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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스튜어드십이 온다①] 삼성도 LG도 SK도 달라진다, '큰손들' 기후행동

이경숙 이상호 장상유 기자 ks.lee@businesspost.co.kr 2023-05-25 17: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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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68조 달러, 우리 돈 9경 원의 자산 보유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후행동 100+’란 이름으로. 캘퍼스, GIC 등 대형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국적도, 규모도 다른 투자자들이 연합해 ‘기후행동’에 나선 이유는 하나다. 기후재앙이 더 커지면 혹은 탄소중립 압박으로 산업 지형이 달라지면 투자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수탁자 활동 즉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이 국내외 대형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강해지고 있다. 올 9월부터는 국민연금도 ‘기후변화 관련 위험 관리’ 차원에서 수탁자 책임 활동 즉 스튜어드십 활동을 시작한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기후 스튜어드십을 선도하는 국내외 리더들을 인터뷰하고 국내 기업 대응 전략을 전한다. 아울러 국회ESG포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공동으로 6월13일 2023기후경쟁력포럼을 개최한다. 관련 기사와 포럼 안내는 홈페이지(ccforum.net)에서 볼 수 있다.

① 삼성전자도 LG도 SK도 달라진다, '큰손'들의 기후행동
② UNEP FI 에릭 어셔 “기관투자자의 리더십이 중요”
③ AIGCC 배희은 “투자자 기후변화서 자유롭지 않아”
[기후 스튜어드십이 온다①] 삼성도 LG도 SK도 달라진다, '큰손들' 기후행동
▲ 2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에서 열린 'UNEP FI 아태지역 원탁회의'의 '탈탄소화 포트폴리오 진행시 적극적 고객 관여 필요성' 세션에서 연사들은 투자기관들의 적극적 기업 관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왼쪽부터)세이지 카와조 미쓰이스미토모신탁자산운용 글로벌 이니셔티브 연구원, 토모 이시카와 미스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최고규제담당책임자, 배희은 AIGCC 이사, 진행을 맡은 무스타파 샤우드리 UNEP FI 디지털 책임자.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여의도 도심의 한 고급 호텔. 검고 부드러운 천을 덮은 테이블마다 드문드문 다양한 피부색의 청중 30~40명이 앉아 단상 위 연사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24일 열린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아태지역 원탁회의 중 한 세션이었다. 

단상 위 연사들은 금융시장에서나, 국제사회에서나 ‘주류’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미쓰이스미토모신탁자산운용,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그리고 70개 투자기관들의 연합체인 ‘기후변화에 관한 아시아투자자그룹(AIGCC)’와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등. 

이들이 속한 금융기관들의 보유자산을 모두 합치면 35조 달러, 우리 돈으로 4경6400조 원이 넘는다. 그야말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들'이다. 

이들 뒤로 띄워진 대형 스크린에는 “탈탄소화 포트폴리오 진행시 적극적 고객 관여 필요성”이라 적혀 있었다. 글로벌 금융사와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토론주제로 포트폴리오의 탈탄소화를 위한 실행방법을 잡은 것이다. 

AIGCC의 배희은 이사는 고객 즉 투자대상기업에 관한 관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700개 투자기관이 참여한 '기후행동 100+'의 간사조직이기도 한 AIGCC는 국내 기업 가운데 한국전력공사, 포스코홀딩스, SK이노베이션을 대상으로 주주 관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기관투자자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 포트폴리오 재구성이 아니라 더 폭넓은 조치가 필요하다. AIGCC가 기업 관여를 하는 목적은 아시아 지역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들의 구체적 행동이 나오도록 고취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토모 이시카와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최고규제담당책임자는 기업의 기후대응을 위한 ‘지원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MUFG그룹은 360년 역사의 일본 최대 금융그룹으로 자산 규모가 모두 2조7700억 달러(약 3661조 원)에 이른다.

“우리는 투자 기업의 실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기후 문제를 포함한 주요 주제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다만 금융권은 기업들이 목표를 야심차게 설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경영에 구체적 관여를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할은 자금을 조달해 기업이 전략적 계획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는 말은 다르지만 이들이 하는 행동은 하나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기후 스튜어드십(Climate Stewardship)’,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수탁자 활동이다. 이는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기업관여, 정책지지, 정보공개 요구 같은 활동을 통칭한다. 

에릭 어셔 UNEP FI 사무총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코드는 기업들의 자금 운용 방향에 영향을 주는데, 특히 적극적 관여(active engagement) 등을 통해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기업의 움직임을 이끌어 내는 데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향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토요타는 북유럽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적극적 관여’를 받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10일 덴마크 아카데미커 연금, 노르웨이의 스토어브랜드 자산운용, 네덜란드 APG 자산운용은 토요타에 기후변화 관련 로비 활동을 개선하라고 촉구하는 주주제안서를 보냈다. 전기차 시장에 대한 토요타의 느린 대응과 정책 로비 부족 탓에 이익을 얻을 기회를 놓치고 브랜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기관투자자들은 국내 기업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22년 2월 APG자산운용은 투자 대상 한국 기업 10곳에 ‘기후위기 대응 및 탄소배출 감축 전략의 혁신적 실행에 대한 제언’ 서한을 발송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와 SK, SK하이닉스, SK텔레콤,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현대제철, 롯데케미칼, 포스코케미칼이 포함됐다.

이후 해당 기업들은 기후위기 대응에 좀 더 적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2050년까지 모든 사업장의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국제 캠페인인 ‘RE100(Renewable Energy 100%)’ 참여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대규모 전력을 사용해야 하지만 특히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부족한 탓에 삼성전자가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도 많다.

그럼에도 자발적 캠페인인 RE100에 가입한 점을 보면 삼성전자의 변화가 엿보이는 셈이다.

LG그룹은 올해 2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그룹 차원의 탄소중립 추진계획을 담은 ‘LG 넷제로 특별보고서’를 발간했다. 

구체적으로는 LG전자와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에너지솔루션,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그룹 온실가스 배출량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7개 계열사의 실질적 추진계획을 세웠다.

APG에 서한을 받은 LG화학은 앞서 2020년 7월 ‘탄소중립성장’ 전략을 세운 뒤 2022년 2월 ‘2050년 넷제로’ 선언을 통해 탄소중립 계획을 점차 강화, 구체화하고 있다.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0월 2050년 넷제로를 넘어 2062년까지 회사 설립 뒤 배출해 온 모든 탄소를 상쇄하겠다는 ‘올타임 넷제로’를 선언했다. 앞서 2021년 7월에는  ‘카본투그린(탄소에서 친환경으로)’ 비전을 제시한 뒤 구체적 탄소감축 노력을 해왔다.

이를 놓고 지속가능경영 관련 글로벌 석학으로 평가되는 카난 라마스와미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썬더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7월 “전략이 명확하고 실행 계획도 타당해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기후 스튜어드십이 온다①] 삼성도 LG도 SK도 달라진다, '큰손들' 기후행동
▲ 국민연금에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강력히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집회 모습. <연합뉴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금융시장의 큰손, 연기금들이 기후변화 리스크를 감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연기금인 일본 GPIF는 2019년 처음으로 보유 포트폴리오에 대한 기후 관련 리스크를 분석한 보고서를 낸 후 지속적으로 보유 자산의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 

2022년 보고서에서 미야조노 마사타카 GPIF 회장은 “기후변화 위험은 모든 자산계급과 증권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며 “이는 (자산) 다양화를 통해 제거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상장기업뿐 아니라 광범위한 해외 주요 기업에 투자하는 GPIF로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세계 각국과 기업이 직면한 이슈와 리스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을 개정한 국민연금도 9월부터 기후 변화 관련 조항을 포함한 스튜어드십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은 “GPIF는 국민연금과 달리 위탁운용을 위한 지침”이라며 “국민연금은 책임투자원칙을 고수하면서 구체적인 실행안과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 위원장은 “(3월의 지침 개정을 통해) 기후변화, 산업안전 관련 위험 관리 등 중점적으로 볼 부분을 확장했다”며 “국민연금은 (겉으로 보이는) 파도보다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해류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기후 스튜어드십은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후행동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국장은 "지구 온난화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기후행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국민연금도 조속히 기후 스튜어드십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간 연대와 협력도 필요하다. 이 국장은 "한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만으로는 큰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는 '담합' 우려 때문에 투자자 연대 협력 조항이 수탁자책임 원칙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다음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때에는 반드시 넣어 더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기후행동을 유도해 탄소중립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숙 이상호 장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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