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지원법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본격화하면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기업이 적극적으로 경쟁 우위를 증명하는 데 힘쓰고 있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공장.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의 본격적 시행을 앞두고 지원 대상 기업을 평가해 선정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마이크론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평가 기간을 앞두고 미국에 1.4나노 첨단 반도체 양산 계획을, 마이크론은 1천억 달러(약 142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 발표를 내놓으며 정면승부를 예고했다.
5일 미국 상무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산업자문위원회(IAC)에 24명의 전문가들이 새로 선임돼 반도체 지원법 시행 계획과 관련한 자문을 지나 레이먼도 상무장관 등 관계자에 제공한다.
산업자문위원회는 퀄컴과 인텔, ASML, 마이크로소프트, 포드 등 글로벌 주요 기업 관계자들과 학계 전문가 등 반도체산업과 연관이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다.
상무부는 이들이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보조금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데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지만 반도체산업과 관련한 현안과 정책 방향성 등을 조언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시설 투자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 연구개발 지원금 등을 특정 반도체기업에 제공할 때 이들의 의견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상무부는 9월부터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후속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 지원을 원하는 기업들에 신청서를 받아 내년 초까지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약 500억 달러(71조 원)에 이르는 정부 예산을 어느 반도체기업에 제공할 지 결정하는 절차에 해당하는 만큼 엄격한 평가와 논의를 거쳐 결론이 날 공산이 크다.
이미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시설 투자를 진행하거나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삼성전자와 인텔, 마이크론, 대만 TSMC가 투자 지원금 등 인센티브에 수혜를 볼 유력한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상무부가 평가와 선정 과정에서 미국의 기술 발전 및 주요 산업에 기여도, 중장기 성장성 및 지속가능성, 반도체 생태계 강화 계획 등을 고려한다고 밝힌 만큼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에 주관적 요소가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반도체기업이 예상하고 있던 만큼의 지원을 받는 일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미국에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건설을 진행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시설 투자에 들이는 막대한 비용을 대부분 자체적으로 부담해야만 한다.
산업자문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대부분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미국 기업 임원들로 이뤄져 있는 점도 삼성전자와 같은 해외 반도체기업이 불리해질 수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이런 상황에서 1.4나노 첨단 반도체공정 상용화 계획을 발표하고 미국에 해당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점은 상무부의 평가 과정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4년부터 가동을 계획하고 있는 텍사스주 새 반도체공장에 최신 미세공정 기술을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최신 공정에 해당하는 3나노 공정은 물론 차세대 공정인 2나노,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둔 1.4나노 공정 생산라인도 주요 고객사가 밀집한 미국 내 공장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 마이크론이 미국 뉴욕주에 앞으로 20년 동안 모두 1천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
삼성전자가 새로 발표한 1.4나노 공정은 반도체 성능과 전력 효율을 모두 크게 끌어올려 고성능 컴퓨터와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분야에서 널리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이다.
해당 기술이 미국 반도체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만큼 미국 상무부가 이런 점을 고려해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할 때 삼성전자를 중요하게 고려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시설 투자 및 연구개발 지원금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TSMC와 인텔 등 경쟁사에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지원법 수혜를 노려 적극적으로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 마이크론도 현지시각으로 3일 1천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마이크론은 미국 뉴욕주에 앞으로 20년 동안 투자를 지속해 첨단 메모리반도체 생산을 늘리고 일자리 창출 등 현지 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태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반도체 지원법이 투자 결정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며 “정부 지원 없이는 비용 등 측면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마이크론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현실로 옮기려면 미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1천억 달러의 반도체 시설 투자를 볼모로 잡아둔 셈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시스템반도체, 마이크론은 메모리반도체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두 기업이 잇따라 미국 투자와 발표한 중대 발표를 내놓은 것은 정부 지원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강력한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인텔과 TSMC 등 기업도 미국 정부의 평가와 선정 절차를 앞두고 중요한 발표를 내놓으며 가세할 가능성이 큰 만큼 반도체 지원법 수혜를 노리는 반도체기업 사이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 않은 SK하이닉스도 SK그룹 차원에서 미국에 반도체 관련 투자 의지를 내비쳐 이른 시일에 반도체공장 투자 등 계획을 제시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국 상무부는 발표자료를 통해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 유치와 반도체 공급망 구축, 기술 리더십 강화를 주요 목표로 두고 있다”며 “다양한 기준을 바탕으로 평가를 거쳐 미국의 세금이 목적에 맞게 쓰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