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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회사들은 왜 '구멍가게'일까

조은아 기자 euna@businesspost.co.kr 2014-08-06 18: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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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제약회사들은 왜 '구멍가게'일까  
▲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한국제약협회를 방문해 이경호 회장과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한국제약협회 제공>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1천조 원에 이른다. 반면 국내 제약시장은 19조 원 규모다. 세계시장의 1.9%에 불과하다.

매출액 기준 국내 제약업계 1,2위를 다투는 유한양행과 녹십자의 매출을 전부 합쳐도 세계 1위 제약회사 노바티스 매출의 3%에 불과하다.

세계 유수의 다국적 제약사들은 엄청난 돈을 벌고 매출의 20% 가량을 연구개발에 쏟아 붓는다. 반면 국내 제약사들은 매출도 작을뿐더러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중도 낮다. 영업이익률이 낮아 연구개발에 쏟아 부을 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약업계는 그 원인으로 정부의 약가억제 정책을 꼽는다.

정부정책이 제약업계를 고사시킨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약회사의 수익을 떨어뜨리고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을 없애 결국 다국적 제약사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몰아넣는다고 주장한다.

길고 지루한 시간을 거쳐야 하는 신약개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약가억제 정책은 그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가치가 없게 만들어 제약회사들의 신약개발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약산업을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정부도 그런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데 약의 관점에서만 보기 때문에 연구개발에 필요한 충분한 잉여소득을 올리기 어렵다”며 “정부가 제약산업을 그저 최종단계의 약 소비관점에서만 본다”고 말했다.

◆ 생존 위해 해외의약품 의존도 높여

의약품 판권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고 있다.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는 매출이 잘 오를 수 있는 제약회사를 찾기 위해, 상품이 필요한 국내 제약회사는 굵직한 품목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국내 제약회사의 이런 움직임은 생존을 위한 활로찾기로 봐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괄약가인하제도 등 각종 정책적 규제 때문에 자체 제품만으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약가제도는 건강보험재정 확보를 위한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지속적인 제약산업 규제로 보험재정을 줄여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약값을 계속 떨어뜨렸다.

2012년 4월 일괄약가 인하제도가 시행된 이후 제약회사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당시 정부는 6506개 의약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약가 인하조치를 단행했다.

제도 시행 후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간의 가격차이가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의약품 처방관행이 바뀌었다. 이전에 가격이 낮은 제네릭 의약품을 처방하는 의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약가차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오리지널 의약품을 선호하게 됐다.

그러자 제약회사들도 유명 해외의약품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매출 감소량을 만회하기 위해 너도나도 다국적 제약사들과 손을 잡고 남의 제품을 판매했다.

이제 전체 매출액의 30% 이상을 ‘상품매출’로 채우고 있다. 상위 10대 제약사의 상품매출 비중은 2011년 27.3%에서 2012년 30%를 넘어섰고 지난해 40%에 육박했다. 상품매출이란 남이 만든 제품을 팔아 거둔 매출을 뜻한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왜 '구멍가게'일까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2년 한국제약협회에서 열린 제132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제약산업 비전과 발전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갑 해외제약사, 을 국내제약사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국적 제약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판권계약이 만료될 경우 매출공백을 채우기 쉽지 않은 데다 갑자기 판권을 회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의 영업과 마케팅을 통해 어느 정도 국내 영업망이 확보되고 제품이 국내에서 대형품목으로 성장하면 판권을 되찾아가는 경우다.

올해만 해도 일동제약이 지난 10년 동안 키운 습윤드레싱 ‘메디폼’과 보령제약의 B형 간염치료제 ‘바라크루드’ 등의 판권이 모두 회수돼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을 들여와 도소매업에 치중해 온 국내 제약사들은 본사가 판권을 회수하면 타격을 입는다. 오랜 기간 비용을 들여 쌓아놓은 상품 인지도가 판권 회수로 본사에 넘어가는 것과 동시에 탄탄하게 다져놓은 유통망이 무용지물이 된다.

결국 판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좋은 조건을 내거는 출혈경쟁이 제약회사 사이에서 벌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두 개 이상의 제약회사가 공동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회사가 품목회수를 거론하며 판매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면 매출감소를 우려한 제약사들이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다국적 제약사의 판매 대리점 역할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밀어붙인 일괄약가 인하제도로 매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를 경험한 제약사들이 너도나도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 도입과 공동마케팅에 앞장서면서 국내 제약시장이 다국적 제약사에 종속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잘 만들수록 값 낮아지는 약값

보령약품이 내놓은 ‘카나브’는 약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격이 오히려 807원에서 781원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의약품 판매량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제약사들은 신약개발 후 매출이 늘어나면 약값을 떨어뜨려야만 한다.

보령제약은 올해 초 카나브의 터키 수출이 무산되는 일도 겪었다. 국내 보험약가를 기준으로 현지에 유통하면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재의 국내 보험약가는 현지 유통 제약사와의 이견을 좁히지 못할 정도로 낮아졌다.

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제약사가 최초에 제시했던 예정사용량보다 수요가 많아져 매출이 오르면 가격이 깎이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09년 건강보험에 등재된 의약품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됐다.

정부는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의약품의 팽창을 막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그 불똥이 국내 제약회사에까지 튀었다.

앞서 일양약품의 항궤양제 신약 ‘놀텍’도 출시 이후 약가가 15% 가량 깎였다. 2009년 출시된 놀텍은 지난해 매출 100억 원을 넘어섰다. 그러자 얼마 후 정부는 약가를 인하했다.

잘 만들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구조에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신약개발에 나설 제약회사는 없다는 게 업계의 볼멘소리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매출액 1천억 원 이상의 22개 제약회사는 지난해 평균 289억 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평균 7.5%다.

이경호 제약협회 회장은 “경쟁력있는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가격이 깎이는 결과를 초래해 대형 국산품의 탄생을 가로막고 있다”며 “보령제약 카나브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출 주도 의약품 등에 대해서 예외 조항을 두는 등의 제도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왜 '구멍가게'일까  
▲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이 지난 2011년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보건복지부로 약가인하를 항의하기 위해 찾아갔다.<뉴시스>

◆ 신약 가격은 OECD 40% 수준

신약개발이 너무 오래 걸리고 어려운 반면 그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도 제약회사들이 연구개발을 꺼리는 이유다. 신약가격 자체가 낮게 책정된다는 것이다.

제약회사 관계자들은 "정부가 신약가치를 인색하게 평가한다"며 “수백억 원을 들여 신약개발에 투자했지만 약가인하로 인해 투자한 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10억 달러에 이르는 비용과 최소 10∼15년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체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신약은 20개밖에 되지 않는다. 신약개발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제약업계에서 “약을 만드는 것은 과학을 넘어 예술”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감수하고 제약사들은 신약개발에 뛰어든다. 하지만 정부가 약값을 낮게 책정하면서 의욕이 꺾이게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신약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 가격의 42% 수준이다. 또 신약의 74%가 OECD 국가 중 가격이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김성호 전무는 “우리나라는 신약가격이 OECD 최저수준인데다 그 후에도 사용량 약가 연동제 등을 비롯한 각종 규제정책으로 약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신약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깎고 보는 식의 약가정책은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매출 1조 기업과 글로벌 의약품을 만들려면 약가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며 “제약사의 수익성이 올라가고 이러한 수익성을 기반으로 제약사는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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