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2024-09-30 16: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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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연내 전기요금을 올려 한국전력공사(한전) 부채를 해소하고 투자 재원 확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전반적으로 하향 안정화 흐름을 보이는 국제유가와 겨우 안정권에 들어선 물가가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력계량기의 모습. <연합뉴스>
30일 정부 안팎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전기요금은 통상적으로 매 분기가 시작하기 직전 달에 연료비 조정단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올해 4분기 전기요금은 23일 연료비 조정단가를 기존과 같은 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하면서 일단 동결로 가닥이 잡혔다.
다만 전기요금은 연료비 조정단가뿐 아니라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등 다양한 요금 요소로 구성된다.
정부가 기본요금, 전력양요금 등 다른 요금 요소를 조정해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 주요 인사들은 전기요금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연내 전기요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안덕근 장관은 8월 기자간담회에서 “폭염 시기가 지나면 최대한 시점을 조정해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동결이 발표된 이후에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5일 세종정부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기, 가스 등 에너지 요금을 놓고 “에너지값은 원가를 반영해서 상당한 수준으로 (인상해)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며 “지금대로 끌고 가기는 어렵고 국민적 논의에 부쳐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하려는 것은 한전에 누적된 부채 때문이다.
한전은 최근 3년인 2021~2023년에 40조 원을 웃도는 영업손실을 봤다. 영업손실 지속으로 한전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202조 원까지 급증했다.
한전은 재정 악화로 전력망 확충 등 인프라 투자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7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인공지능(AI)의 확대와 급속한 전기화로 전력망 투자 비용은 기존 10차 설비계획에서 산출했던 56조5천억 원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며 “전력망 투자를 늘려야 하지만 한전의 현재 여건상 투자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최근 들어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전기요금 인상 명분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국제유가는 올해 4월에 90달러선까지 올랐다가 7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8월 말까지는 배럴당 70달러 중반대에서 움직이다 9월 들어 70달러 초반 수준으로 비교적 크게 하락했다.
수입 원유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30일 배럴당 71.16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서부텍사스유(WTI)는 배럴당 68.18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국제유가 흐름은 4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국내 전력도매가격(SMP)에 영향을 준다. 국제유가가 하향 안정화되면서 한전은 올해 역대 실적을 기준으로도 높은 수준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의 전망을 종합하면 한전의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는 7조 원 안팎이다. 한전은 이례적으로 10조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낸 2015~2016년을 제외하면 흑자를 내는 해에는 대체로 4조~6조 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내 왔다.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정부에 부담이다.
물가상승률은 올해 8월에 2.0%로 41개월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지며 안정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2%대 물가상승률은 정부의 목표치에 부합하는 수준이다.
물가지표의 안정화는 지난해 이후 동결된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은 올해 6월 물가안정목표 상황 점검회의를 통해 “전기·도시가스 요금 동결, 유류세 인하 조치 등이 물가 상승압력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며 “앞으로 전기·도시가스 요금이 점진적으로 인상되고 유류세 인하 조치가 단계적으로 환원되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일부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물가 관리에 공을 들이는 기획재정부 역시 전기요금 인상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SBS 저녁 뉴스에 출연해 “윤석열 정부 들어 전기요금이 50% 정도 인상됐다”며 “국민 부담이 얼마나 늘었는지 판단이 중요하고, 한전의 재무구조와 에너지 가격 등을 놓고 종합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