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월19일 인천국제공항에 노란 비표를 착용한 중국인 입국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 AP > |
중국 관련된 사업을 하다 보니 필자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주요 이슈들이 생길 때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국민정서’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한국 언론보도야 늘 접하는 것이지만, 중국 언론, 나아가 네티즌들이 양국 관련 이슈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지는 의도적으로 찾아보고 물어본다. 일종의 직업적 습관이다.
얼마전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중국 다롄에 도착한 대한항공기 탑승자 중 대부분이 한국인인 외국 국적자들에게 흰색 비표를 걸게 하는 동영상이 게재됐고, 이는 국내 언론들을 통해서도 보도됐다.
한국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중국발 입국자들에게 노란색 카드가 부착된 비표를 목에 걸게 한 것에 대한 상응하는 조치였다. 물론 아직은 다렌공항에 국한된 일이라고 한다.
지난번 칼럼에서 필자는 중국의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다소 비판적으로 다룬 적이 있다.
이후 우려한대로 중국 정부는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등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한국과 동일한 보복조치를 쏟아냈고, ‘흰색 비표’도 그 연장선에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 지인들에게 들은 것을 전하면, 중국인들은 TV화면에서 보도되는 한국의 ‘노란 비표’에 특히 격분했다고 한다. 중국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으로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주한 중국대사가 직접 나서 “중국 국민이 (한국)입국 과정에서 겪은 불공정하고 차별적인 대우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이 기사들을 접하며 20여 년 전 해외연수차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입국하다 겪은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시카고 공항에 내려 미국입국 수속을 하고 국내선 비행기로 환승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공항직원이 나와 가족들을 별도의 방으로 격리했다. 방에는 아랍계와 동유럽계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몇 명이 있었다. 당시 미국은 911테러를 겪은 지 2년이 채 안 된 시기라 사회전반에 긴장감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이건 뭐지? 나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인이고 미국대학으로부터 초청장까지 받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불편한 감정이 떠올랐고, 유치원과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이 아빠를 쳐다보는 불안한 눈망울이 오버랩되면서 화가 치밀었다.
항의를 해도 “기다리라”는 공항 공무원의 고압적인 대답만이 돌아왔다. 결국 30여 분간 격리되어 있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풀려나긴 했으나 그때의 씁쓸함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물론 공항에서 ‘노란비표’와 ‘하얀비표’를 목에 걸어야 하는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의 상황은 필자가 겪은 상황과는 다르겠지만 느끼는 ‘당혹감’은 비슷할 것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에서 국적에 따라 나쁜 쪽으로 ‘특별취급’ 받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중국인들의 반발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발 입국자에게 PCR검사를 공항에서 받게 하는 업무편의를 위해 비표를 착용하게 했다고 한다. 한국인 국적자들은 보건소에서 PCR검사를 받으면 되기 때문에 비표를 배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공항과 방역당국의 조치는 ‘코로나시국’의 상황논리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설픈 행정편의주의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에선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차별 등 인권을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에는 항상 ‘다른 대안이 존재하는가’, ‘최소한의 규제인가’ 등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행정 주체가 아니라 객체, 즉 대상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하다.
가령 성폭력 성희롱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비판에 중국 역시 비켜갈 수 없다.
중국의 지인들에게서 들려오는 현지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지 않다. 과거 ‘김치논란’이나 ‘한복논란’등은 중국의 애국주의 네티즌인 샤오펀훙(小紛紅)과 한국의 ‘국뽕’ 네티즌들의 ‘인터넷 배틀’이 대부분이었을 뿐 일반적인 중국인의 정서와는 차이가 있다.
주류매체인 관영언론도 미온적이었다. 중국 정부도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는 ‘반중’의 트랜드를 의식해 한국과의 거리가 멀어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번 중국 코로나 이슈는 상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네티즌이 아니라 양국 정부가 전면에 등장한다. 중국에선 아예 정부가 나서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고 언론이 이를 ‘반한정서’를 증폭시키고 일반 국민들로 확산되는 메커니즘은 마치 2016년 사드(THAAD) 사태와 외관상 유사하다. 지난번 칼럼에서 말했듯, 중국은 이번 사태를 미국이 중국을 욕보이기 위한 ‘가치전쟁’으로 보고 있고, 한국의 대응을 그 연장선상에서 본다.
거기에 이와 같은 ‘비표논란’은 중국 국민들의 감정선을 쉽게 자극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중국 정부가 만들어 놓은 한국비판론의 뼈대에 생생하게 살을 가져다 붙여준다. 이를 통해 정부의 분노가 일반 국민들의 공분으로 ‘더 빨리, 더 쉽게’ 전환되는 것이다.
중국의 관영언론인 환구시보는 최근 빈번하게 한국을 겨냥한 비판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한국발 여행객들에 대한 비자발급 중단 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기본이다.
요즘은 지난번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국과 프랑스 등이 비자발급 중단으로 중국여행객들의 ‘여행배당금’을 놓쳤다는 기사들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태국 보건부 장관과 관료들이 태국 국제공항에서 입국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화환을 건네며 환영하는 사진과 기사들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다. 한국의 국무총리가 연초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점검을 실시하는 것과 대비되는 장면들이다.
다행히도 중국 코로나 사태로 빚어진 한중간의 갈등은 최근 들어 일단 수습국면으로 접어든 듯하다. 한국 정부는 지난 11일부터 중국인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했고, 중국 정부 역시 한국인들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 재개할 것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 역시 더 이상의 상황이 악화돼 양국관계가 임계치를 넘는 것은 원치 않는 듯 보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PCR전수조사를 넘어 중국인에 대한 단기비자발급 중단 조치는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하며, 당장 중국의 보복조치를 불러왔다. 당연히 “왜 우리만?” 이라는 의문이 맴돈다.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이번 중국 코로나 방역 사태를 겪으며 한국의 경제단체들에게 의아함을 느낀다.
한국과 중국의 단기 비자 발급 중단으로 인해 무역, 관광, 화장품, 면세점 등 관련업계의 근심이 커지는데 그 많은 경제단체나 관련 협회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관광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나 한국여행업협회 등은 건의문하나 내지 않았다.
2019년 여당 대표 앞에서 “대통령도 휴가 안가니 국내 관광이 더 안되는 것 같다”고 쓴소리했던 관광협회중앙회장의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정부에선 오영훈 제주지사가 최근 주한중국대사를 만나 중국관광객 단체여행이 재개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비자발급 중단 사태 와중에 중국관광객 유치를 부탁하는 ‘부조리’한 상황, 제주지사의 속은 얼마나 탔을까. 이래저래 이상한 하게 꼬인 씁쓸한 중국 코로나사태의 한 단면이다.
한중관계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코로나가 어느정도 진정되면 양국간 정부차원의 ‘외교적 화해’가 뒤따르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양국 국민들간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코로나 3년간 걸어 뒀던 빗장을 풀었다. 이른바 리오프닝이다. 중국 관련 사업을 하는 한국의 기업과 중국인 특수를 기대하는 자영업자 등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중국인들의 한국과 한국상품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반한정서가 극에 달했던 사드사태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가 불안한 시선으로 지금껏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다.
한국 브랜드들은 중국에서 중국 및 글로벌 브랜드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결전을 치러야 하고, 중국 관광객들의 전세계에 뿌릴 차이나머니, 일명 ‘코로나 배당금’을 따내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관광객 유치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경쟁국들은 한국의 대중국 코로나방역 조치를 거론하며 중국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태국의 한 관광업체 대표는 중국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어떻게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한 보도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지 굴욕감을 느끼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보기에 최근 중국의 코로나 사태를 다룬 한국 정부의 대응은 세련되지 못했다. 앞으로 중국인들을 어루만질 ‘외교기획’이나 참신한 정책이 나오면 좋겠지만 국가의 위신이나 국내 정서 등 여러 여건상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다만, 중국 코로나사태로 인한 실속없는 ‘정책판단’이나 투박한 ‘오버액션’이 더 이상 없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그래야 우리기업들이 힘이 난다. 이태희 CUE코리아 대표
대학졸업 후 30년간 언론(한국일보)과 공무원(방송통신위원회), 국제기구(TEIN), 글로벌 기업(마이크로소프트) 등 공공과 민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회의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해왔다. 2020년부터 글로벌 마케팅·테크놀로지 기업인 CUE Group의 한국 대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변화의 지향-사상의 자유시장과 인터넷의 미래'(나남, 2010)이 있으며, 몇 권의 공저와 학술논문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