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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8월] 세계는 '부자 증세', 우리나라는 여야 모두 '부자 감세'

박창욱 기자 cup@businesspost.co.kr 2024-08-06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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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부자를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왜 비용이라 하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말이다. 노동자 출신인 룰라 대통령은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데스크리포트 8월] 세계는 '부자 증세', 우리나라는 여야 모두 '부자 감세'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세법 개정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룰라 대통령은 부자들에게 좀 더 많은 세금을 걷어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바라본다. 이는 세계 여러 나라 진보 정치 세력의 공통된 철학이기도 하다.

이런 정책은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데다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내수 부양을 통한 경제성장 효과가 크다는 점도 증명됐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 자산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는 이런 기류는 주요 20개국(G20) 사이에서 점차 확산하고 있다. 

현지시각 7월25~2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초고액 자산가(ultra-high-net-worth individuals)에게 효과적 세금을 부과하도록 협력한다'는 요지의 국제조세협력 선언문이 채택됐다. 

일부 국가의 이견으로 구체적 세율이 정해지지는 않았고 완곡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G20 국가 간에 부자들에 대한 세금부과 방식을 수정해야 한다는 합의문이 사상 처음 나온 것이다.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불평등 해소와 지구적 위기인 기후대응 재원 마련을 위해 사실상 부자 증세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셈이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에 앞서 세계 1% 부자들의 재산이 지난 10년 동안 42조 달러(약 5경7천조 원)이 늘었다는 조사자료를 내놨다. 

이는 세계 소득 하위 50% 인구의 부를 합친 것보다 34배 많은 수치다. 세계 억만장자 5명 가운데 4명은 G20에 산다. 

옥스팜의 조사에 따르면 G20 국가의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지난 40년 동안 45% 증가했지만 이들의 소득에 대한 최고세율은 60%에서 40%로 3분의 1가량 하락했다. 

옥스팜의 불평등 정책책임자 맥스 로슨은 "인류의 가장 부유한 1%는 계속해서 주머니를 채우고 나머지는 부스러기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초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려는 움직임은 부인할 수 없는 추세"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런 세계적 조류와는 반대로 부자 감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상위 1%가 70%가량을 내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공제금액 상향과 세율 인하를 통해 지난해에만 2조5천억 원가량 줄여줬다. 이어 올해 세법개정안에서는 상속세 감세안을 발표했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인하하고 대기업 최대주주 상속세 할증(20%) 폐지를 추진한다. 정부안대로라면 앞으로 5년간 세수가 올해 대비 18조4천억 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부유층과 대기업 세금을 줄여주면 투자와 소비가 늘어 자영업자와 서민도 혜택을 본다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난해 50조 원 이상 국세가 줄어든 데 이어 올해 들어 5월까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52조 원이 넘는다. 

재정이 이렇게 부족하니 내수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데도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자 감세를 추진하는 셈이다. 결국 부자 감세가 근로소득세와 담배·주류 관련 세금 인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많다.  

윤석열 정부에서 말하는 낙수효과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근거가 없다는 점이 이미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낙수효과를 거론하며 법인세를 3%포인트 인하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그 뒤 5년간 투자는 70% 이상 줄이는 대신 사내유보금만 2배 이상 늘렸다. 투자는 세금 깎아준다고 하는게 아니라 이익이 생길 가능성이 있을 때 이뤄진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대부분 기간 30% 안팎의 저조한 지지율에 머물렀다 각종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노년세대를 중심으로 한 보수층만이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정파적 입장에 따라 부자감세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역시 전당대회 진행 과정에서 종부세와 금융투자세(금투세) 완화 방침을 내놓고 있다. 1가구 실거주 1주택에 대해 종부세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거나 금투세 과세 대상을 투자차익 연 5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이재명 전 대표의 개인적 의견으로 민주당 당론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압도적 지지율로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대표 연임이 유력시되는 만큼 민주당 내부에서 종부세와 금투세 완화 논의가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데스크리포트 8월] 세계는 '부자 증세', 우리나라는 여야 모두 '부자 감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가 지난 4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단 24만표, 0.73%포인트 차이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졌다. 그렇다 보니 중도층으로 지지세를 넓히기 위해 감세 발언을 내놓는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물론 종부세의 경우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가진 중산층도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수백억 원 부동산 부자를 대상으로 한다. 금투세 과세 대상은 전체 투자자의 3%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부세와 금투세 완화 방안은 결국 부자 감세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의 정치 비전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른바 '먹사니즘'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엔 내수부양을 위해 13조 원가량이 필요한 민생지원금 법안도 통과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감세를 거론하는 건 정책적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말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부자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이 전 대표도 민생을 거론하면서 일부 항목에서나마 부자 감세를 말한다. 정부를 향한 민주당의 부자 감세 비판 목소리에도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증세를 하면서 표를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자신의 비전을 펼치기 위해 정권을 잡고자 하는 과정에서 정치공학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부자 감세론을 꺼내는 것은 모두가 어울려 평등하게 산다는 그의 정치철학 '대동세상'과 거리가 다소 멀어보인다.

결국 여야 모두 세금과 관련한 논의에 정치적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보다는 세금을 어떻게 공정하게 걷고 더 효율적으로 쓰느냐에 관한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경제가 정치의 하위 개념이 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정부가 세금을 어떻게 걷고 어떤 방식으로 쓰냐에 따라 경제 성장이나 기업의 경쟁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세금과 관련한 논의에 심모원려(深謀遠慮), 더 큰 것을 생각하는 깊은 사고와 멀리 보는 시각이 담기길 기대한다. 박창욱 정책경제·글로벌&기후에너지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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