에 기반해 구체적 프로젝트에 투자될 예정"이라며 "반도체, 원전, 이차전지, 바이오 등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 대한 대미 투자펀드도 2000억 달러 조성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바람과 달리 3500억 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투자하고 그 운영도 미국 측이 전담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미국 내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고 그곳에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넣으라며 구체적으로 압박해 오고 있다. 반면 한국은 현금 등 직접 투자가 아닌 보증이나 대출 형식의 투자를 바라고 있다.

▲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7월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브리핑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정책실장은 7월31일 언론 브리핑에서 대미 투자펀드과 관련해 "에쿼티, 직접투자 비율은 높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이 대출과 보증으로 본다"며 "보증이 가장 많은 금액을 차지할 거 같고 그다음이 대출, 직접투자 비중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한꺼번에 투자하라는 미국 측 요구는 우리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면 한국은 곧바로 '외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재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미 통화 스와프를 역으로 제안했다.
통화 스와프는 외국 정부에서 원화를 빌려주고 대신 외화을 빌려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나중에 정해진 이자와 정해진 환율로 외화를 갚아야 하는데 국가 단위의 '마이너스 통장'인 셈이다.
통화 스와프 제안은 나름의 합리성도 갖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5일 갱신한 외환보유액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약 4163억 달러다. 미국이 직접투자 방식으로 요구하고 있는 3500억 달러는 이의 83%에 달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직접 투자를 강행하면 과거 IMF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가 올 수도 있다"며 "통화스와프가 없으면 3500억 달러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이 한국의 통화 스와프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특히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점은 결정적이다.
한국이 미국에 한미 통화스와프를 제시하고 있는 데는 이미 일본이 미국과 상설 무제한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다는 점이 배경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원화는 엔화처럼 기축통화가 아닌 만큼 ‘담보 가치’가 사실상 없다. 자칫 달러화만 한국 정부에 무한정 쏟아붓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한국과 미국은 두 차례에 걸쳐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적이 있다. 다만 현재 우리 정부가 제안한 '무제한 통화스와프'와 달리 규모도 작았고 기간도 정해져 있었다.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08년 10월 리번브라더스 파산 사태 당시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기한도 2009년 4월30일까지 6개월에 불과했다.
양국 중앙은행은 또한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 당시 600억 달러 규모로 6개월짜리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2021년 3월까지 6개월 연장되기도 했다.
현재 진행되는 한미 통상협상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최소 3000억 달러 이상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협정 체결 규모의 10배에 이른다.
이처럼 미국이 현실적으로 통화스와프 제안에 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이 이를 제시한 것은 ‘협상 카드’의 성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도 한국의 통화스와프 제안에 화를 내면서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순 없어 보인다.
한국이 '안전 장치' 없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다가 '제2의 IMF 사태'를 맞이한다면 동아시아 경제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997년 IMF 사태 당시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전체 경제가 도미노처럼 흔들린 바 있다.
동아시아 경제가 흔들리면 이는 미국에도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줄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동아시아 및 인도태평양 지역 외교 패권 전략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16일 SBS Biz 뉴스의 '용감한 토크쇼 직설'에 출연해 "3500억 달 러라는 금액은 재임기간에 다 투자를 하게 될 경우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현재 4100억 달러인데 이게 바닥수준까지 내려갈 우려가 있다"며 "우리가 1년 내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부채가 있는데 이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사태가 터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외환위기가 온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어 "이런 상황을 미국 측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고 무제한 무기한으로 통화스와프를 받아낼 필요가 있다"며 "사실 통화 스와프 마저도 안 된다면 우리는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 국익에 훨씬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한편 이렇게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지자 미국이 요구하는 무리한 조건에 동의하기보다는 ‘노딜’이 한국에 이득이라는 주장마저 나왔다.
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선임경제학자는 11일(현지시각) CEPR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3500억 달러(약 488조원)를 투자 약속하는 것보다 그 재원을 국내 수출업자 지원에 쓰는 것이 휠씬 낫다"며 "투자 약속의 성격이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트럼프가 설명하는 방식과 약간이라도 비슷하다면 한국과 일본이 합의를 수용하는 게 너무나도 어리석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100일 기자회견에서 세 협상안에 최종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익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인을 왜 하는 것이냐"며 "우린 뭘 얻으러 간 게 아니다, 미국 관세에 방어하면 됐지, 뭘 사인을 하냐"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