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기업에 더욱 강도 높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다양한 환경 규제와 공시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기업의 경영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는 해다. 탄소배출량 공시와 관련해서는 기준과 의무화 일정이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플라스틱과 관련해서는 강제성 있는 국제 규범의 탄생이 가까워지고 있다. 생물다양성 논의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신년을 맞아 올 한해 ESG 이슈 중 국내 기업에 파급력이 클 환경 영역에서의 변화를 짚어본다.
① 전 산업 플라스틱 생태계 바뀐다, 강제성 있는 규범 첫 선
② 유럽에서 속도 붙는 생물다양성 규제, 한국 기업들도 촉박해진다
③ 굳히기 들어가는 탄소배출 공시, 올해 의견 수렴 등 마무리 |
▲ 유럽에서 생물다양성 관련 규제에 속도가 붙고 있다. 사진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의회 의사당. < Flickr >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 진출 한국기업이 지켜야 할 '기준'이 탄소에 이어 올해 중 하나 더 세워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실행 준비를 시작한 유럽연합(EU)이 올해엔 생물다양성과 관련해 기업들에 정보공개를 요구하면서 기업활동이 미치는 악영향에 과징금 등 실질적 제재를 가하려는 정책을 입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방안에 따르면 과징금은 전 세계 매출의 5%에 이르며 유럽 진출 한국기업들 일부가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비즈니스포스트가 전문가 의견과 정보를 취합한 바에 따르면 올해부터 유럽연합은 생물다양성 관련 규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과징금 등 제재 마련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의 하위규정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ESRS)'은 현지시각으로 1월1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직원수 250명 이상
△연간 순매출 4천만 유로(약 572억 원) 이상
△보유자산 2천만 유로(약 286억 원) 이상 등 3개 항목 가운데 2개 이상 해당하는 기업이 대상이 된다.
올해엔 유럽 지역 기업들 5만여 곳을 대상으로 하지만 2026년 6월부터는 유럽 지역에서 거래하는 외국 기업 즉 한국 기업들도 적용을 받는다.
김현정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선임연구원은 "유럽연합이 발표한 기준에 따르면 유럽에 진출한 다수의 한국 기업도 공시 대상이 될 것"이라며 "특히 2028년부터는 유럽연합에서 실질적 기업활동을 하는 한국의 최상위 모기업들도 적용범위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생물다양성 관련 규제는 ESRS의 하위규정 'E4'에 명시됐다. E4는 기업들이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관련 전환 계획,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관련 정책,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관련 목표 등을 공시하도록 규정했다.
석유 및 가스, 화학 제품, 에너지, 채광 등 18개 산업이 대상이다. 유엔개발계획과 유엔환경계획, 세계자연기금(WWF)이 2021년 설립한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NFD)'가 대상 산업을 규정했다.
18개 산업에 속한 유럽 지역 기업들, 유럽증시에 상장된 외국 대기업들은 올해엔 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관련 정보를 수집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2025년에는 이를 공시해야 한다.
다만 유럽연합은 생물다양성 이슈가
공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직원 수가 750명 미만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1~2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한다.
기업에 과징금 등 실질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규제도 올해 내 최종안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로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다.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은 2023년 6월 유럽의회 채택, 12월 유럽의회와 이사회의 잠정합의를 거쳐 수정안이 나온 상태다. 유럽연합은 올해 안 최종안 발표를 목표로 잡고 있다.
여기서 ‘실사(due diligence)’란 개인 또는 단체가 스스로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을 예방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은 기업 스스로 기업활동이 미칠 악영향을 예방하도록 만드는 지침인 셈이다.
이에 따라 이 지침은 기업이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관해 실사 의무를 부여한다. 구체적으로는 기후변화 영향 최소화, 생물다양성 손실 및 생태계 훼손 방지 등이 규정됐다.
12월 발표된 수정안에 따르면 직원 수가 500명 이상이고 전 세계 순매출액이 1억5천만 유로(약 2146억 원)가 넘는 유럽연합 내 기업들은 실사지침 적용범위에 들어간다.
비유럽연합 기업들은 규정 발효 후 3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유럽지역 발생 순매출액이 3억 유로(약 4295억 원) 이상이면 규제 대상이 된다.
기업을 긴장하게 만드는 건 '과징금' 조항이다. 수정안은 지침 발효 이후 이를 위반한 기업에 전 세계에서 발생한 순매출의 최대 5%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한다.
현재 유럽연합은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을 2026년부터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과징금 규모는 도입하는 각 회원국 개별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두 가지 규제가 완비되면 유럽연합은 기업들의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활동 정보를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김 선임연구원은 “ESRD와 CSDDD의 본질적 차이는 ESRS는 지속가능성 보고를 위한 기준이라면 CSDDD는 기업이 인권 및 환경에 관해 책임감 있는 운영 활동을 하도록 보장한다”며 “ESRS는 보고 자체가 목적이므로 기업이 경영을 어떻게 했는지 보고하도록 하고 CSDDD는 기업이 공급망 관리를 하도록 요구하는 지침이기 때문에 관리를 목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 유럽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DDD)의 세부사항 비교.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
이들 규제가 도입되면 유럽연합의 주요 교역국가인 한국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2023년 9월 한국무역협회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의 3대 수입국 자리를 차지했다. 2023년 1월부터 4월까지 유럽연합의 한국 제품 수입은 10.7% 증가해 일본과 러시아보다도 높은 수준을 달성했다.
유럽연합이 도입하는 공시 기준과 실사 규제가 공급망 전체를 아우른다는 점에서도 한국 기업들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 내에서 원자재를 조달해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한국 기업들이 모두 공시와 실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2023년 6월 도입된 유럽연합 산림벌채 규정(EUDR)을 보면 유럽 시장에 유입되는 고무, 커피, 목재 등 상품 사용 업체는 공급업체까지 포함해 실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환경 피해와 품목 가치에 비례해 벌금이 부과된다. 벌금은 전년도 유럽지역에서 일으킨 매출의 최대 4% 이상까지도 부과될 수 있다.
민창욱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유럽연합은 공급망 실사를 통상규제에 활용해 유럽뿐만 아니라 유럽 이외 지역에서 이뤄지는 산림훼손을 방지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우리 기업도 생물다양성에 관한 국제사회의 규제와 시장 동향을 잘 파악해 자연 리스크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도 생물다양성 관련 공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1월1일부터 발효된 IFRS S1(일반 공시)와 IFRS S2(기후공시)에 이어 IFRS S3, S4와 관련해 의견수렴 및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S3와 S4 도입 유력 항목으로는 생물다양성, 인권 침해 등이 거론되고 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