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민정 의원 등 '윤석열 정권 언론장악 저지 야4당 공동대책위원회' 의원들이 7월2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KBS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효력정지를 촉구하는 의견서 제출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정기국회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취임하면서 공영방송을 바라보는 여야간 견해차이가 더욱 부각되는 상황이라 법안 통과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커 법률안 공포까지 가는 길은 험난해 보인다.
우리와 유사한 영국 BBC, 일본 NHK 등 사례를 봤을 때 이사회를 확대하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공영방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시선도 나온다. 정쟁을 떠나 충분한 논의와 숙의기간을 거친 뒤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떠오른다.
8일 정치권 안팎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여당의 방송장악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번 정기국회 회기 중 방송법 처리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13개 언론 단체들은 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이 공영방송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방송3법 개정안을 이달 안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행 공영방송 이사 선임제도는 정권을 잡은 정치 세력의 방송 장악을 위한 도구가 돼 왔다"며 "정권이 바뀌면 친정권 성향으로 이사회 구성이 바뀌고, 사장을 필두로 방송사 내부의 정파적 인사가 단행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고 제도 개편 필요성을 제기했다.
방송3법 개정안은 현재 KBS(11명)와 MBC(9명), EBS(9명) 이사회를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반영한 21명의 ‘운영위원회’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장후보시청자평가위원회’가 복수의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고 재적 운영위원 3분의 2 이상의 득표로 사장을 결정하는 ‘특별다수제’도 법안에 포함돼 있다.
KBS와 MBC, EBS는 공영방송으로 분류되는데 정부여당이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KBS 사장은 이사회가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MBC 사장을 지명하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임명한다. 방통위원은 대통령 추천 2명, 여당 추천 1명, 야당 추천 2명으로 구성돼 정부여당 몫이 과반이다. EBS 사장과 이사회 역시 방통위에서 임명한다.
민주당은 3월21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이라 명명한 방송3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요구안을 단독의결했다. 민주당은 4월27일 본회의 부의 요구안도 단독 처리해 개정안을 본회의에 올릴 수 있는 상태가 됐다.
민주당이 9월 정기국회에서 방송3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송기헌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8월2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노란봉투법과 방송법은 정기국회 중 가장 빨리 처리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방송법 직회부 절차가 무효라며 4월14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미 해당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도 암시하고 있다. 방송법 개정 실현 가능성이 낮아보이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이미 취임 후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개정안에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5일 오후 단식 농성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천막을 방문해 “사전에 거부권 행사가 분명히 예고된 사안에 대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반복해서 단독 처리를 계속 하는 것이 과연 국민이나 민주당을 위해서 옳은 건가”라며 단독처리 방침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9월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배구조 개선은 공영방송의 오랜 숙제다. 한국처럼 공영방송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 중 영국 BBC와 일본 NHK 등도 마찬가지로 진통을 겪었다.
1922년 설립된 영국 BBC는 공영방송에 정부가 관여한 시초이다.
BBC 이사회는 총 14명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의장과 4개국을 대표하는 4명의 비상임위원은 영국 국무장관의 자문을 받아 왕(HM The King)이 임명한다. 그 외 9명의 상임위원들은 이사회추천위원회(Board’s Nomination Committee)를 통해 BBC가 임명하는 구조다.
BBC는 정권에 따라 사장과 이사회 구성원이 바뀌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독립성을 더 보장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김승수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영국 BBC와 채널 4의 지배구조를 중심으로’ 논문에서 영국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꾸준히 변화·발전해왔고 정부나 의회가 섣불리 이들에게 접근해서 간섭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BBC도 중립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BBC는 KBS와 마찬가지로 정치성향과 수익구조 문제로 논란이 있어왔다. 좌편향적 보도로 보수정부와 갈등을 빚어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삿대질을 하며 싸울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2020년 공영방송임에도 브렉시트(Brexit) 정책을 줄기차게 비판했던 BBC에 촬영 및 출연거부, 수신료 미납자 기소 중단방안 채택 등으로 보복을 했다.
BBC는 또 해마다 8조 원이 넘는 비용을 쓰면서 수익의 74% 이상을 시청료에 의지해 수익 다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직원 숫자도 너무 많고 연봉도 높아 영국 시민들로부터 꾸준한 비판을 받자 영국 보수당은 결국 2027년부터 BBC 시청료 징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대처 전 총리 때부터 제기된 BBC 민영화 방안도 정치권에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전해진다.
최근 한국 공영방송의 흐름을 보면 영국을 많이 닮아있다. KBS에서도 BBC에서 발생한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2년 9월 KBS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KBS 임직원의 51.3%가 억대 연봉자로 조사됐다.
2021년에는 KBS 이사회가 방만 경영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채로 수신료를 2500원에서 38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의결하자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수신료 금액은 어느 정도 산출해야 하는지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며 “수신료를 납부하는 시민들의 문제 제기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도 함께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바라봤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경영 관련 자구 노력 없이 수신료를 인상하는 건 부정적이다”며 “결국 수신료를 받는 KBS가 인상폭을 정하는 것부터 반감이 생긴다”고 비판했다.
또 3월 성재호 KBS 보도국장이 인터뷰에서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두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해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국민의힘 공정미디어위원회는 “KBS를 망하게 하는 악재를 더 키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보도국장의 공개사과와 자진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KBS방송인연합회는 성재호 국장을 두고 “반민주·독재적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였다”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1950년 창립된 일본 NHK 방송의 사례는 정반대다. 영국 BBC가 보수정부와 충돌해 공정성 문제가 제기된 반면 NHK는 정부친화적 행보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NHK는 이사회에 해당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경영위원회가 경영과 회계를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온전히 수신료로 운영되는 만큼 방만하게 경영하지 않는지 관리·감독하지만 보도 내용이나 프로그램 편성에 간섭할 수 없게 돼 있다.
NHK 경영위원회를 구성할 때 교육·문화·과학·산업 등 각 분야와 전국 각 지방을 공정하게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위원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총 12명으로 구성되는데 관동지역 출신 4명, 관서지역 출신 3명, 그 밖의 각 지역 대표인사 각 1인 등 전국 각 지역을 안배하고 있다.
추천 대상은 방송규제기관인 총무성의 관방장관이 관련 기관과 협의해 결정하고 최종적으로 12명 모두 일본 참의원과 중의원 양원의 동의를 얻은 후에 총리가 임명하게 돼 있다. 특정 정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특정 정당 당원이 5명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뒀고 회장 선임에는 위원 4분의 3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NHK는 정치적 중립성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이중 시스템을 구축했음에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본 총리와 다수당에 영향을 받아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례로 2014년 아베 신조 정권 편향 방송 발언과 위안부 관련 망언 등으로 말썽을 빚어온 모미이 가쓰토 회장 선임 당시에도 이사회는 회장의 손을 들어줬는데 일본 정부의 입김이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민주당은 BBC(14명)나 NHK(12명)보다 많은 21명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꾸리면서 이사회 구성도 다변화하려 한다. 구성원 수를 늘려 다양성이 개선되면 중립성 향상은 물론 집단사고(Group think)를 방지하고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2022년 12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누구에게도 힘이 쏠리지 않도록 겹겹이 통제장치를 두는 형태로 한쪽 정파에 휘둘리지 않게 만드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이사회 규모를 늘리게 되면 업무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토론 시간과 과정이 늘어나면 업무 처리속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4월 서울경제 기고문에서 “이사회 인원을 확대하는 것도 다양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사회 세부 구성의 불균형도 지적했다.
그는 "법률·경제·경영 등의 인사가 배제되고 전체 이사의 4분의 3이 넘는 16명이 방송 미디어 관련 인사로 구성된 것은 방송 미디어 분야가 과잉대표 되는 문제가 있다"며 "직능단체와 시청자위원회의 경우 중립성에 의문이 있고 지역성 대표가 부족해 의도와 달리 공영방송 독립성과 책임성을 더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바라봤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