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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는 '포스트 정몽준'이 될 수 있을까

조은아 기자 euna@businesspost.co.kr 2014-07-11 19: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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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규는 '포스트 정몽준'이 될 수 있을까  
▲ 정몽규 회장이 10일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정몽규 회장은 정몽준 전 의원과 비슷한 면이 너무 많다. 기업인이고 축구를 좋아한다. 정몽준 전 의원처럼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현대가문 출신으로 정 회장에게 정 전 의원은 사촌 형이다.

정 회장의 배경과 행보가 정몽준 전 의원과 너무나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레 '포스트 정몽준'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 정 회장이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 회장은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자 현대산업개발그룹 회장이다. 최근 정 회장은 이 양쪽에서 모두 시련을 겪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10년만에 적자로 전환했고, 축구협회는 월드컵 참패로 휘청거리고 있다. 홍명보 파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정몽규 회장은 이 시련을 이겨내고 '포스트 정몽준'이 될 수 있을까?

◆ 리더십 위기에 처한 정몽규

정 회장은 10일 축구협회장으로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참패한 데 이어 홍명보 감독의 유임과 사퇴파문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정 회장은 불과 몇 달 전 현대산업개발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무보수 경영을 선언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지난해 10년 만에 적자전환하는 등 최악의 한해를 보냈기 때문이다.

정 회장에게 한꺼번에 닥친 시련이다. 정 회장이 지난해 3월 축구협회장을 맡으면서 축구와 기업을 동시에 쥐었을 때만 해도 이런 시련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스포츠단체장의 꽃’이라 불린다. 한 해 예산이 1천억 원이 넘어 웬만한 지방자치단체보다 훨씬 많다.

현대산업개발그룹은 연매출 4조 원이 넘는 종합건설사로 1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서도 2012년까지 흑자를 이어왔다.

정 회장은 지난해 “대한축구협회와 현대산업개발이라는 두 곳을 동시에 이끄는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다.

정 회장은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고 개척하는 것”이라는 아버지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말을 꺼냈다. 그는 이어 “이 말이 대한축구협회와 현대산업개발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축구와 기업이 경쟁이라는 도전에 직면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라며 “대한축구협회와 현대산업개발 모두를 미래에 당당히 맞서는 역동적 주체로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정말 그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축구대표팀은 월드컵에서 16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거뒀고 현대산업개발은 10년 만에 적자전환하며 흔들리고 있다.

◆ 축구협회에서 짙은 현대가문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을까

“현재의 시련을 거울삼아 더 큰 도약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정 회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장에서 국민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홍명보 감독은 이날 자진사퇴했다. 축구협회에서 그의 유임을 결정한 지 일주일 만이다. 정 회장도 이 자리에 같이 모습을 드러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홍명보 감독의 유임과 사퇴과정에서 정 회장의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었다. 정 회장은 애초 경험과 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우려에도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당시 축구협회는 거절하는 홍 감독을 설득하기 위해 세 차례나 찾아갔다. 결과적으로 인재를 너무 빨리 등용해 앞길을 막았다는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정 회장은 월드컵 탈락 이후 국민의 거센 사퇴요구에도 홍 감독을 직접 설득해 유임을 결정했다. 그러나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정 회장은 프로축구연맹 총재 등 축구단체의 수장이 될 무렵부터 그에게 뗄 수 없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현대 가문의 후광’ 덕분이라는 꼬리표였다. 88올림픽 유치의 주역인 정주영 명예회장부터 정몽준 전임 축구협회장으로 이어진 현대가문의 힘에 힘입어 그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이런 시선 앞에서 그의 능력으로 자리에 올랐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대한축구협회장 자리는 그런 의구심을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월드컵의 성공은 정 회장의 능력을 증명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실패했다. 게다가 정 회장은 여전히 사촌형인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 참패의 원인으로 현대가문의 인맥축구가 지목되고 있다.

정몽준 명예회장은 1993년부터 16년 동안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았다. 2009년 그의 인맥으로 분류되는 조중연 현 동아시아축구연맹회장이 회장에 올랐다. 축구협회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현대가 인맥에게 회장 자리를 맡겨 왔다.

이 과정에서 축구계에 파벌이 생겼고 그 결과가 이번 브라질월드컵의 참패로 드러났다. 홍 감독 역시 정몽준 명예회장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 감독에 대한 정몽규 회장의 신뢰에 정몽준 명예회장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향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기술위원회와 후임감독을 선임하고 쇄신책을 하루 빨리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회장은 이제 축구협회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문을 받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오늘의 정 회장을 만들어주는 데 일조한 현대가문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 회장에게 3년여의 임기가 남아있다.


  정몽규는 '포스트 정몽준'이 될 수 있을까  
▲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회의실에서 축구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이 끝난 후 정몽규 회장과 임원진들이 브라질월드컵 부진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있다.<뉴시스>

◆ 축구 일에 바쁜 총수, 현대산업개발 실적부진

“지난해 실적악화에 대한 엄중한 책임과 나부터 변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보수를 회사에 반납하겠습니다.”

정 회장은 지난 5월 현대산업개발 전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무보수 경영을 선언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지금 변화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함과 우리 회사를 훌륭한 기업으로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이런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해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10년 만에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전환했다. 지난 해 매출액은 4조2169억 원으로 전년보다 26.5% 늘었지만 1479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산업개발은 토목건축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부동산경기 침체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08년 5위였던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지난해 9위까지 떨어졌다.

지난 5월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대상으로 새롭게 지정됐다. 그만큼 재무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앞으로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협의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정 회장은 지난해 3월부터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기 시작했다. 두 시기가 맞아떨어지자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정 회장은 취임 초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총 15차례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FIFA와 관련된 행사는 모두 찾아가 투표를 행사할 25명의 FIFA 집행위원을 일일이 만났다.

현대산업개발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이 프로축구연맹 총재를 지낼 때처럼 축구협회장이 되어서도 현대산업개발의 실적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정 회장이 축구협회장으로 일하는 동안 현대산업개발 경영에서 한발 떨어진 점도 현대산업개발의 지난해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로 들린다.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 경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정몽준 명예회장이 현대중공업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대주주 지위만 유지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그는 1999년부터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지금의 회사를 만들어 냈다. 2001년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때 7년 동안 공들여 지은 강남파이낸스타워를 미국계 투자전문회사 론스타에 매각하는 등의 자구노력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현대산업개발의 상징인 ‘아이파크’ 역시 정 회장의 작품이다. 회장 취임 후 가장 추진력 있게 밀어붙인 사업이다.

그는 2011년 “포스트 정몽준을 꿈꾸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는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이라며 “최고의 회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똑같은 질문 앞에 또 다시 서있다.

◆ 최장수 구단주 정몽규의 축구사랑

정 회장의 축구 사랑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울산 현대 사택에서 살았다. 당시 울산현대 축구단의 차범근 감독이 이웃이었고 차두리 선수가 공 차는 모습도 직접 지켜봤다. 정 회장은 그때부터 축구가 친밀해졌다고 한다.

이듬해인 1994년에 울산현대호랑이 구단주를 맡았고 그 뒤에도 전북현대다이노스 구단주를 거쳐 현재 부산아이파크 구단주를 맡고 있다. 현역 구단주 중 최장수 구단주다.

정 회장은 주요 경기뿐 아니라 학생들 경기도 자주 찾아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경기가 열리는 곳을 찾아보지 않고서 한국 축구 미래를 논하면 모래밭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제9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선출됐다. 그러나 취임 직후 k리그 승부조작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줄어들어 대외적 위상도 깎였다.

정 회장은 이때 전면에 나서 사태를 빠르게 수습했다. 곧바로 전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관련 선수와 관계자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한국 축구계의 숙원이었던 프로리그 승강제도 도입했다. 선수복지연금제를 도입하고 선수의 최저연봉을 올렸다. 2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대 프로축구연맹 총재 중 가장 뛰어났다는 평가를 들었다. 정 회장은 이때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월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정 회장은 축구협회장이 되고 적극적으로 축구외교에 나섰다. 정몽준 명예회장이 떠난 이후 한국의 축구 외교력 회복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5차례 이상 출장길에 오르며 FIFA 집행위원들을 만났고 그 결과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

정 회장은 축구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문명 자체가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사회성에서 시작된 것인데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스포츠가 축구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정몽규는 '포스트 정몽준'이 될 수 있을까  
▲ 정몽규 회장(왼쪽)이 정몽준 명예회장(가운데)과 함께 브라질월드컵 FIFA 본부를 방문해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오른쪽)을 접견하고 있다.<뉴시스>

◆ 정몽규가 기업과 축구 모두를 쥐려는 까닭

정몽규 회장은 ‘포니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정세영 전 명예회장은 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 당시 초대사장으로 취임했다. 그 뒤 포니를 개발해 포니 신화를 이끌었다. 32년 동안 자동차 외길 인생을 걸어온 한국 자동차 업계의 대부로 불린다.

그러나 정세영 회장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비운을 겪어야 했다. 정세영 회장은 주주총회에서 가까운 인물을 이사로 선임해 형 정주영 회장의 노여움을 샀다.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1999년 현대차의 경영권을 조카인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물려주고 현대차를 떠났다.

정세영 회장은 2000년 펴낸 회고록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 32년 동안 몸담았던 현대자동차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형의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 회사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

정 회장 역시 1999년 아버지와 함께 현대자동차를 떠났다. 1988년 대리로 입사해 1996년 회장에 취임한 지 3년 만이었다.

정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책갈피에 포니 자동차 사진을 끼워 넣고 다닐 만큼 자동차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를 떠나고 1999년 4월 현대산업개발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이 건설업을 할 수 있겠냐”는 의문의 시선이 있었지만 정 회장은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정 회장 취임 당시 2조 원이었던 현대산업개발 매출은 15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취임 직후 재고관리를 체계화했고 사업다각화에 힘썼다. 정 회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 주택과 건설 등 한 우물을 파다 2000년대 후반 들어 호텔, 백화점, 제조업체 등에 진출하며 사업범위를 넓혔다. 2006년 영창악기를 인수해 악기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파크하얏트서울’과 용산에 있는 패션전문 백화점 ‘현대아이파크몰’ 역시 정 회장의 작품이다. 정 회장은 건축물의 디자인을 중시하는 디자인경영을 처음 도입했다.

그는 지금도 멋진 디자인의 건축물을 보면 그 자리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디자인 공부를 더 깊이 해보고 싶다며 홍익대 국제디자인대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정 회장이 축구협회 회장과 현대산업개발 회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지 않으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고 그를 지켜본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독자로 자라난 환경 때문에 어려서부터 홀로서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졌고 현대자동차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경험도 그의 강한 승부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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