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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병세 외교부 장관. |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렸다. 1년 전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윤 장관에게 족쇄가 됐다.
부산 소녀상 설치를 계기로 일본은 위안부 합의를 들먹이며 외교적·경제적 압박에 나서고 있고 국내에서 이 기회에 위안부 합의를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 위안부 합의 1년 만에 결국 한일관계 악화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9일 일본 정부의 결정에 따라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귀국했다.
주한 일본대사가 귀국한 것은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4년반 만이다. 당시 무토 마사토시 일본대사는 12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야스마사 대사의 귀국기간은 약 1주일로 점쳐진다.
야스마사 대사 귀국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때문이다. 야스마사 대사는 1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만나 소녀상과 관련한 대응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소녀상 설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8일 NHK에 출연해 소녀상과 관련해 “2015년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을 서로 확인했다”는 점을 들어 철거를 요구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은 성실히 협의를 실행해 10억 엔을 거출했으니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이를 실행해야 하고 이는 국가 신용의 문제”라고 압박했다.
심지어 일본 언론에서 10억 엔을 받고도 소녀상을 놔두는 건 보이스피싱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형편이다.
일본은 경제적 압력도 가하고 있다. 일본은 한일 양국이 지난해 8월부터 진행해 온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했다. 통화스와프는 협정국끼리 통화를 교환해 외화 부족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일본과 통화스와프는 2015년 2월 만료됐다.
◆ 위안부 합의 서명한 윤병세 ‘곤혹’
일본이 이처럼 강경하게 나오고 있는데도 정작 외교당국의 대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6일 야스마사 대사를 불러 유감을 나타낸 것이 고작이다. 윤 장관은 이마저도 항의의 성격이 짙게 배인 ‘초치’가 아닌 ‘면담’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공세를 취한 데 비해 윤 장관이 수세로 일관하는 것은 그간 외교부의 설명과 달리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에 사실상 소녀상 철거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우리 정부는 일본과 무슨 합의를 한 것이냐”며 “민간 소녀상 설치까지 막겠다고 약속했는지 윤병세 장관이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9일 “이번 합의가 ‘보이스피싱’이라는데 외교부 장관이 한마디도 못하는 것은 굴욕”이라며 “어떤 합의가 있었길래 가해자에게 끌려다녀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우 원내대표는 “국회 예비비라도 줄테니 10억 엔을 돌려주자”고 말했다.
2015년 12월 윤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합의를 이뤘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처음으로 책임을 통감하며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에 10억 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지만 여기에 법적 책임과 개별보상 등이 빠져 있어 논란이 많았다. 특히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가 일본정부 재단출연의 전제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가 차기 정부에서 반복되는 일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 국정공백의 틈을 노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연내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확실하게 합의 당사자인 윤 장관으로부터 위안부 합의의 유효성을 인정받고 돌이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소극적 대처로 일관하고 있는 윤 장관의 입장이 더욱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 장관은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낸 장본인으로 합의문에 직접 서명까지 했다. 일본이 합의문 준수를 요구하는데 이제 와서 엎어버릴 수 없는 노릇이다.
◆ 윤병세, 사면초가
윤 장관은 6공화국 들어 가장 오래 재직한 외교장관 기록을 세우고 있다. 윤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과제들을 충실히 수행하며 장수 장관이 됐다. 박근혜 정부가 자랑처럼 내세우던 외교성과의 가장 큰 공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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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
하지만 탄핵정국에서 외교부가 국정농단의 직격탄을 맞은 문화체육관광부 못지않게 여론의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윤 장관의 책임론도 갈수록 거세진다. 비단 위안부 합의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뿐이 아니다.
특히 최근 최순실 모녀의 해외체류를 외교부 고위관계자가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이 외교부의 도움으로 비자 문제 등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3일 “최씨가 외교부 관계자와 수시로 접촉해 민원을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외교부 공직 기강 해이 문제도 심각하게 떠오른다. 칠레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장면이 현지 방송에 보도되고 중동 대사가 대사관 직원을 성희롱해 감봉 처분을 받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연말 국내에서 외교부 서기관이 여성 신체를 몰래 촬영해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부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귀국행사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더욱 눈총을 산다. 윤 장관은 2일 “반 전 총장은 한국 국익 증진과 국가이미지 제고에 기여한 분”이라며 “외교 차원에 국한해서라도 환영행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적 근거가 없는 전관예우 행사를 하겠다는 건 박근혜 정부의 반기문 띄우기”라며 “외교당국의 무능한 외교로 국민 경제가 보복조치를 당하는데 외교부 출신 전관예우 행사를 기어이 해야하느냐”고 비판했다.
특히 반 전 총장(3회)이 윤 장관(10회)의 외무고시 선배라는 점에서 더욱 비난받을 여지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 이미지 개선을 꾀하기 위한 꼼수로 읽는 시각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면 박근혜 정부에서 쌓은 외교 업적들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며 “그나마 외교부 출신인 반 전 총장이 정권을 잡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