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TSMC를 넘고 세계 파운드리시장 1위에 오르는 일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IT공급망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갖추기 위해 완성해야 할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는 2017년 5월 파운드리사업부를 출범하며 TSMC에 이어 2위 업체로 자리잡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2018년 세계 파운드리시장 매출 점유율 2위에 오르며 이를 조기에 달성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10% 중반대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TSMC라는 거대한 경쟁사의 벽을 돌파하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D램시장에서 30년 넘게 1위를, 낸드플래시시장에서 20년 가까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절대강자’에 해당한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TSMC가 이와 같은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시장에서 세계 1위 기업이 막강한 영향력과 가격 결정권을 쥐고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삼성전자가 2등을 목표로 파운드리사업에 뛰어든 것은 표면적으로 볼 때 다소 의문이 남는 결정이다.
파운드리는 삼성전자가 장점으로 앞세우는 ‘초격차’ 전략을 통해 확실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사업에 해당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중요한 성장 기회를 포착한 핵심 신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막대한 연구개발 및 생산 투자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쟁사를 넘어 세계 최고로 거듭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메모리반도체는 물론 디스플레이, TV와 스마트폰 등 현재 삼성전자의 주요 사업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 최고 지위에 올랐다. 현재는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사업이 같은 절차를 밟으면서 전 세계에서 입지를 키워 나가고 있다.
따라서 파운드리사업도 경쟁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력과 충분한 자금력이 동원되면 삼성전자가 TSMC를 넘고 세계 선두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와 진정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된 지는 불과 6년도 되지 않았다. TSMC의 역사가 36년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추격은 상당히 매서운 수준이다.
물론 TSMC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넘어섰던 상대 기업과 다소 결이 다르다. 일단 사업 규모 측면에서 과거의 경쟁사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금 여력도 우수하다.
무엇보다 시장 상황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 삼성전자가 이전의 성장 전략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과거 삼성전자가 경쟁사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른 분야는 모두 ‘소품종 다량생산’ 시대의 산물이라는 공통점을 두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나 LCD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은 모두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제품을 개발한 뒤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면 단기간에 시장에서 확실한 지배력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파운드리는 갈수록 ‘다품종 소량생산’의 성격을 띠는 분야로 발전하고 있다. 각 고객사의 수요에 맞춘 제품을 주문에 맞춰 공급해야 하고 특정 반도체 제품의 생산 주기도 비교적 짧다.
따라서 다양한 주문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수요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대비하는 일이 모두 중요한 경쟁력에 해당하는데 파운드리사업의 이런 특성은 아직 삼성전자보다 TSMC에 더 유리한 요소다.
▲ 삼성전자(왼쪽)와 TSMC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
글로벌 주요 반도체 고객사와 장기간 사업 협력을 이어 온 TSMC는 자연히 이들과 더 활발하게 소통하며 수요를 미리 파악할 수 있고 새 공정기술 도입 및 생산시설 구축 시기를 결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 삼성전자보다 다양한 공정을 갖추고 생산 능력에서 앞서고 있다는 점도 고객사 주문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배경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를 찾는 고객사의 유형도 기존의 전자제품 제조사 및 모바일 반도체기업에서 대형 IT기업, 자동차 전문기업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결국 파운드리업체들은 고객사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만 하고 삼성전자도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과감히 포기해야 승산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운드리사업의 성공은 삼성전자에 특별히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미래의 중요한 성장 동력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삼성전자가 전 세계 IT산업 부품 공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입지를 강화하는 데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 공급망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삼성전자가 갖추고 있는 수직계열화 구조의 장점은 더욱 빛을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판매하는 대부분의 스마트폰과 TV, 가전 등 세트상품은 핵심 부품과 완제품, 소프트웨어 등이 모두 삼성전자에서 자체적으로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물론 단가 등을 이유로 외부 협력사를 활용하는 사례도 많지만, 이처럼 완전한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 IT업계에서 삼성전자만의 차별화 요소로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공급망을 직접 관리하는 만큼 상황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다양한 제조사와 소비자의 수요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는 이런 글로벌 공급망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시스템반도체는 이미 IT와 자동차 등 핵심 산업의 중심으로 꼽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런 추세가 더욱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중앙처리장치(CPU)와 통신반도체, 신경망 처리장치(NPU) 등 시스템반도체의 성능 요구 수준이 높아져 이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기업에 수혜가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와 센서, 카메라와 디스플레이는 물론 시스템반도체 설계와 생산, 대부분의 핵심 부품 자체 개발과 공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관련 역량을 모두 최고 수준으로 갖춰내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IT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를 잠재력이 충분하다.
결국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사업 도전은 TSMC를 뛰어넘는 데 그치지 않고 전 세계 IT 공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확실한 입지를 차지하겠다는 더 큰 목표를 바탕에 두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에서 세계 선두로 도약하는 일는 현재 가장 첨예한 대결이 이뤄지는 분야고 IT기술 분야에서 가장 큰 상징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가 완성해야 할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1부- 삼성 vs TSMC
(6) 삼성전자 고객과 경쟁 딜레마, 파운드리 분사가 해법?
(7) TSMC 파운드리 추격, 삼성 공급망 주도권 '마지막 퍼즐'
2부- 삼성 vs APP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