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희 기자 choongbiz@businesspost.co.kr2024-09-26 15: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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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최근 전 세계에서 의약품 품절 사태가 발생하는 가운데 제약바이오산업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와 정책적 환경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의원은 26일 국회에서 열린 '제약산업 육성 및 의약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의약품 수급불안을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보건안보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26일 국회 의원회관 2세미나실에서 열린 '제약산업 육성 및 의약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날 토론회에는 최근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를 놓고 기업과 학계, 정부 관계자가 머리를 맞댔다.
코로나19과 국제 분쟁으로 공급망 문제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가 의약품 부족문제를 겪고 있다.
개발과 생산에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 제약산업 특성상 수요가 많지 않은 희귀약물은 특정 제약사가 독점공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생산공장 한곳에 문제가 생기면 전세계 환자들이 약을 구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의료공백에 따라 환자들이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약을 처방받는 일이 있어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가 점점 악화하고 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으로 432건 340개 품목의 의약품이 공급중단 또는 부족현상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광훈 대한약사회 회장은 "지금 현장 약사들의 마음이 타들어가고 있다"며 "의약품 수급이 적기에 되지 않아 환자에게 약을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광훈 회장에 따르면 약국현장에서는 정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약사들이 자체 연락망과 품앗이를 구성해 약을 조달하고 있다.
▲ 26일 국회에서 열린 '제약산업 육성 및 의약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날 토론회에서는 문제해결을 위해 의약품 원료 확보에서부터 제조, 유통, 처방, 조제에 이르기는 전 과정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각계 의견들이 나왔다.
특히 약사들은 의약품 유통과 처방과정에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민필기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품절사태가 벌어졌다"며 "이같은 필수의약품을 3개월치만 비축한다면 공급이 멈추더라도 시간은 벌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는 보건당국에 △코로나19 등 대규모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의약품 비축 △팩스 시스템의 디지털 대체 △부족 의약품에 대한 대체조제 규제완화 등을 부탁했다.
민필기 부회장은 "최근 정부가 상급병원 구조전환에 9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는데 그 1%인 900억 원만 의약품에 투자해도 이 난리를 막을 수 있다"며 "의사의 진료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살리는 것은 결국 약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제약산업 단계에서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특히 저렴한 '제네릭의약품(복제약)'의 제조 인프라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제네릭의약품이란 흔히 복제약이라고도 하며 이미 출시된 약 성분을 토대로 만들어진 약을 말한다.
타이레놀(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 등 원조 브랜드약과 비교해 제네릭의약품은 효과 차이가 없고 가격은 대체로 저렴하기 때문에 저작권이 만료되면 제네릭의약품 생산이 늘어나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게 된다.
제약업계는 제네릭의약품 개발과 생산 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원을 부탁했다.
김진이 보령 상무는 "많은 비용이 드는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 정부지원이 있다면 제네릭의약품 개발 결정이 더 쉬워질 수 있다"며 "최근 공급망 안정화법에서 의약품 제조기업 1곳 연구기업 1곳이 지원대상이 됐는데 이 사업을 더 확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 민필기 대한약사회 부회장이 26일 국회 토론회에서 점점 악회되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지나치게 엄격한 보건당국의 가격챙적이 제네릭의약품 생산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제기됐다.
김진이 상무는 "기업이 감염병 확산 등 수요증가가 예상돼 생산을 늘리려고 해도 국민건강보험 사용량약가연동제(PVA)가 발동돼 공급가가 내려가면 결과적으로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며 "제약사가 보건당국 요청에 따라 국민보건에 기여하는 증산을 했다면 사후 약가인하에서 제외해준다는 약속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필기 부회장은 "PVA가 발동되면 제약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가서 '국민건강에 기여했으니 10% 깎이는 것을 5%만 깎는 것으로 갈음해달라'고 사정해야 한다"며 "또 PVA로 약가가 깎이면 다시 오르지 않고 영원히 가는 식인데 이래서는 안되며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제네릭의약품 발전을 위해 국민과 의료인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내 소비자와 의료인은 브랜드약을 선호하고 제네릭의약품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헬스케어 데이터분석기업 IQVIA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제네릭의약품 관련 지출은 늘어나는 추세에 있으나 한국은 유독 이에 역행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1996년과 2020년을 비교했을때 제네릭의약품 사용량은 50%, 지출은 5% 늘었으나 같은 기간 한국에서 제네릭의약품 사용량은 5.4%, 지출은 7% 감소했다.
민필기 부회장은 "한 천식 알러지 약의 경우 국내의 한 공장에서 같은 성분으로 14개 회사 제품을 만들어 라벨만 다르게 붙인다"며 "이걸 환자야 다르게 인식할 수 있지만 의사들까지 다른약으로 생각하고 대체조제를 막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은 의약품 가격이 나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우리 건강보험재정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종혁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제네릭의약품을 사용했을때 환자는 본인부담이 10배까지 줄어들고 국가재정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한국이 8년간 제네릭 의약품을 통해 절감한 건보료 재정만 7천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종혁 교수는 △제네릭의약품에 대한 인식개선 △환자와 의사, 약사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인센티브 제도 등을 제안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