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은행> |
[비즈니스포스트] “기본적으로 물가가 예상 수준으로 정책목표에 확실히 수렴해 간다고 확신하기 전에는 시기상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새해 들어 처음으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결정한 뒤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총재가 금리인하 가능성에 선을 긋고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지난해 4월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금리인상 행진을 이어오고 있으나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조만간 통화정책을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총재가 그동안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왔는데 누적된 통화긴축 효과가 나타나는 시차를 고려하면 정책 효과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그간 금리인상 효과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당분간 금리인상 효과를 점검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적어도 ‘연속 금리인상의 시대’는 끝났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내부적으로 경기침체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는 점 때문에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2021년 8월부터 시작한 금리인상 기조를 2년 넘게 끌어갈 경우 소비와 투자에 위축을 불러와 경기침체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다.
이 총재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경제가 경기침체의 경계선에 있다고 인정했다.
이 총재는 “수출부진이나 국제경기 둔화로 올해 상반기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것이 경기침체냐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고 경계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외적으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주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 올해 금리인상 기조를 전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이 총재가 통화정책을 전환할 명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12일(현지시각)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5%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1년 10월 이후 최소 상승폭이다.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11월과 비교해 0.1% 하락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전월보다 하락한 것은 2020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이처럼 미국 물가지표가 안정세를 보임에 따라 연준에서도 이제 금리인상 기조를 끝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12월 미국 CPI는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확신을 만들어 줄 것이다”며 “연준의 감속이 확인될 경우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종료에 대한 명분은 강화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에 시장은 이 총재가 이번 연 3.50% 금리인상을 끝으로 통화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보고 있다.
특히 현재 금융통화위원들이 최종 기준금리 수준을 두고 3.50% 3명, 3.75% 3명으로 팽팽하게 갈린 상황은 이 총재가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힘들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번 연 3.50% 인상으로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될 것이다”며 “예단 영역이나 연말 연 3.25%로 인하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번 금리인상이 마지막이며 4분기에 금리인하가 전망된다”고 바라봤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최종 기준금리 전망을 연 3.75%에서 연 3.50%로 하향 조정한다”며 “기준금리 인하는 2024년 상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가 물가 안정을 중심에 둔 통화정책을 강조하고 있어 한국은행의 목표치보다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는 국내 물가 상승률은 통화정책 전환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물가 오름세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금리를 올려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문제도 통화정책 전환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이날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결정으로 1%포인트로 좁혀지기는 했으나 향후 연준의 금리인상 수준에 따라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 폭이 크게 벌어질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국내에서 빠져나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금리인상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결정은 국내 상황을 우선으로 하고 다만 미국의 금리인상이 계속돼 금리 격차가 커질 때 생길 수 있는 금융안정 문제를 같이 고려하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