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앞으로 5년 동안 270만 세대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국민주겅나정 실현방안'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정부가 5년 동안 전국에 270만 세대를 공급한다는 야침찬 계획을 내놨다.
재건축·재개발사업 등을 통한 민간의 공급 확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부동산 시장 침체가 시작돼 민간이 얼마나 호응할지 일각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민간 공급 확대를 자극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개선 방안도 이번 발표에서 빠졌다.
16일 부동산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에서 이날 내놓은 이른바 8·16 부동산 대책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실현가능성에 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효선 NH투자증권 부동산수석위원은 이날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주택 공급 대책에는 270만 세대라는 만만치 않은 물량을 어디에 공급하겠다는 내용이 주가 되지만 그보다도 어떻게 하겠다라는 방식에 대한 부분을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발표에 이 부분이 깊이 있게 설계되지는 않아 당장의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 수석위원은 "특히 수도권에 150만 세대를 공급하려면 연간 30만 세대씩 공급해야 하는데 택지확보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령개정, 예산 등 실행을 위한 과정을 생각해보면 5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얼만큼 진행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고 덧붙였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앞으로 5년 안에 전국에 270만 세대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 계획을 내놨다. 정부는 애초 공약으로 '250만+α(알파) 공급'을 내세웠는데 알파가 20만 호인 셈이다.
재개발·재건축 및 도심복합사업 등의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52만 세대,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를 통해 88만 세대, 도시개발 및 지구단위계획구역·기타 일반주택 사업 등 민간 자체사업을 통해 130만 세대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규제를 풀고 각종 장려책을 더해 도시정비(52만 세대)와 민간 자체사업(130만 세대) 등 182만 세대를 공급하는 셈이다. 그만큼 집주인들이 결심을 해야 하는데, 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가 이어진다면 나서기 쉽지 않다.
혹시나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도시정비사업 시장도 함께 얼어붙을 게 뻔하다. 실제 비수도권 대도시와 수도권 일부에서 벌써부터 미분양 아파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국토부의 2022년 상반기 전국 건축 인허가 현황 집계자료를 보면 비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당국의 인허가는 증가했지만 착공은 줄어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아파트 인허가는 16만7247호로 2021년 같은 기간보다 19.9% 늘었다. 지역별로는 비수도권 주택 인허가가 46.6% 급증했다. 하지만 2022년 1~5월 주택 착공 실적은 14만9191호에 불과해 2021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4.3% 급감했다.
인허가 물량에 견줘 착공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부동산 침체기에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이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인허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시행사·건설사들이 시장 상황을 관찰하며 사업시기를 조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건축사업을 둘러싼 정부의 구체적 규제완화 방안이 여전히 안개속이라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7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개편안의 적정선을 찾아 8월 주택공급대책 발표에 포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정부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의 구체적 방안은 9월에,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위한 평가항목 조정 등의 개선안도 올해 안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방안 발표를 다시 한번 미룬 셈이다.
이에 따라 도시정비 조합들의 셈법은 오히려 복잡해지고 있다.
1기 신도시(경기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에서 도시정비를 추진하는 조합들은 재건축과 리모델링 등 사업방식을 두고 조합원 사이 논쟁이 치열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 예정 단지들 가운데 분당과 일산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용적률은 높아 사업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안전진단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걱정거리다.
이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되지 않고 사업 추진도 원활한 리모델링사업을 하자는 의견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재건축을 통해 탄생한 아파트 단지가 리모델링사업을 통해 나온 단지보다 상품가치가 높다는 점을 들어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에 이번 부동산대책을 지켜보다는 여론이 많았는데 용적률, 안전진단, 초과이익환수제 등 사업추진의 알맹이라 할 요소들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혼란만 이어진 셈이다.
애초 이번 주택공급대책을 지난 9일 발표하기로 했다가 수도권 집중호우로 이날로 발표가 연기된 것인데 구체적 개선 방안을 기대했던 조합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원희룡 장관은 이날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안전진단 기준을 발표해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지자체마다, 노후 주택마다 사정이 달라 정밀한 접근과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두고도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국토부가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을 어떻게 조정하겠다는 결론을 미리 제시한는 것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변경이 생겼을 때 큰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270만 호 공급 정책은 '앞으로 내용을 채워나가야 할 목표치'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평가가 시장에서 나왔다.
이와 별도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사업이 순항할 수 있을지를 둘러싸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는 수도권 아파트 시장을 쥐고 흔드는 대형 재료이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7월31일 GTX추진단을 발족해 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A노선은 2024년 준공하고 B·C노선은 민간사업자 선정, 협상 실시설계 등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겠다고 했다. B노선은 2024년에 공사를 시작해 2030년에 개통을, C노선은 2023년에 첫 삽을 떠 2028년에 개통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다만 이는 실현하기 어렵다는 전망에 벌써부터 무게가 실린다. A노선의 경우 삼성역 복합환승센터(영동대로 복합개발) 완공 목표가 2023년이었으나 최근 여러 이유로 2028년 4월로 대폭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C노선도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지하 단지를 관통하는 것에 크게 반대를 하고 있고 도봉구간(창동역~도봉산역) 지하화와 관련해 감사원 청구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공사 일정과 협상 지연 등으로 당초 계획보다 늦춰지고 있는 셈이다.
아직 B노선은 민자구간과 재정구간 사업자도 선정되지 않았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