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데뷔전을 앞둔 한 사장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철도공사 경영이 악화한 가운데 최근 철도 파업으로 불거진 에스알(SR) 통합, 민영화 등 문제를 놓고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한 사장은 17일 열리는 국토위 철도공사 국감에 피감기관장으로서 처음 참석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 문제를 두고 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9월14일부터 9월17일까지 윤석열 정부의 철도 정책을 ‘철도 민영화’를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수서행KTX’, 에스알과 코레일의 통합 등을 요구하며 1차 파업을 진행했다.
철도노조는 2차 파업을 예고했다가 중단했다. 9월19일 입장문을 통해 “철도 노사와 국토교통부는 협의를 통해 대화를 시작했고 10월 초부터 구체적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협의하기로 한 만큼 철도노조는 준비했던 2차 파업 일정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철도노조가 파업을 시작하면서 내건 수서행KTX 등의 요구를 무리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한 사장의 우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토위 소속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9월15일 철도노조의 파업을 겨냥해 “철도노조는 현재의 경영상황에서도 하루에 10억 원의 이자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감안하면 무리한 요구로 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는 노사가 함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철도노조는 파업을 즉각 중단하고 현장으로 복귀해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문희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9월17일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에서 파업 현황 및 대책을 설명하기에 앞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유경준 의원이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코레일의 2023년 부채 규모는 20조7634억 원으로 5년 전보다 6조6293억 원 늘었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 동안의 당기순손실 예산 규모는 1조208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코레일이 앞으로 5년 동안 감당해야 될 이자비용은 모두 1조8550억 원으로 하루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약 10억 원의 이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알 통합과 민영화 문제 또한 이번 국정감사에서 중점적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철도노조는 윤석열 정부의 철도 정책을 민영화를 위한 기반 작업이라 주장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국감에서 한 사장이 에스알 통합과 철도 민영화 문제에 코레일 사장으로서 어떤 견해를 지녔는지 명확한 태도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떠오른다.
코레일 사장으로서는 적자와 부채 해소를 위해 코레일과 에스알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 전임자인 나희승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부 정책 결정사항이지만 통합을 희망하고 있다”며 “통합을 통해 국민 편익이 증진되고 철도 운영의 효율성이 올라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 사장 또한 8월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코레일·SR 통합은 간접 인력이 줄고 중복 비용도 감소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철도 운영사 통합보다는 분리에 방점을 두고 있어 윤 대통령이 임명한 첫 한국철도공사 사장으로서 한 사장이 통합 의견을 확고하게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한 사장이 “정책 당국자나 시민들이 볼 때 코레일과 SR이 경쟁함으로 인해 늘어나는 수요가 있을 수 있다”며 유보적 태도를 나타낸 이유다.
이번 국정 감사에서 코레일의 경영 개선을 위해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분리하는 방안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철도안전체계 심층 진단 및 개선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BCG는 코레일의 철도 관제와 시설 유지·보수 업무 등을 진단하고, 근본적 안전 체계 개선 방안을 제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철도산업 개선 방안과 관련해 “현재 철도산업 개편 방안의 검토 과제의 핵심은 코레일에 위탁된 철도 유지·보수, 관제 업무를 국가기관인 국가철도공단으로 옮길 수 있는지 여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법안도 이미 발의됐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발의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은 철도시설 유지·보수 위탁 주체를 코레일로 한정하도록 하는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코레일이 철도시설 유지와 보수에 돈을 쏟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면 코레일의 경영실적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 해당 방안이 국정감사에서 논의되면 한 사장이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9월17일 9월17일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에서 한문희 한국철도공사 사장의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 현황 및 대책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철도노조 등에선 해당 사안 또한 ‘쪼개기 민영화’의 포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한 사장 또한 8월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철도는 태생적으로 상하가 같이 있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해당 사안과 관련해 한 사장이 조심스럽게나마 반대 의견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카르텔 문제도 국감장에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레일은 한때 ‘철피아’로 불리면서 철도고-철도대-철도시설공단을 잇는 ‘철의 3각’이 존재한다는 말이 나온바 있다.
올해 6월 한문희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유명 블로그를 통해 임원추천위원회 평가 결과가 통째로 외부로 유출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철도업계 안팎에서는 임추위 업무에 관여한 코레일의 철도고등학교 출신 직원이 해당 결과를 유출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해당 블로그 또한 철도고등학교 출신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사태의 배경에 철도고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철피아’ 문제가 한 번 더 불거질 수도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8월2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권 카르텔 문제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먼저 터졌을 뿐이지 LH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도로·철도·항공 등 국토부와 관련된 모든 전관 이권 카르텔을 철저히 끊어 미래로 가는 다리를 다시 잇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