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유 기자 jsyblack@businesspost.co.kr2023-12-11 16: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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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화그룹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 제도가 점차 확산하고 있다. 이 제도는 임직원들이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책임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제도가 대기업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연스럽게 지분율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인 데다 증여·상속보다 매겨지는 세금도 다소 낮기 때문이다.
▲ 한화그룹 지주사 한화 지원부문 이성수 사장이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한화그룹의 방위산업·우주·항공·에너지 산업으로의 혁신적 도전’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11일 재계와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기업들의 양도제한조건부주식 제도 채택이 확산하면서 이 제도의 명과 암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RS는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한 뒤 임직원들에게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무상으로 이 주식을 지급하는 보상제도를 말한다.
RS에는 지급약정을 하고 일정기간 뒤 조건을 충족하면 주식을 지급하는 정지조건부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과 주식을 지급한 뒤 일정기간 뒤 조건이 충족하면 확정적으로 양도되는 해제조건부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A)으로 나뉜다.
국내 기업들은 RSU 제도를 장기 성과급의 하나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2020년 RSU를 가장 먼저 도입했고 지난해부터 두산그룹, 포스코그룹, 네이버 등이 RSU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RSU를 도입한 한화는 임직원의 ‘책임경영’을 이 제도 도입의 가장 큰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주로 단기성과에 기반해 지급하던 기존 성과급 제도를 탈피해 임직원들이 장기적 목표에 따른 전략 수립과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의도다.
한화는 기존 성과급 제도를 폐지하고 RSU를 도입하면서 주식 지급기한을 최대 10년으로 설정했다.
한화는 RSU 제도가 우수인재를 영입하고 이들의 이탈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회사의 장기적 성장과 보상이 연동되기 때문이다.
주가가 올라가면 임직원들이 받는 성과가 높아지는 방식인 RSU 제도를 통해 주주가치 제고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장점도 한화는 강조하고 있다.
이성수 한화그룹 사장은 10월5일 ‘글로벌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주당 의원모임’이 주최한 ‘민주당 글로벌 기업을 돕다’ 일곱 번째 행사인 ‘한화그룹의 방위산업·우주·항공·에너지 산업으로의 혁신적 도전’에서 “한화그룹은 장기 성과와 연동될 수 있는 형태의 성과제도 마련을 검토해왔고 그 결과 RSU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RSU를 받은 경영진들은 회사 주식의 장래 가치에 따라 최종 지급받는 보상액이 달라지므로 회사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전념하게 될 것”이라며 “RSU는 경영진과 회사, 주주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성과보상 제도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기업들은 기존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RSU 제도를 2010년부터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RSU 제도는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뒤 2010년 테슬라, 2021년 애플, 2012년 메타 등으로 확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RSU 제도가 그룹 승계에 활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 규정이 미비한 탓에 재벌 총수들이 경영승계 과정에서 지주사 등의 지분율을 자연스럽게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스톡옵션 제도는 상법(제340조의2 등)에서 부여대상, 부여한도, 행사가격 등이 제한된다. 이 때문에 스톡옵션은 대주주나 특수관계인에게는 지급될 수 없다.
반면 이와 비교해 RSU 제도는 관련한 법적 규제가 전무한 상황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월30일 대표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서에서 “RSU 제도 도입이 확산하는 추세지만 이와 관련해 법적 규제가 없어 경영세습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명시적 규정이 신설돼 자본시장의 공정성 및 주주들의 권리 보호가 이뤄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의 핵심은 ‘주식매수선택권’의 범위를 ‘주식매수선택권,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RSU 제도가 절세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지적된다.
최대주주가 주식을 증여·상속하게 되면 기존 상속세(50%)에 ‘경영권 프리미엄(할증평가)’이 더해져 최대 60%까지 세금이 부과된다.
RSU도 수령 때 소득세를 내야 한다. 다만 지방세를 포함한 소득세는 최고 49.5% 수준이다. 단순 증여·상속보다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것이다.
특히 한화그룹은 경영권 승계 문제가 달려 있어 RSU 제도 도입이 ‘승계활용’과 연관지어 언급되기도 한다.
이 의원도 11월29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진행한 자본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 관련 인터뷰에서 RSU에 연계돼 말이 나오고 있는 기업으로 한화를 꼽았다.
한화그룹 승계의 마지막 퍼즐은 김 회장이 보유한 한화의 지분을 김 부회장과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부사장이 물려받는 것이다. 한화는 한화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서 지주사 역할을 한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 부회장은 9월 말 기준 지주사격인 한화 지분(보통주) 4.91%(368만3892주)를 보유하고 있다. 차남 김 사장과 막내 김 부사장은 각각 2.14%(160만3892주)를 들고 있다.
김 부회장의 아버지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화 지분 22.65%(1697만7949주)를 지닌 최대주주다.
한화그룹은 RSU 도입이 그룹의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승계를 위해서는 당장 현금을 성과급으로 받아 주식이 하락했을 때 한화 주식을 사거나 다른 투자에 활용하는 것이 자산 활용 측면에서 더 낫다는 설명이다.
오너일가가 성과급을 경영승계 용도로 활용한다면 주식수의 변화가 없는 RSU보다는 해당 금액을 직접 현금으로 받아 주식수를 늘리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성과급을 현금으로 받으면 투자 등으로 자금을 불린 후 주가가 떨어졌을 때마다 주식을 사들이면서 같은 규모의 RSU를 받았을 때보다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 한화그룹 차기 총수로 꼽히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사진)은 2023년 9월 말 기준으로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 지분 4.91%(368만3892주)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성과급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단기 현금 성과급을 받아 한화 주식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며 “10년 후에 받을 수 있는 주식을 지급하는 것은 장기적 책임경영을 위한 성과 보상 제도이지 기업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어 “승계에 활용된다는 불합리한 오해로 오너일가에게만 현금 성과급을 주게 되면 오히려 역차별이나 대주주에 관한 특혜로 보일 수 있다”며 “한화그룹은 이사회 결의, 주주총회, 공시 등을 통해 투명하게 RSU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 차기 총수로 꼽히는 김 부회장이 지금까지 한화로부터 받은 RSU는 2021년, 2022년, 2023년 상반기를 합쳐 모두 49만4675주다. 11일 종가 기준으로 모두 125억8948만 원 규모다.
지금까지 받은 RSU를 더해 단순 계산하면 김 부회장은 한화 지분 5.57%(417만8567주)를 보유하게 된다. 9월 말보다 0.66% 증가하는 것이다.
RSU 제도가 ‘책임경영’이라는 장점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결국 관련 법이 확실히 마련돼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우석 법무법인 현암 변호사는 10월5일 ‘민주당 글로벌기업을 돕다’ 행사에서 “RSU 제도가 현행 법령에 명문으로 규정돼 있지 않아 다수 기업이 경영 승계용이라는 근거 없는 비난으로 해당 제도를 적절히 활용하기에 조심스러워하는 실정”이라며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고 기업들이 제도를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이 명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RSU 관련 제도를 명확하게 정비해야 악용될 소지를 없앨 수 있다”며 “또 오히려 적절한 규제가 마련돼야 한화 등이 RSU를 악용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