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왼쪽)이 8월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대만 방문을 강행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한 중국 정부 차원의 보복조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이 섣불리 군사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미국 국채 매각이나 수출입 규제 강화를 검토하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뉴욕타임스는 3일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중국의 날선 반응을 자극하고 있다”며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며 아시아 전체에 새로운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 일정에 대만이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됐을 때부터 중국 영토인 대만에 미국의 적법하지 않은 침범을 막겠다며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펠로시 의장은 2일 밤 대만에 입국한 뒤 차이잉원 총통을 만나 미국의 지원을 약속하는 등 공개 일정을 소화하면서 중국의 반대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즉각 외교부 성명을 통해 “미국이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전투기 부대를 출격시키는 등 무력시위에 나서면서 강력한 경고를 내놓았다.
대만에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군사적 압박은 올해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지속적으로 전 세계의 관심사에 놓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펠로시 의장의 방문이 본격적 군사 충돌의 계기로 작용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 관계자들도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중국의 군사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반대 의사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중국의 대만 침공은 사실상 미국과 정면대결을 의미하는 만큼 중국 정부의 군사적 압박은 무력시위 단계에서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중국이 군사적 수단 이외에 미국을 겨냥해 이번 사건에 대한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다른 보복조치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3일 논평을 내고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미국과 중국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스스로의 실수에 대가를 치뤄야만 한다”고 보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의 보복조치가 일회성 또는 단기적으로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더욱 발전하면서 미국과 대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가장 먼저 시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복조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 국가에 공급하는 제품과 소재 등 수출을 점진적으로 중단하는 방안으로 꼽힌다.
현재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 수준이다. 중국에 글로벌 기업들의 제조공장과 소재 및 원재료 생산지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현지에 보유하고 있는 자원과 생산망을 무기화한다면 코로나19 사태로 차질을 빚었던 전 세계 공급망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고 이는 전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블룸버그는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은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킬 잠재력이 있다”며 “대만의 반도체와 첨단 제품 수출도 영향권에 놓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도했다.
수출입 및 제조업, 첨단 산업이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경제도 미국과 중국 사이 무역보복 조치가 격화됨에 따라 예측하기 어려운 수준의 불확실성을 안게 됐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1조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 매각을 통해 경제보복 조치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 가능성은 트럼프 정부의 중국 무역규제 도입 당시부터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과거에 직접적으로 이런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경고한 적도 있다.
조사기관 BMO캐피털마켓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국이 국채 보유량을 무기화할 가능성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며 “전 세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은 미국 정부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 왔다. 중국에서 국채 매입을 축소하거나 매각한다면 미국 정부가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투자처를 찾기 위해 국채 금리를 높인다면 중장기적으로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최소 3천억 달러를 들이는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한다면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에 매우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물론 미국 국채 매각은 중국 경제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이 정치적 목적을 최우선으로 두고 강력한 보복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만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보복조치에 나서며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다면 두 국가 경제에 모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는 양쪽에서 압박을 받는 ‘샌드위치 신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은 펠로시 의장의 행보가 앞으로 세계 경제에 불러올 여파를 더욱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일본 니케이아시아도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바이든 정부 기조에도 어긋나는 전략 없는 행동”이라며 “아시아 전체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