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2023-12-19 17: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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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도 EU에 이어 탄소장벽을 쌓고 있다. 1월1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2고로에서 한 직원이 용광로에서 쇳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에 이어 영국까지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하면서 유럽지역의 탄소장벽이 더욱 공고화하고 있다.
탄소장벽의 압박은 철강, 시멘트 등에서 강도가 세지는 것은 물론 다른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18일(현지시각) 영국 재무부는 성명을 내고 '영국 탄소국경조정제도(UK CBAM)'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성명에 따르면 2027년부터 영국으로 수입되는 철, 철강, 알루미늄, 비료, 수소, 세라믹, 유리, 시멘트 등에 탄소배출량 관련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은 “탄소배출에 부과하는 세금은 철강, 세라믹과 같이 해외에서 생산되는 탄소집약적 제품이 영국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비슷한 탄소 가격을 부담하도록 할 것”이라며 “영국의 탈탄소화 노력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영국 산업계는 탈탄소화에 투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움직임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정책 방향과 일치한다.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유럽연합으로 수입되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수소 등 6개 품목에 탄소배출량에 따른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2026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올해 10월부터 전환기간이 운영되고 있다. 전환기간에는 실제 세금을 부과하지는 않지만 세금 부과의 대상 품목을 수출하는 기업에 탄소배출량 관련 정보를 공시할 의무가 지워진다.
유럽연합와 영국이 부과하려는 탄소배출량에 따른 관세는 탄소누출(carbon leakage)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목적이 같다.
탄소누출이란 환경규제가 강한 국가에서 약한 국가로 생산시설 등 탄소 배출원이 이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환경정책의 강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기업이 지게 될 탄소배출량 저감 등 관련 비용의 부담이 커져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환경규제가 약한 국가로 기업의 생산시설이 옮길 유인이 생기게 된다.
유럽연합 내에서 지속적으로 탄소배출 관련 규제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탄소배출과 관련된 세금도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12월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부대행사에서 “현재 세계적으로 73가지 탄소 가격제가 시행 중이나 이들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3%만을 다루고 있어 더 늘려야 한다”며 “탄소배출로 환경을 오염을 시키고 있다면 그에 대한 가격을 지불해야 할 것이고 돈을 내기 싫다면 혁신을 통해 탈탄소화하면 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당장 이번 재무부 성명과 관련해 탄소배출 관련 세금의 도입 시기를 더 앞당겨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국의 무역단체인 UK스틸(Steel)은 재무부의 성명에 “유럽연합이 영국보다 1년 앞선 2026년에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할 예정인데 이는 1년 동안 중국과 같은 국가의 고탄소 철강이 영국 시장에 덤핑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에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탄소장벽 쌓기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유럽이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지역일 뿐만 아니라 당장 탄소배출 관련 세금이 부과될 품목에 철강, 시멘트와 같은 주요 수출품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2년 기준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상 품목 중 철강의 비중은 89%에 이른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기업들은 유럽의 탄소장벽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탄소중립 추진을 위한 조직 운영, 로드맵 수립, 전기로 확대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시멘트업계 역시 10일에 한국시멘트협회가 부설 조직을 통해 시멘트 생산과 관련된 탄소배출량 산정을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에 나서는 등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만 지역적으로는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규대 대상 품목의 범위도 넓어질 조짐이 보인다는 점에서 국내의 대응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정주희 KDB 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11일 내놓은 ‘철강산업 관련 미국, EU 탄소배출 규제 동향’ 보고서에서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유럽연합과 미국이 맺은 ‘지속가능한 철강과 알루미늄을 위한 국제협정(GSSA)’ 등 철강 분야에서 진행 중인 탄소배출 규제 강화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전환기간에 석유화학, 플라스틱 등 다른 산업군으로도 적용 확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짚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