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홍길동(가명) 사장은 30억 원을 투자해 새 공장을 지어서 화학제품 소재를 대기업에 납품하기로 했다.
그 공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설립되는 형태였다. 고도의 숙련도와 전문성이 없이는 짓기 어려웠다. 화학제품 소재를 다루는 일이어서 화재, 중독사고, 가스누출 등 위험성이 존재하기에 조심스럽게 설비를 설치했다.
▲ 혁신기업이 좋은 기술을 시장에 내놓는 순간에는 기술이나 사업탈취의 리스크가 생긴다. <이미지 출처-픽사베이>
환기구와 건조시설의 위치와 크기 등도 중요했다. 제품의 제조라인에 따라서 적절히 배치되어야 위험성을 줄일 수 있었다. 어느 한 곳이라도 허점이 있으면 폭발이나 화재 등 대형 사고가 날수 있는 공장이었다.
이런 공장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기술을 가진 이는 국내에서 홍길동 사장을 포함해 몇 명 되지 않았다. 이에 납품받기로 한 대기업측 임직원들도 홍 사장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통상 그렇듯이 초기에 계획한 것보다 새 공장을 짓기 위한 투자금이 두 배는 더 들어갔다. 그래서 홍길동 사장은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처갓집 재산까지 담보로 잡혀가며 은행 대출을 일으켜 공장을 짓고 설비도입을 하여 대기업 납품 준비를 했다.
그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대기업 임직원들이 들락날락했다. 납품하려면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수시로 요구해서 이메일로 보내줬다.
그 뒤 6개월이 흘렀다. 공장이 안정되면서 여유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납품처인 대기업이 갑자기 그 아이템은 자기들이 생산을 할 테니 대신 다른 아이템을 발주하겠다고 했다.
뒤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납품처 대기업은 홍 사장의 공장과 유사한 공장을 짓고 있었다. 그동안 홍 사장의 공장을 몰래 벤치마킹하였던 것이다.
대기업 후임 대표가 왜 그런 중요한 소재를 외부에서 납품받느냐며 직접 생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니 홍 사장이 그동안 공장과 설비에 투자한 수십억 원의 자금이 매몰비용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홍길동 사장은 대기업 임원들과 실무자들에게 통사정을 했다. 하지만 새로온 대표의 방침인 데다 홍 사장과 거래했던 대기업 임원들도 교체되어 어디에 제대로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결국 홍 사장은 투입 자금을 회수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 사이에 처갓집, 본가의 재산도 다 날리는 가슴아픈 일이 일어났다. 왜 이리 되었을까. 납품처의 임직원들을 너무 믿고 공장의 모든 곳을 보여준 것이 홍 사장의 잘못이었다.
필자가 아는 사례 중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중소기업의 사장은 농산물 가공식품 수출을 막 시작했다. 이 사장은 농산물 가공식품 특허도 가진 농업 신지식인이었다. 한 대기업이 그 상품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납품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들에게 납품하면 해외 수출을 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그 농산물 가공식품의 제조과정을 다 공개하면서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레시피도 알려주었다. 특허를 가지고 있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약 3개월 후에 유사한 제품이 납품 이야기가 오고간 대기업에서 출시됐다.
특허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문제 제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법대로 하라는 대답이었다.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해서 이길수 있을까? 중소기업이 특허관련해서 대기업을 상대로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술전쟁 위에 법률전쟁이 있고 법률전쟁 위에 돈의 전쟁이 있기 때문이다. 돈 많은 대기업이 대형로펌을 고용해서 공격하면 중소기업으로서는 견딜 재간이 없다.
전자업계에는 이런 일이 더 많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매년 열린다. 모든 혁신기업들은 CES에 가고 싶어한다. 필자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도 여기에 장비를 멋지게 출품했다. 혁신상도 탔다. 국내에서도 반응이 좋아서 주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국내의 모 대기업에서 자기들이 국내외에 공급할테니 제품 샘플을 보내달라고 했다. 별 의심없이 장비 10대 정도를 보내고 테스트를 했다. 반응이 좋았고 본격적으로 협업을 하려고 했다. 대기업에 공급하면 매출 수십억원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것이 그대로 진행되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새로 온 대기업 신임 사장이 저런 것을 우리는 왜 못 만드냐 하면서 직접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미 기본적인 스펙을 다 아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만들면 금방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오래 쌓인 노하우를 바로 따라가기는 힘들었다. 해당 대기업은 만들지 못했지만 납품도 무산됐다. 지인의 회사는 시간과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심지어 테스트한 10대를 철수하라고 했다. 물론 대금을 주지도 않았다. 협업의 일환으로 했기에 자기들은 대금지급의 의무가 없다고 했다.
이 3가지 사례을 보면 혁신기업이 좋은 기술을 시장에 내놓는 순간에 기술이나 사업탈취의 리스크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여러 기업과 네트워크가 약한 지역에서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이러한 리스크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심하라. 지금 논의하고 있거나 보내는 자료는 유출될 염려가 있다. 상대방이 가로챌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의 3가지 경우처럼 대기업에 납품하고 수출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매출확보 가능성에 방심을 하게 된다.
의심해야 조심하게 된다. 언제나 기술유출을 염두에 두면서 협상이나 거래를 시작해야 한다. 또한 직원들의 관리도 마찬가지다. 기술유출은 기업의 내외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혹시를 대비해서 모든 서류에 대외비라는 단어를 넣어라. 만약에 기술유출의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의 대비책은 필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보호할 만한 경제적 가치의 존재여부'를 보고 기술유출에 대하여 조사에 착수한다. 보호를 할만하고 어떤 노력을 해 왔느냐를 따진다는 것이다. 특허 여부를 우선적으로 보지만 실제로 자료를 보호하려 했는지도 본다.
모든 이메일, 자료에 대외비라는 문구를 넣어 둔 것을 먼저 체크한다. 핵심기술과 장비, 자료가 있는 장소에 관계자외 출입금지를 넣어라. 캐비넷이나 일정장소에 출입할 때 “관계자외에 접근금지” 등의 표식을 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보호할만한 것이었는지를 당국에 드러낼 수 있다.
셋째, 거래를 개시할때는 당연히 기술보호협약(NDA)을 체결해야 한다. 중요한 기술일수록 사전에 이런 절차를 거처야 한다. 앞서 사례로 든 사건도 대부분 이런 협약이 없는 상황에서 자료가 나갔다. 만약 이런 절차를 거쳤다면 기술유출에 따른 손해배상이나 피해를 공정거래위원회에 등에서 구제받기 쉬웠을 것이다. 물론 기술보호협약을 너무 믿어도 안되지만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
넷째, 업무용 이메일과 개인 이메일을 구분하라. 회사에서는 업무용 이메일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업무로 주고 받는 모든 문서는 회사에서 만든 계정을 부여해서 이메일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글, 네이버 등 개인 메일로 유출되는 기술자료는 통제하기 어렵다. 더구나 그 개인이 퇴사하면서 핵심기술을 유출시키면 통제가 안된다. 소송이나 고발 등의 조치도 근거가 필요한데 개인 이메일은 결정적일 때 접근이 안된다.
유니콘기업 성장에 있어서 기술유출 방지가 핵심이다. 기술에 대한 보호가 안되면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사그라진다. 기술유출의 다양한 경로가 있으니 대표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기술보호 방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시아비즈니스동맹 의장 이경만
이경만 의장은 행정고시 38회에 합격후 공정거래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과장, 국장, OECD 한국센터 경쟁정책본부장,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했다. 현재는 혁신기업 지원, 지역균형발전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