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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발렌베리그룹에서 길을 찾을까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4-07-16 22: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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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은 발렌베리그룹에서 길을 찾을까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회장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의 미래 모델로 삼았던 기업이다.

발렌베리그룹을 150여년 동안 이끈 오너 일가 발렌베리 가문은 5대째 경영권을 쥐고 있다. 이 회장이 평소 꿈꿨던 ‘1백년 영속기업’과 맞아 떨어진다. 이 회장은 발렌베리그룹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삼성경제연구소에 지시하기도 했다.

발렌베리 가문은 1800년대 중반 발렌베리그룹을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 오너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운영하는 발렌베리그룹은 스웨덴 경제활동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룹 산하 공익재단인 발렌베리재단은 막대한 공익기부로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회장을 따라 일찌감치 발렌베리그룹과 안면을 텄다. 이 부회장은 2003년 7월 이 회장과 함께 스웨덴을 방문해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회장 등 발렌베리가문의 경영자들을 만났다.

이 부회장은 이후에도 발렌베리가문과 인연을 이어갔다. 2012년 3월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이 방한하자 리움미술관으로 초대해 만찬을 함께하기도 했다.

발렌베리 SEB 회장은 당시 이 부회장에게 “삼성가의 경영권 승계는 경험이 해결할 문제”라고 조언했다. 그는 “삼성가만의 경험을 쌓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두르지 말고 사회적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제 발렌베리 회장이 조언한 ‘사회적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삼성에 이재용체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 연결고리를 찾아냈을까?

◆ 이재용체제가 배워야 할 발렌베리가문의 승계방식

매년 노벨상 시상식이 끝난 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시청 메인 홀에서 기념무도회가 열린다. 이곳에 발렌베리그룹 2대 경영자인 크누트 발렌베리의 흉상이 있다.

스톡홀름 시민들은 그가 시청 신축자금을 기부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조각상을 만들었다. 이밖에도 스톡홀름 곳곳에 발렌베리그룹의 흔적이 남아있다.

발렌베리그룹은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1856년 창업했다. 이후 158년 동안 그의 후손들이 기업을 운영하면서 규모를 확장했다. 현재 발렌베리그룹은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 40%와 국내총생산(GDP) 30%를 차지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연 매출은 2030억 달러에 이른다.

발렌베리그룹은 세계 최대 통신장비기업 에릭슨과 항공방위산업체로 유명한 사브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기업 18개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발렌베리그룹 본사와 계열사에서 일하는 직원만 40만 명으로 스웨덴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한다.

발렌베리그룹은 대다수의 지분을 그룹 산하 공익재단에 맡기고 경영은 발렌베리가문 사람들이 책임지는 구조를 선택했다. 현재 발렌베리그룹을 함께 이끌고 있는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과 야콥 발렌베리 인베스트AB 회장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각 계열사 지분은 1% 미만이다.

발렌베리그룹 계열사의 지분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트AB가 보유하고 있다. 인베스트AB의 지분은 발렌베리가문이 설립한 공익재단 3개가 나눠 소유하고 있다.

현재 발렌베리재단은 인베스트AB 지분 23.3%와 의결권 50%를 보유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을 통해 재단이 인베스트AB를 지배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발렌베리가문의 오너들은 공익재단 이사회에 참여해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행사한다.

발렌베리가문은 철저하게 실력을 따져 최고경영자를 뽑는다. 이를 통해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줄였다.

  삼성은 발렌베리그룹에서 길을 찾을까  
▲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회장이 2012년 3월2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발렌베리가문은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는 철칙에 따라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가문에서 선발된 소수만이 ‘후계 프로그램’에 따라 철저하게 교육받은 뒤 그룹경영에 참여한다.

발렌베리그룹 경영에 참여하려는 가문의 사람들은 무조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복무해야 한다. 이어 해외유학을 거쳐 경력을 쌓은 뒤에야 경영자가 될 수 있다.

한 명의 오너에 의한 독단적 경영을 막기 위해 반드시 두 명이 계열사 경영권을 나누는 것도 철칙이다. 현재 실질적 CEO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도 해군 중위로 군 복무를 마친 뒤 금융회사 경력을 쌓았다. 그는 야콥 발렌베리 인베스트AB 회장과 사업분야를 나눠 경영하고 있다.

발렌베리그룹은 수익의 상당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업 소유의 정점에 선 발렌베리재단은 지난 100년 동안 인베스트AB를 통해 배당받은 수익을 대학교나 연구개발기관에 기부했다. 발렌베리재단은 북유럽 최초의 경제대학교인 스톡홀름경제대학교를 세웠다.

발렌베리 재단은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3개 재단이 2009년부터 5년 동안 교육기관에 지원한 돈은 8500억 원이다.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지난 해 “발렌베리 재단은 연간 2조7천억 원을 기부에 쓴다”고 말했다.

◆ 100년 오너 경영권 승계를 만든 기업들


한 가문이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모두 관여하는 ‘가족경영’은 외국에서 낯설지 않다. 발렌베리그룹이 채택한 차등의결권처럼 소수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제도가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정부는 “차등의결권은 미국에서도 적대적 인수합병을 방어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말했다.

미국 생활화학기업 SC존슨도 대표적 가족경영 기업이다. SC존슨은 ‘에프킬라’와 ‘페브리즈’ 등을 앞세워 생활용품시장을 점령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지난 5월 선정한 미국 부호 가문 중 자산규모 255억 달러로 9위를 차지했다.

SC존슨은 1886년 창업주 새뮤얼 존슨이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만든 왁스회사에서 출발했다. 창립 128주년을 맞이한 올해 SC존슨은 세계 60국에 1만2천 명의 직원을 둔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법인을 내고 지퍼백 부문에서만 연간 20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SC존슨은 ‘직원을 가족처럼 여긴다’는 새뮤얼 창업주의 방침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이 회사는 수입의 10%를 지역사회에 기부한다. 또 수익의 일부를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현재 5대째를 맞이한 존슨 가문도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경영방침으로 선포하고 빈민구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 의약기업 머크는 가장 오래된 가족경영기업이다. 1668년 설립한 이 회사는 현재 67국에 4만 명이 넘는 직원을 뒀다. 당뇨병 치료제인 ‘자누비아’와 ‘자누메트’ 외 다양한 의약품을 판매한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4조9184억 원과 3조3973억 원에 이른다.

현재 머크의 수장은 창업주의 12대 후손인 하버컴 머크 회장이다. 그가 지주회사를 맡고 계열사는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체제다. 하버컴 회장을 비롯한 머크가문 사람들은 경영진에게 수시로 운영전략을 보고받고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머크는 2009년 스위스 국제경영원의 가족기업상을 타면서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한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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