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의 가계대출 금리인상에 ‘쉬운 길’이라는 쓴소리를 하면서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추가 조치 확대에 나섰다.
이 원장이 임기 마지막 해에 새로운 금융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상황에서도 거침없는 행보로 강한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이 가계대출 급증과 관련 당국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이 가계대출 관리를 두고 공개적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주요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관련 추가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날 오전 회의를 통해 실수요자 중심의 가계부채 관리 종합대책을 결정해 발표했다.
KB국민은행은 29일부터 수도권 주택 대상 주택담보대출 기간을 기존 최장 5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하고 생활안정자금대출 한도도 1억 원으로 제한한다.
검토단계에 있던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보험 적용도 막기로 했다.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할 때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에 대비해 최우선변제권이 보장되는 소액임차보증금만큼을 뺀 금액으로 대출한도를 정한다.
하지만 모기지신용보험(MCI), 모기지신용보증(MCG) 등에 가입하면 이 금액까지 포함해 전체 주택담보대출비율(LTV)만큼 대출을 해줬는데 이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이밖에도 주택담보대출 거치기간을 없애고 나대지(지상에 건물이 없는 토지) 담보대출을 금지한다. 다른 은행 전세자금대출 대환을 금지하고 마이너스통장 한도도 현행 1억~1억5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크게 줄인다.
그야말로 대출 실행을 제한하기 위한 ‘종합세트’를 내놓은 셈이다.
신한은행도 현재 가계대출과 관련 다주택자에 관한 생활안정자금 취급을 중단하는 추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날부터 임대인의 소유권 이전 등을 조건으로 하는 전세자금대출 취급 제한도 실시하고 있다. 실수요자가 아닌 전세를 안고 부동산을 매수하는 방식의 ‘갭투자’에 활용되는 대출을 막겠다는 취지다.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보험 상품 취급도 중단해 실질적으로 대출한도 줄이기에 돌입했다.
우리은행은 이날 다주택자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최대 한도를 기존 2억 원에서 1억 원으로 제한하고 전세대출 조건부 취급제한, 주담대 모기지보험 상품 가입 제한 등을 9월2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하나은행도 모기지보험 가입 제한 등 추가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 규제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더 이상 추가 조치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기준을 높였다”며 “대출한도와 기간 제한 등이 이미 단행된 만큼 실수요자를 제외한 추가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전날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은행의 금리정책에도 관여를 할 수 있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 원장은 “일부 은행들은 가계대출 수요가 예상범위를 크게 벗어나자 금리인상 등 손쉬운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시장 자율성 측면에서 은행의 금리정책에 관여를 안 했지만 앞으로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이 과정이 정부 개입으로 비쳐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대출금리를 높여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는 시선을 받고 있는 은행들은 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금감원은 이미 은행 내부 대출관리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기도 하다.
금감원은 7월 중순부터 은행권 가계대출 관련 현장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가계대출 관련 연간 경영계획부터 대출실적의 성과지표(KPI) 반영 실태, DSR 규제를 우회한 대출 취급 사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이 원장은 9월 이후에도 가계대출이 늘어나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에서 나아가 더 강력한 규제방안도 검토할 뜻도 밝혔다.
업계 안팎에서는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의 스트레스 DSR을 넘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자체를 조정하는 규제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바라본다.
이 원장이 은행권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압박하면서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내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원장은 전날 가계대출뿐 아니라 우리금융의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소극적 충당금 적립, 금투세,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안까지 금융권 현안들에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았다.
금융위원회가 새 위원장을 맞으면서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 재설정을 놓고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다시 한 번 거침없는 태도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 원장은 취임 초 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 대응부터 금융권 지배구조 개편, 내부통제 개선, 상생금융 확대 등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강한 금감원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원장은 검사 출신 첫 금감원장으로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22년 6월 금감원장에 올랐다. 금감원장 공식 임기는 3년으로 현재 임기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