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화법이 달라졌다. '말씀'이 많아지고, 비유적인 표현이 부쩍 늘었다. 작은 수첩을 보면서 절제된 표현을 하던 예전의 '박근혜'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대체 무엇이 박 대통령을 이렇게 바꿔놓은 것인가?
지난 5일 오후 국무조정실과 국민권인위원회, 법제처로부터 올해 첫 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말의 향연’을 펼쳤다. 이날 박 대통령은 평상시와는 달리 많은 비유들을 써가며 무려 글자 수 4233자(200자 원고지 30장 분량)의 말을 쏟아냈다. 본격적인 업무보고에 앞서 공직자의 자세를 당부하는 데에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우선 비정상의 정상화와 관련해 ‘진돗개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고 한다”며 국무조정실에 ‘독하게’ 정상화를 추진해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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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4년도 국무조정실·국민권익위원회·법제처 2014년도 국정평가 종합분야 업무보고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박 대통령은 또 각 부처별로 운영하는 행정 시스템 등을 하나로 통합해 국민중심으로 운영하자는 취지로 ‘종합선물세트’론을 제시했다. 그는 “인터넷 사이트가 각 부처마다 많이 있지만 원스톱 서비스가 되지 않아 국민입장에서는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종합선물세트를 받으면 좋아하는 것처럼 수요에 맞춰서 법적으로 이런 것도 이렇게 한다고 하면 더 와 닿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입법지연 상황을 ‘국수’로 비유했다. 그는 “국수가 따끈따끈 할 때 먹어야 소화도 잘 되고 맛도 있고 제대로 먹은 것 같은데, 시간이 한참 지나 탱탱 불어터지고 텁텁해지면 맛도 없어지는데 누가 먹겠느냐”며 “정책도 타이밍이 중요해서 묵히고 퉁퉁 불어터진 국수 같으면 시행돼도 별로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상황에 따른 국정과제 조정보완의 필요성을 ‘유도탄’에 빗댔다. 박 대통령은 “유도탄이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것은 발사되는 순간부터 목표물에서 나오는 신호를 계속 감지하고 추적해서 그 목표물에 맞춰 비행궤도를 끊임없이 수정 보완하기 때문”이라며 “모든 부처 역시 국민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개선·보완해 나가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의 말이 많아지고, 비유적 화법도 늘어난 것은 박 대통령 스스로 '불통' 이미지를 깨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소통하겠다"고 했다. 또 "통일은 대박"이라는 파격적인 말로 단숨에 통일을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켜 냈다. 다양한 비유는 그만큼 국민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정운영에 대한 박 대통령의 답답함이 깊고 넓게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공약들은 제자리 걸음이다. 게다가 장관들은 '헛발질'로 국민의 분노만 사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질책과 경고만 계속 늘어나고 있다. 철도파업 때는 관계장관들이 '강 건너 불보듯 한다'고 질책했고,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 때는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향해 공개적인 경고를 보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해서는 경고에 이어 결국 해임을 했다.
이런 상황이면 인적 쇄신이 불가피한데도 "개각은 없다"고 말해 그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했다. 물론 개각을 하고자 해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청문회 등의 부담이 커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더군다나 여권 내에서 '이명박 사람'을 쓰지 않으려고 하니 인재풀도 적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이다 보니 박 대통령으로서도 할 수 있는 게 말밖에 없어 보인다.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잔소리가 느는 법이다. 여기에다 장관들이 잘 따르지 못하니 이해도 넓히고 말의 강도도 올리기 위해 여러 비유화법들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화법 변화가 과연 국정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그 변화의 실질적인 내용이고, 그 내용을 제대로 집행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사람을 제대로 쓰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위한 박 대통령의 조처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은 대박' 발언만 해도 그렇다. 그 말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며 '대박'을 쳤지만, 그 이후 실질적 조처들로 내용을 채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발언의 배경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 다음 날인 7일 주한미군이 경기 북부에 기계화 대대를 추가 배치할 것이란 내용이 보도되면서 결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국방부는 “미국 순환배치 전략의 일부”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박 대통령이 정말 통일에 대한 의지와 로드맵이 있냐"는 의구심만 낳았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에는 압축적인 문장으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참 나쁜 대통령"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뒤 그의 말은 사뭇 달라졌다. 비유 화법을 즐겨 쓰기 시작했다. ‘손톱 밑 가시’(중소기업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 ‘신발 속 돌멩이’(서민들이 겪는 어려움), ‘애기(정책)를 낳는 게 다가 아니라 어떻게 잘 키우느냐가 문제다’ 등이 그렇다.
또 같은 얘기를 되풀이하고, 정책 현안을 놓고 세세한 내용까지 일일이 지적하고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세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정책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대통령의 화법은 오히려 참모진들의 역할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의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 대통령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비유화법으로 포장된 '일방지시'가 아니라 허심탄회한 소통일 수 있다. 이래서는 박 대통령이 바라는 진돗개는 나올 수 없다. 진돗개는 주인이 자신을 알아줄 때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