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담 완화, 안전진단 규제 완화 등 차기 정부 공약에 관한 기대감으로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속도조절 논의가 고개를 든다.
▲ 서울 한강 주변 아파트단지 모습. <연합뉴스>
25일 부동산시장분석기관들의 각종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부동산시장의 최대 이슈는 재건축이다.
서울과 1기 신도시 등에서는 벌써부터 재건축 추진 단지들을 중심으로 신고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에서 재건축 규제 완화의 가장 큰 수혜지역으로 꼽히는 강남에서는 압구정동 신현대11차 아파트 전용면적 183㎡ 매물이 3월 대선이 끝난 뒤 59억5천만 원에 거래됐다.
직전 최고가인 52억 원보다 7억5천만 원이 뛰었다.
서초구 잠원동의 신반포16차 전용면적 83㎡는 4월4일 25억5천만 원을 찍었다. 3월 같은 면적 같은 동 매물이 18억9500만 원에 매매됐는데 한 달 만에 6억5천만 원가량이 올랐다.
KB부동산은 25일 ‘재건축 규제 완화가 실현된다면? 서울은 강·노·양을 주목하세요‘라는 글에서 “강남의 노후 아파트들이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면서 재건축에 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강남은 재건축 규제 가운데 수익성과 직결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 여부에 따라 사업 속도가 크게 결정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강·노·양'은 강남, 노원, 양천을 일컫는다.
부동산R114의 주간 아파트가격 변동률 자료를 봐도 재건축 기대감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우성1차,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 등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단지들은 4월 셋째 주 아파트값이 평균 1500만 원에서 5천만 원까지 올랐다.
신도시 아파트값도 마찬가지다.
2기 신도시 아파트값은 내림세를 보인 반면 일산과 중동, 평촌, 산본, 분당 등 재건축 호재가 많은 1기 신도시들은 아파트값이 상승했다.
성남시 분당 삼성한신 아파트는 전용면적 171㎡ 매물이 최근 신고가인 24억9천만 원에 거래됐다. 같은 동, 같은 층수 매물이 2020년 10월 17억 원에 팔렸었던 것과 비교하면 8억 원 가까이 올랐다.
고양시 인산서구 장성4단지대명은 전용면적 130㎡ 매물이 4월 7억9500만 원에 거래됐다. 직전 최고가 6억6천만 원과 비교해 1억3천만 원이 뛰면서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일산동구 강촌라이프는 36㎡ 매물이 4월 4억1천만 원에 팔렸다. 지난해 5월 매매가 2억6천만 원과 비교해 1억5천만 원이 뛰었다.
다만 새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이 재건축 시장의 기대를 따라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서울과 경기 재건축 단지들의 집값이 다시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재건축 규제들을 풀어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4월 중에 발표하기로 했던 부동산 정책을 새 정부 출범 뒤로 미루면서 고심하는 분위기다.
인수위는 25일 1기 신도시 재건축사업을 중장기 국정과제로 검토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 속도조절에 들어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11일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정부과천청사로 첫 출근하는 길에 “부동산 가격은 안정 위주로, 신중한 방향으로 움직이겠다”며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 폭탄으로 개발이익과 투기이익을 누릴 수 있는 주택들이 쏟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도 인사청문회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는 시장 가격이 불안해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재건축 규제 완화 등 부동산 정책이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시절 뉴타운사업과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대규모 재건축, 재개발사업과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부동산 가격 불안, 투기 조장, 주거 안정성 훼손, 자산 불평등 심화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선 이후 주택가격도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 집값 상승을 자극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과거 뉴타운 정비사업 과정에서 중대형 고가 아파트로 재건축,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원래 주민들과 세입자들이 갈 곳을 잃었고 개발지역의 주택가격은 크게 뛰어올랐다고 강조했다.
또 재건축, 재개발사업을 한꺼번에 추진하면서 이주 수요가 폭발했고 이는 전세가격 급상승을 낳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은평뉴타운, 파주신도시 등의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높게 책정되면서 주택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주택 매수 수요에 불이 붙었다.
현재 서울과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 지역들의 호가와 거래 추이 등을 볼 때 이런 우려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원은 “서울 지역 매매 및 전세가격이 회복세를 보이는 국면에 들어선 것과 더불어 규제 완화 기대에 따른 시장 불씨가 쉽게 사그라들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바라봤다.
한국부동산원도 4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값 동향을 분석한 보도자료에서 “서울은 강남4구 전체 상승폭이 소폭 커졌고 양천구는 목동신시가지 위주로 집값이 오르는 등 일부 고가지역의 중대형이나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상승했다”며 “경기도 1기 신도시 등 규제완화 기대감이 있는 재건축 위주로 상승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