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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브리핑] 신한금융 회장 지명 '이변' 회추위, 2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2022-12-09 17: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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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용퇴(勇退): 명사.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용기 있게 물러남.’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와 있는 ‘용퇴’에 대한 설명입니다.
 
[백브리핑] 신한금융 회장 지명 '이변' 회추위, 2시간 동안 무슨 일이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11월9일 열린 '신한 디지털데이' 행사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신한금융>

신한금융그룹은 전날 “조용병 회장이 세대교체와 신한의 미래를 고려해 전격적으로 ‘용퇴’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신한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이변'으로 평가되는 진옥동 회장 내정자를 전격 발표한 전날의 여러 상황을 되새겨 보면 정말로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용기있게 물러난' 것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금융업계는 물론 신한금융 내부 사람들의 예측마저 완전히 빗나간 것은 그렇다 쳐도 용퇴를 결정한 당사자인 조 회장조차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용퇴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조 회장은 면접장을 들어가기 전 기자들과 만나 진행한 짧은 인터뷰에서도 향후 조직개편과 미래 비전을 말하는 등 재연임에 적극적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 회장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모든 결과가 나오고 회사를 떠나는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언제부터 용퇴를 고심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기도 했고요.

“그건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사항이잖아요. CEO는 항상 태연해야 합니다.”

조 회장의 전임인 한동우 회장은 2017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다시 한 번 회장에 도전장을 던져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물러남을 선택했습니다. 회추위가 열리기 전인 2016년 말부터 물러날 뜻을 밝혔는데 언론으로부터 용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한 회장은 당연히 회장 후보군에도 들지 않았고 경쟁 프레젠테이션 면접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전날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재연임을 향한 의욕을 내비쳤고 경쟁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시장에서 회추위가 진행된 2시간 남짓한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의심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봤을 때 금융업계에서 사외이사를 통한 외부 압력설 등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1월 중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직접 만나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은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며 회장 선임 과정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신한금융 회추위 전날인 7일에도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치금융 논란 관련 질문에 “CEO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은 저희의 책무이지 재량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당국 수장이 연일 금융지주 회장 선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신한금융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막판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직접적 압박이 없었더라도 조 회장이 면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면접장 분위기를 보고 스스로 안되겠다고 생각해 사퇴를 결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조 회장은 프레젠테이션 방식의 개인면접을 마친 뒤 회추위원들에게 사퇴 의사를 전하고 자신을 투표에서 빼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2번이나 회추위 최종 면접을 치러봤던 조 회장인 만큼 이전과 다른 싸늘한 분위기에 묘한 낌새를 느끼고 투표 전 먼저 움직였을 수 있다는 겁니다.

조 회장은 회추위 발표가 난 뒤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할 수 있는데 더 하지 않고 나가는 것과 할 수 없이 나가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자존심 문제기 때문에.”

조 회장이 퇴근길에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책임도 언급한 만큼 면접 과정에서 사모펀드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간접적 압박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조 회장은 3년 전에는 채용비리로 재판을 받는 중간에 회추위 면접을 치렀지만 당시 면접에서는 채용비리 관련 질문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 앞에서 원인을 찾기 위해 나오는 이런 저런 가설일 뿐입니다.

그 누구도 조 회장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조 회장은 물러났고 이번에 신한금융은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 이미지를 더했습니다.

사외이사의 힘이 회장까지 단번에 교체할 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사외이사 역할 확대는 모든 금융지주가 힘주고 있는 ESG(환경 사회 지배주고) 가운데 지배구조(G)의 핵심 사안 중 하나입니다.

주요 금융사들이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 가운데 뽑고 이사회 내 위원회 위원장을 사외이사에게 맡기는 것도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일환입니다.

ESG 경쟁력이 금융사의 외부투자자 유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6년 가까이 회사를 이끈 회장이 사외이사들의 선택에 따라 단번에 바뀌어 버렸으니 지배구조 투명성 관련해서는 이만한 홍보가 없겠죠.

조 회장의 교체는 최근 몇 년 동안 신한금융을 괴롭혔던 채용비리,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등 부정적 이미지와 결별하는 의미도 지닙니다.

채용비리,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등과 관련해 신한금융의 법적 책임은 끝났을지 몰라도 도덕적 책임을 다했느냐는 놓고는 여전히 시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회추위가 열린 날에도 서울 중구 신한금융 본사 앞에서는 독일헤리티지 피해자연대와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금융정의연대 등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독일헤리티지펀드 분쟁조정 결과의 조속한 수용을 촉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찌 보면 조 회장의 퇴진에 용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백브리핑] 신한금융 회장 지명 '이변' 회추위, 2시간 동안 무슨 일이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9일 서울 중구 신한금융그룹 백년관에서 열린 '신한금융그룹 클라우드 통합운영센터' 개소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조 회장, 조경선 신한DS 대표. <신한금융> 

신한사태, KB사태 등 과거 금융지주에서는 회장 자리를 놓고 알력다툼이 벌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금융지주 이미지가 크게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요.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온 용퇴에는 두 번째로 이런 뜻이 있습니다.

‘후진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스스로 관직 따위에서 물러남.’

조 회장이 분란 없이 깔끔히 물러나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고 신한금융의 이미지를 높였다는 점에서 그의 퇴진은 분명 용퇴로 다가옵니다.

조 회장은 퇴근길 인터뷰에서 다음 회장으로 내정된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향한 굳건한 믿음을 내보이도 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제가 행장 되면서부터 후보군을 관리해 왔는데 회추위원들께서도 (이들을 후보군으로) 선정해줘서 고맙더라고요. 제가 보는 눈하고 같구나. 진 행장하고는 그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눈빛만 봐도 압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 회장은 이날도 서울 중구 신한금융그룹 백년관에서 열린 '신한금융그룹 클라우드 통합운영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진옥동 행장과 또 다른 회장 경쟁자였던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과 환한 얼굴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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