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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아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반유화 yoowha.bhan@gmail.com 2023-08-04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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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아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
▲ 아이가 적절한 좌절을 겪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분명 불안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을 돕기 위해 꼭 필요한 용기이다. < Unsplash >
[비즈니스포스트]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꿈과 사랑이 있습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너는 참 멋진 아이란다.’ 

제주와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교문에 각각 걸려 있던 현수막 문구였다. 무심히 지나치다 우연히 발견한 글귀에 마음이 뭉클했던 건, 20-30년쯤 전의 학교에는 절대로 걸려 있지 않을 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학교는 아이들을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일꾼으로 자라도록 독려했다고 기억한다. ‘나라의 기둥’ 같은 표현은 너무 어린 나머지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전부터 들었던 말이었으며, ‘애국조회’ 시간마다 땡볕에 서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학교는 늘 현재보다 미래에, 즉 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초점을 두었다. ‘어른을 공경하며 착하고 씩씩하게 자라 나라와 민족에 기여하는 큰 사람이 되자!’  

세월이 지나 이제는 어린이를 미래의 부속품이 아닌 현재의 존재 그 자체로 여기고자 하는, 당연하지만 가슴 벅찬 메시지가 학교 현수막에 담기는 시절이 되었다.   

과거의 학교와 현재의 학교가 이런 모습이라면, 과거의 양육자와 현재의 양육자는 어떤 모습일까?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해보겠다. 과거의 양육자가 자신이 겪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했다면 현재의 양육자, 그리고 현재의 잠재적 양육자는 자신이 겪은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으려 한다.  

과거의 학교는 말대꾸를 한다고 뺨을 때리고, 드러내놓고 촌지를 요구하고, 학교를 빛낼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관심과 인정을 주지 않는 곳이었다. 과거의 가정은 자녀에게 풍요를 가져다주기 위해 양육자는 그리 행복하지 않은 얼굴로 애쓰는 한편 자녀에게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는 태도와 성취를 요구하는 곳이었다. 그 사이에 공감이나 이해가 끼어들 틈은 없었고 감정의 상처는 사치일 뿐이었다.  

문제아 딱지가 붙은 아이가 변화하는 육아 멘토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동 대상 프로그램이 가진 윤리적 이슈와 별개로) 제일 많이 위로 받는다 말하는 이들이 20-40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금쪽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은 소수일 수 있으나 그 행동 너머의 마음은 보편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감정이입도 가능하다. 이상하다는, 버릇이 없다는, 부모를 힘들게 한다는, 유별나다는 말을 듣는 아이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던 건 애정에 대한 갈망, 내 감정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양육자와는 다른 자신만의 특성을 존중받고 싶은 욕구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망들을 갖는 일이 나쁘거나 이상한 게 아니라는 위로를 수십 년 세월이 지나 자신의 양육자가 아닌 전문가로부터나마 듣게 된 것이다. 

그 수십 년의 세월을 통과하는 동안 마음속에는 자기 자신이 어쩌면 정말 양육자의 말대로 부적절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존재해 왔다. ‘나는 어쩌면 그리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은 비단 양육자와의 관계 뿐 아니라 타인 그리고 세상과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나름의 고생을 한 양육자를 원망하는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덤이다. 이 죄책감은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르다가 길을 잃고 자신이 총체적인 면에서 뭔가 나쁜 사람이라는 자기혐오의 감정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금쪽이에게서도 많이 관찰되는 감정이다.) 그래서 이들은 금쪽이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면서, 오랫동안 느껴오던 자신에 대한 부적절감과 자기혐오에 대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 다음, 즉 이제 양육자로서 누군가를 돌보는 입장이 되었을 때부터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여러 갈래의 길이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겪은 상처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바람만큼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강하게 자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양육자는 아이가 자라는 모든 환경을 당연하게도 절대로 다 통제할 수 없다. 그리고 세상은 야만에서 벗어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아이에게 적대적이기도 하다. 저출생을 염려하면서도 노키즈존은 넘치고,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바로 개념없고 이기적인 부모라는 비난이 따라온다. 

이렇게 아이가 받는 호의를 마치 시기라도 하는 것 같은 적대적 환경은 아이에게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만나 양육자의 불안이 된다. 그리고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는 때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병원과 학교 등 양육자의 돌봄을 돕는 곳(보조 돌봄 공간)에 더 강도 높은 요구를 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정글 같은 세상에는 기대할 수 없는 요구가 보조 돌봄 공간에 계속해서 강하게 집중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조 돌봄 공간에서는 아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돌봄의 질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중에는 점차 개선되어야 하는 한계도 있지만 적절한 좌절(optimal frustration)의 일부로서 아이가 받아들여야 하는 자극도 있다는 점에서 보조 돌봄 공간을 완벽히 통제하려는 시도는 아이의 원만한 성장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를 획일적인 억압이 가능한 미래의 도구가 아닌 현재의 개별자로 존중하는 방향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어떠한 상처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상처보다 중요한 것은 상처가 있을 때 그것을 스스로 다룰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적절한 좌절을 겪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분명 불안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을 돕기 위해 꼭 필요한 용기이며, 자신의 고통을 진정한 의미에서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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