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서울 등 수도권 공공택지 개발지구 곳곳이 왕릉 등 문화재 관련 이슈로 사업 진행에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는 원자재값 급등 등으로 민간 건설업계 공급상황에도 먹구름이 낀 데 더해 수도권에서 공공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에도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태릉CC부터 3기 신도시까지 도처에 '왕릉',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난항

▲ 조선 13대 왕인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인 강릉. <문화재청>


12일 건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내 주요 공공주택지구인 노원구 공릉동 태릉골프장 일대 개발사업을 두고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1일 태릉주택지구 지정을 위해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관한 2차 주민공청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된 왕릉인 태릉과 강릉의 가치, 생태계 훼손 우려 등 강력한 반대의견만 확인하면서 주택지구 지정 과정은 여전히 난항에 빠져있다.

태릉과 강릉은 문정왕후와 명종 모자의 능이다. 태릉골프장은 태릉에서는 50미터, 강릉에서는 200미터 거리에 있다.

노원 태릉지구 등 공공택지 개발사업은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정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윤석열 정부는 규제완화를 통한 민간공급 확대에도 힘을 싣고 있다. 그래도 임기 내 수도권 130만 호, 전국 250만 호 주택공급 계획을 달성하려면 공공공급이 책임져줘야 하는 물량이 절반을 훌쩍 넘어야할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국토부는 8월 250만 호 공급 계획 구체적 내용 발표를 앞두고 수요가 많은 도심 공급에 집중하겠다는 방향성을 밝혔다.

태릉지구는 애초 계획(1만 세대)보다 규모가 줄긴 했어도 서울 도심에서 신규 주택 6500세대를 공급할 사업지다.

서울 주택공급에 마음이 급한 정부는 2022년 안에 태릉지구 지정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에는 지구계획 승인을 받아 2024년 입주자 모집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하지만 문화재 가치 보존 문제에 따른 갈등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민과 시민단체 등은 계속해서 강력하게 태릉지구 개발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올해 7월 개원한 제11대 서울시의회에도 태릉골프장 일대 공공주택지구 지정 반대 청원이 첫 번째 주민청원으로 올라왔다.

수도권 주택공급 정책의 핵심적 부분인 3기 신도시 사업도 문화재 관련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표적으로 3만3천 세대 규모의 신도시로 조성될 경기 하남 교산은 2018년 3기 신도시 계획이 발표됐을 때부터 문화재 출토 등 문제가 사업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돼 왔다.

하남 교산지구는 최근 토지보상 90% 이상 마무리되면서 사업 진행을 위한 큰 산을 하나 넘었다. 

하지만 교산지구 개발사업 일정은 문화재 발굴조사 결과에 달려있다는 시선이 업계에서는 나온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교산지구는 하남시 문화유적분포지도 196건 가운데 36.2%(71건)가 집중돼 있는 지역이다.

이에 역사와 문화재 관련 국내 학회 26곳은 2019년 공동으로 성명을 내 교산은 유적과 유물이 밀집된 문화재의 보고로 신도시 건설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 교산지구 인근인 하남 감일지구에서는 택지개발공사를 하다 백제시대 고분 50여 기가 발굴되기도 했다.
태릉CC부터 3기 신도시까지 도처에 '왕릉',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난항

▲ 조선 19대 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민씨,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인 명릉. <문화재청>


3기 신도시 중 하나인 경기 고양 창릉지구(3만8천 세대)도 처음부터 문화재 가치 보존 관련 논란을 품고 있는 지역이다.

창릉지구는 인근에 경릉·창릉·익릉·명릉·홍릉 등 조선시대 왕릉이 모여있는 세계문화유산 서오릉이 있다.

서오릉은 서쪽에 있는 다섯 개의 왕릉이라는 뜻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는 창릉을 신도시로 개발하면 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도 있다며 문제를 제기해왔고 문화재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국토부는 창릉지구 등 조선왕릉 인근 택지지구 개발에 앞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영향평가 등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토부는 2021년 11월 “창릉신도시 및 서울 태릉지구는 입지검토, 개발구상 단계부터 경관분석 등을 통해 서오릉, 태릉·강릉 등 문화재에 영향이 없도록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며 “아울러 유네스코 세계유산 영향평가를 선제적으로 진행해 세계유산의 가치 보호와 유지에 영향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세계유산 영향평가 절차가 더해지면 사업 추진 일정은 물론 평가 결과에 따라 기존 주택공급 규모 등 계획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선이 나온다.

조선왕릉 등 문화재 인근지역의 개발문제는 최근 국민적 관심도 높은 사안이다.

근래 아파트시장에서는 ‘한강뷰’만큼이나 ‘왕릉뷰 아파트’가 유명했다.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건설사 3곳이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김포 장릉 인근에 건설한 신축 아파트단지가 문제가 되면서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김포 장릉은 조선 인조의 아버지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으로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이다.

이 단지들은 이미 입주가 시작된 데다 8일 서울행정법원에서도 건설사 승소 판결이 났다. 다만 여론은 문화재 보존 필요성을 두고 들끓었다. 

문화재청도 올해 4월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통해 앞으로 문화재 인근 개발사업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도입해 문화재 가치 보존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