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전장부품업체 하만을 9조 원이 넘는 금액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고 첫 성과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제 이 부회장이 추진하는 신사업으로 '이재용시대 삼성전자'로 변신하고 있다.
◆ 새 성장동력 확보해 위기 정면돌파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15일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성장전략은 그동안의 연구개발(R&D) 중심에서 벗어난 연결과 발전(C&D)에 중점을 뒀다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
|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새 분야에 진출을 확대하며 조기에 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직계열화 효과도 노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가전사업을 중심으로 확대하는 사물인터넷 플랫폼과 스마트폰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등 솔루션사업, 반도체 기술력을 활용한 전장부품사업 등을 새 성장동력으로 점찍고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미국 전장부품기업 하만을 80억 달러(9조3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은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에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만은 세계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한 전장부품업체이며 뱅앤올룹슨 등 프리미엄 음향가전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가전과 스마트폰사업에 음향기술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삼성전자가 하만을 통해 세계 자동차기업에 인포테인먼트를 공급하게 될 경우 이에 필요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도 일괄적으로 공급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출 수 있다.
이런 시너지효과는 갤럭시노트7 단종사태로 위기에 놓인 삼성전자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수 있다.
김동원 현대증권 연구원은 “하만의 인수는 삼성전자의 신의 한 수라고 볼 정도로 가치있는 선택”이라며 “사업다각화를 이뤄내며 최근 개발중인 음성인식기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최근 갤럭시노트7의 발화사고로 대규모 리콜과 단종을 결정하며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 사태를 극복한다고 해도 시장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며 사업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위기대응전략을 수립하고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10월 최초로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올랐다.
또 최근 미국 출장에서 하만 경영진과 직접 만나 인수협상을 담판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외교관’으로 꼽히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을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다.
로이터는 “이 부회장은 이번 인수로 삼성전자가 꾸준히 변화하며 새로운 성장전략을 찾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줬다”며 “마그네티마렐리를 추가로 인수할 가능성도 아직 열려있다”고 보도했다.
이 부회장은 이탈리아 전장부품업체 마그네티마렐리의 지주사인 엑소르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추가적인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전장부품 신사업 확대에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앞으로 사업재편 방향
삼성전자가 자동차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은 최근 중국 전기차업체 비야디의 지분 5천억 원 어치를 사들인 데 이어진 것이다. 미국 자율주행 관련 신생기업에도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프린팅사업부를 미국 HP에 넘기기로 결정하며 비주력사업 매각을 통한 ‘군살빼기’가 이어졌다면 본격적으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는 셈이다.
|
|
|
▲ 하만의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
이 부회장은 주력사업에 역량을 더욱 집중하기 위해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불필요한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실용주의’를 앞세워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조직개편을 주도해왔다.
삼성전자는 카메라사업부를 무선사업부로 흡수하며 조직을 대폭 축소한데 이어 LED사업부를 사업팀 단위로 줄여 몸집을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시게이트와 샤프 등 삼성전자가 보유했던 해외법인의 지분 1조 원어치도 최근 모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전체 직원수도 지난해 3분기보다 3183명 줄었다.
삼성전자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이어 최근 미국 빌트인 가전업체 데이코, 클라우드기업 조이언트, 인공지능기업 비브 등의 인수합병을 연이어 발표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인종 무선사업부 부사장은 최근 미국의 사물인터넷 기업과 인공지능기업 가운데 인수합병 대상을 찾고 있다는 계획도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삼성전자가 최근 추진한 인수합병은 단기적으로 실적에 기여도는 낮더라도 신사업에 기여할 수 있고 미래 성장성이 밝다고 평가받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 플랫폼 육성에 주력하고 있는데 빌트인 가전제품에 이를 적용하고 인공지능과 클라우드기술, 하만의 기술을 활용한 음향기술을 모두 활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스마트폰 인터페이스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음성 기반 인공지능기술 적용은 필수적이다. 이를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에도 적용할 수 있어 시장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이 이런 신사업으로 삼성전자의 성장성을 증명한다면 삼성전자의 새로운 오너로서 경영적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선 뒤 가장 현실적인 성장전략을 마련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에 전환점을 마련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