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안은 ‘권리당원 영향력 확대’와 ‘현역의원 공천 벌점 강화’에 방점을 두고 있어 당내 파열음 발생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비명(비이재명)계는 혁신안 내용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8월에 열리기로 예정된 의원총회와 당 워크샵에서 혁신안을 논의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혁신위가 활동을 종료한 만큼 혁신안이 얼마나 반영될 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달려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11일 민주당 내부에서 혁신안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재명 대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혁신안은 혁신위의 제안이기 때문에 당내 논의를 거쳐서 합당한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양이원영, 김용민 의원은 이날 ‘개혁을 요구하는 민주당 대의원 연합’ 등 당원들 모임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안을 환영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김 의원은 “대의제 기구로서 국회의원인 제가 대통령 선거에서 60표를 행사하겠다고 하면 미쳤다고 할 것”이라며 “당 대표를 뽑는데 대의원이 권리당원의 60배에 달하는 표를 행사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이원영 의원도 “(혁신위의 혁신안은) 민주당이 250만 명이 넘는 당원들과 정책정당, 미래정당으로 거듭나보라는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비명계는 혁신안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비명계 의원이 다수 포함된 의원모임인 ‘민주주의 4.0’은 이날 성명서에서 “대의원제도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당이 어려운 지역의 의견도 고려돼야 한다는 이유에서 운영해 왔는데 대의원제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혁신위가 내년 총선에 적용할 공천 룰 변경을 제안한 것을 두고 지도부 사이에서 충돌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8월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채널 '델리민주' 갈무리>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전 대표는 공천 부작용 등을 방지하기 위해 총선 1년 전에 공천 룰을 전당원 투표로 확정하도록 특별당규에 규정했다”며 “혁신위는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발표를 한 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서복경 최고위원은 고 최고위원의 발언을 겨냥한 듯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혁신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낡은 존재로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 함께 자각하면 좋겠다”며 혁신안을 옹호했다.
혁신위는 혁신안이 특정 계파의 유·불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남희 혁신위 대변인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혁신안이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당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친명(친이재명) 계에 유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200만 명이 넘는 당원 중에서 최근에 들어온 극성 지지층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며 "당원들의 민주적 결정 과정을 거쳐 당대표가 되는 것인데 그렇게 보는 건 민주당 당원들을 폄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반박했다.
혁신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서는 이번 혁신안이 친명(친이재명)계에 유리한 내용이 담겼다는 분석이 많다.
권리당원과 대의원 표 등가성 일치나 현역의원 공천평가 강화는 친명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로서는 민주당 내부의 갈등이 발생한 만큼 공천룰을 정하는데 혁신안을 어느 정도까지 반영할지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혁신안이 온전히 반영된다면 이 대표를 지지하는 다수의 권리당원 영향력이 강화돼 당 장악력이 높아진다. 내년 총선 공천을 통해 현역의원들을 대거 교체할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혁신안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당내 분열이 초래될 가능성이 큰 만큼 당의 ‘화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당내 갈등이 증폭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김용민(사진 오른쪽),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월11일 국회 소통관에서 혁신안을 환영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민주당 의원모임인 ‘더 좋은 미래’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지도부와 의원들을 향해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 반영 여부와 그 비중에 관한 사안은 총선 이후에, 총선 공천룰은 하반기 총선기획단 발족 등 총선 관련 당의 기구가 구성되는 시점에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가 비명계의 반발을 고려해 혁신안의 내용을 완화해 의원들에게 제안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이날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최고위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표의 등가성 폭을 줄여나가는 건 괜찮겠다는 정도까지는 얘기했으나 대의원제는 없앨 수가 없다”며 “(공천룰 변경도) 감점이 아니라 가점을 중심으로 둬서 교체 폭을 높이거나 변화를 시키자는 의견도 일리가 있는 만큼 같이 이야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혁신위가 발표한 혁신안의 핵심은 ‘권리당원 권한 강화’와 ‘현역 국회의원 평가 강화’다.
혁신위는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서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국민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를 반영하는 현재 규정을 ‘권리당원 70%, 일반국민 30%’로 바꿀 것을 권고했다. 현재 대의원 1표가 권리당원 약 60표의 가치로 권리당원(120만여 명)의 1.3%에 불과한 대의원(1만6천여 명)의 의사가 ‘과다대표’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 시 현역의원 평가를 강화하기 위해 현재 당내 평가에서 하위 20%에 속하는 의원에겐 후보자 경선 득표의 20%를 일괄적으로 감산하도록 돼있는 부분을 하위 30%까지 넓히고 감산 범위도 40%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안대로 공천 룰이 변경되면 현재 민주당 의원 168명 가운데 약 50여 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