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게임=중독' 프레임에 또 움찔, 성남시 공모전 논란만 남겨

▲ 사진은 성남시가 주최한 2025 AI 공모전 문구. <성남시>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게임산업의 핵심지인 경기도 성남시에서 ‘게임’을 4대 중독물질로 명시한 공모전을 열었다가 게임업계의 거센 반발에 게시물을 전부 삭제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자체 공모전 문구 하나로 촉발된 이번 사건은 게임업계가 게임의 중독 프레임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는 시선이 나온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연례행사로 6월16일부터 8월17일까지 접수를 진행하는 콘텐츠 공모전에서 비롯됐다.

총상금 1200만원 규모인 이 공모전은 AI 기반 영상, 숏폼, CM송 등 중독예방콘텐츠를 제작하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공모 주제 안내 문구에 알코올, 약물, 도박과 함께 ‘인터넷 게임’을 4대 중독 항목으로 명시했고 참가자들이 콘텐츠를 제출할 때 4개의 중독 항목을 모두 필수 해시태그로 포함하도록 하면서 논란을 더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자 게임업계는 “때 아닌 4대 중독 논란이 2025년에 부활했다”며 즉각 반발했다.

과거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중독법을 추진할 때 나왔던 ‘4대 중독’ 개념을 성남시가 다시 꺼내들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에도 산업에 ‘중독’이라는 낙인을 찍어 산업 발전을 저해하려 한다는 반발 속에 해당 법안은 입법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내 게임 매출의 60%가 분당에서 나온다”고 발언했을 정도로 성남시가 게임산업의 중심지라는 상징성을 지닌 만큼 업계의 반발은 더욱 거셌다.

게임 이용자들이 “직접적인 영향이 검증된 물질들과 동일 선상에 놨다”며 비판에 나섰고 업계에서도 즉각적인 대응이 이어졌다.

전 카카오 대표인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은 SNS를 통해 “시대착오적”이라며 “세금 내는 데 대한 자부심이 사라진다”고 비판했다. 18일에는 게임업계 8개 주요 협단체들이 공동성명서를 내고 공개적인 사과를 촉구했다.
 
게임업계 '게임=중독' 프레임에 또 움찔, 성남시 공모전 논란만 남겨

▲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오른쪽에서 5번째)을 비롯한 관계 부처와 전문가들이 12일 여의도 전경련 FKI타워 컨퍼런스센터 루비홀에서 열린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 공청회’의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김지호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대변인은 공모전 내용의 전면 수정과 함께 신상진 성남시장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19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보건복지부에 중독용어 사용과 4대중독에 게임을 포함하는 것을 지양하도록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성남시가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성남시는 16일 사흘 만에 ‘게임’을 제외한 공모전 내용을 다시 공지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다만 별도의 사과나 공식 해명은 없었다.

이번 논란은 단발성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게임업계가 반복적으로 노출돼온 ‘중독 프레임’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게임이 여전히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산업임을 드러낸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산업은 그간 정부 규제로 어려움을 겪다 최근 들어서야 점차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며 “강경하게 나온 것도 그간 쌓인 역사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아직도 논의 중인 ‘게임질병코드’ 도입 문제와 맞물리면서 유사한 프레임에 대한 업계의 경계심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정부 모두 출범 당시 게임질병코드 도입 ‘유보’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지만 보건당국과 학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 간 입장차는 여전히 크다. 이 가운데 보건복지부와 정신의학계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