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이후 3년 만에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3년 동안 빗장을 걸어 잠근 중국, 그동안 무엇이 얼마나 변했을까’하는 질문을 하며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필자 촬영 사진> |
중국은 흥미로운 나라이다. 매번 갈 때마다 나를 놀라게 만든다.
얼마 전 업무차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에 8일간 출장을 다녀왔다. 코로나19 사태가 나기 직전인 2019년 이후 중국 방문은 처음이니 3년이 넘었다.
‘3년 동안 빗장을 걸어 잠근 중국, 그동안 무엇이 얼마나 변했을까’하는 질문을 머리 속에 숨겨놓고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3년 전 중국을 갔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로 대표되는 중국의 모바일 간편결제 시스템이었다.
도착 직후 숙소 부근인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 근처 지하쇼핑몰에 식사를 하러 갔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식사를 마친 뒤 밥값을 내러 프런트에 가서 신용카드를 건넸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신용카드는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중국 위안화를 내밀었으나 이것 역시 퇴짜맞았다. 잔돈이 없기 때문에 현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QR코드를 이용해 오로지 알리페이나 위쳇페이만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다행히 얼마 후 베이징에 있던 아들이 와서 대신 알리페이로 결제해 주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리고 이후 아들이 개설해 준 알리페이를 이용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낭패를 봤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신기함’이었다. 중국은 ‘신용카드 사회’를 뛰어넘어 바로 ‘모바일 결제 사회’로 전환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중국의 식당 등 소매점에서 현금이나 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결제수단으로 알리페이나 위쳇페이 등 모바일 지불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이 완전히 대중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벌써? ‘중국에서는 거지들도 QR코드를 이용해 구걸한다’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개 소리로 들리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페이 등이 보급 초기 단계였고, 서울시에선 제로페이의 흥행실패로 고전하던 때였다.
물론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카드결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이 신용카드 사회를 건너뛰다시피 한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핀테크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한 두발 앞서 나간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 이번 중국 출장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중국의 ‘전기차’였다. 사진은 화웨이의 전기차. <필자 촬영 사진> |
이번 중국 출장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중국의 ‘전기차’였다. 신기함과 놀라움을 넘어 묘한 위기감을 느끼게 만든 한 장면을 소개한다.
이야기에 앞서 나는 전기차 전문가가 아니다. 따라서 전문가의 눈에는 나의 이야기는 다소 인상비평 쯤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사실 그 말이 맞다. 따라서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이런저런 것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의 주관적인 시각이라는 점을 미리 말해 둔다.
상하이에서 묵었던 호텔은 바로 지하에 대형 쇼핑몰과 연결돼 있었다. 우리로 치면 코엑스몰이라고 할까. 이 쇼핑몰의 지하에는 일반 매장, 음식점들과 함께 10여개의 전기차 회사의 매장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테슬라 매장도 보이고 아우디 매장도 보였다.
그러나 주인공은 중국의 전기차 회사들이었다. BYD, 샤오펑, 둥펑의 보야(VOYAH), 광저우자동차의 Aion, 베이징자동차(BAIC)의 전기차 브랜드 아크폭스(ARCFOX), 지리자동차의 링크앤코(Link & Co), 그레이트 월의 ORA 등등 유수의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경쟁하고 있었다.
중국이 전기차 강국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간단히 숫자를 살펴보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1년 순 전기차(EV) 판매량 기준 상위 20위 기업 중 12개가 중국 기업이라고 한다.
1위는 미국의 테슬라였지만 2위를 기록한 상하이 자동차그룹(SAIC)를 비롯, BYD (4위) 창청자동차(8위), 광치그룹(9위), 지리그룹(10위) 등등 중국 회사들이 포진했다. 한국의 현대차그룹은 22만3000대로 6위. 지난해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확실히 중국은 전세계의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이자, 세계 최대의 전기차 수출국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전기차 판매대수는 689만대로 전년 대비 93.4% 늘었다고 한다. 2019년 121만대였던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3년만에 5배가 넘는 규모로 폭풍 성장했다.
올해 전세계 전기차 판매량 예상치가 1360만대인데 이중 중국이 약 800만대(58.8%)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내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최대 900만대에서 1000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점유율은 25.6%. 중국인들은 신차구입시 4명 중 1명이 전기차를 사고 있고, 이러한 수치는 중국정부의 정책드라이브와 맞물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이 전기차 수출에 힘입어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수출국으로 등극했다는 소식도 접했다. 1980년대 자동차 시장 개방 이후 40년만에 자동차 자립과 자동차 강국이 되길 고대했던 ‘중국몽’이 실현될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내가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이런 숫자가 아니다. 중국의 ‘전기차굴기’는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눈으로 보니, 중국의 전기차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추론이 가능했다. 그래서 중국의 전기차 산업이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우선, 중국 전기차 산업의 힘은 ‘경쟁’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상하이 몰의 전기차 매장들은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양한 가격대와 성능을 보유한 무수한 브랜드들의 각축을 통해 중국의 전기차들은 시장경쟁력을 키우고 있었다. 마치 전기차 춘추전국시대를 보는 듯 하다.
세계 1위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를 비롯해, 벤츠와 폭스바겐, 도요다 등 전통적 자동차 시장의 강자들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고, 이러한 브랜드들의 각축장에서 중국의 전기차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판매 상위 10위 중 테슬라(3위)를 제외한 9개의 브랜드가 토종이었다고 한다.
식당이나 리테일 매장들과 섞여서 전기차 매장들이 한 곳에 몰려 있는 것도 나에게는 생소한 풍경이다. 2~3년 전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여러 국내외 자동차 브랜드 매장을 찾아 다니며 애먹었던 기억이 오버랩됐다. 거꾸로 생각하면, 테슬라등 글로벌 메이커와 매장이 붙어있어도 전혀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중국 브랜드들의 자신감이 엿보였다.
필자가 들른 매장들의 가장 좋은 위치 역시 테슬라나 벤츠, 도요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아니라 중국 브랜드들 차지였다. 현지 중국 동료의 말에 따르면 내연기관차 시장에서는 여전히 폭스바겐이나 BMW, 도요다 같은 전통의 유명 글로벌브랜드들이 여전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전기차로 가면 가성비가 월등한 로컬브랜드를 훨씬 선호한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테슬라의 모델3나 모델Y 보다 훨씬 비싼 전기차에서부터 홍광미니와 같이 국민차로 불리는 200만 원 이하의 전기차 등 가격과 성능면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무수한 토종 전기차들이 포진해 있다.
두 번째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화웨이(Huawei)의 자동차 매장’이었다. 화웨이는 미중무역전쟁에서 미국의 타깃이 된 중국을 대표하는 기술기업이다.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 업체로 5G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한때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의 휴대폰 제조사였던 기업이다. 그런 화웨이가 전기차를 만들었고, 백화점의 매장에서 휴대폰, 전자기기들과 함께 자체 전기차인 M5, M7모델을 팔고 있었다.
화웨이는 2021년 말 중국 전기차 업체인 소콘 자동차와 합작해 아이토(AITO)라는 브랜드로 전기차를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화웨이가 차량 설계부터 자율주행과 관련된 차량 인터넷 관련 기술 서비스와 마케팅 및 판매를 담당하고, 소콘이 생산을 맡았다고 한다. 특히 화웨이의 자체운영체제인 하모니OS를 탑재했다.
핸드폰 매장에서 자동차를 팔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었지만, 바로 이 장면이 중국 전기차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를 상징하는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모빌리티 전문가들은 전기차의 미래는 ‘모빌리티산업’의 발전과 맞물려 완전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되고, 궁극적으로는 공유자동차 시대의 도래로 연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심각한 주차난과 에너지 자원의 낭비를 막기 위해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으로 바뀌고, 자율주행 공유전기차(택시)와 같은 개념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전기차와 자율주행시대로 가기 위한 가장 큰 핵심은 자동차와 기술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필자는 화웨이 자동차를 보면서 미국의 ‘애플’을 떠올렸다. 2021년쯤 애플이 자체개발한 전기차배터리를 탑재한 자율주행 차량을 생산할 것이라는 뉴스로 전세계가 들썩인 적이 있다. 당시 외신들은 ‘애플카’는 애플이 자동차 디자인과 설계 등을 맡고, 한국 일본 미국 등지에서 핵심부품을 조달해 중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완성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자동차가 애플의 유력한 파트너로 거론되며 주가가 치솟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 ‘애플카’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하지만 중국의 테크기업들은 무서운 속도로 전기차 시장으로 진격하고 있다. 화웨이 전기차는 그 단적인 사례이다.
자동차와 IT 기술과의 결합은 현재 소프트파워가 부족한 자동차 회사들이 가장 큰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전기차는 단순히 엔진을 배터리로 바꾸는 동력의 전환으로 보면 안된다. 차량제어나 운행 등 모든 것을 통합적 전자적 제어로 바꾸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자체운영 OS를 만들 수 있는 소프트파워가 중요하다.
자율주행 기능까지 탑재되면 더더욱 그렇다. 엔진의 성능이 브랜드 경쟁력으로 통했던 기존의 내연기관차 회사들이 기술회사들과의 파트너쉽에 목을 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오히려 빅테크 기업들이 이러한 결합을 주도하고 있다.
▲ 내가 본 상하이 몰의 전기차 매장들은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양한 가격대와 성능을 보유한 무수한 브랜드들의 각축을 통해 중국의 전기차들은 시장경쟁력을 키우고 있었다. <필자 촬영 사진> |
기술기업인 샤오미 역시 2024년 전기차 양산을 목표로 출사표를 던졌고, 바이두는 지리자동차와 손잡고 자율주행기능을 탑재한 한정판 전기차를 출시했다. 알리바바 역시 이미 전기차 시장에 진출했고, 텐센트는 니오자동차와 자율주행기술 개발을 협력하고 있다고 한다.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 탓일 수도 있지만, 중국내에서 기술기업들과 자동차 제조사들의 합종연횡이 너무 쉽게 엑셀레이터를 밟고 있는 느낌이다. 중국은 인공지능 응용분야에서 세계 1위의 국가. 중국의 기술기업들이 전기차를 직접 생산하거나 제조사들과 협력해 만들어낼 시너지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테크와 자동차 제조사간의 물리적 화학적 결합이 부럽다.
보도를 보니, 현대차그룹은 최근 의욕적인 전기차사업 청사진을 밝혔다. 2030년까지 전기차분야에 24조 원을 투자하고, 전세계 공장에서 364만대를 생산해 세계 3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의 성공이 필수적일 것이다. 각종 통계상 현대차 그룹의 전기차 판매 순위는 세계 5~7위권을 넘나든다. 그러나 현대차의 성공은 미국과 유럽시장에서의 선전에 힘입은 것이다.
아쉽게도 현대차그룹은 중국시장에서는 그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6년 승용차 114만 대를 팔며 정점을 찍은 뒤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중국의 승용차시장 점유율이 1.7%까지 떨어졌다. 전기차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해외 업체들에게 그림의 떡이었던 중국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폐지됐기 때문에 지금은 중국 업체들과 정면승부 할 수 있다.
필자는 현대기아차가 중국시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의 바다에서 살아 남았으면 한다. 그리고 응원한다. 그래야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하자면,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본격 상륙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가 한국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이태희 CUE코리아 대표
대학졸업 후 30년간 언론(한국일보)과 공무원(방송통신위원회), 국제기구(TEIN), 글로벌 기업(마이크로소프트) 등 공공과 민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의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해왔다. 2020년부터 글로벌 마케팅·테크놀로지 기업인 CUE Group의 한국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변화의 지향-사상의 자유시장과 인터넷의 미래'(나남, 2010)이 있으며, 몇 권의 공저와 학술논문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