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와 산업은행의 역할을 강조한 것인데 이는 평소 정부와 산업은행의 정책적 합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회장의 지론을 잘 보여준다.
정부가 아무리 산업정책을 잘 짜도 이를 지원하는 산업은행 등 금융의 뒷받침이 없다면 정부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산업정책론자를 자부한 이동걸 회장이 출범을 앞둔 윤석열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산업은행을 계속 이끌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과 국민의힘이 이 회장을 향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이 회장의 거취는 앞으로 윤석열정부 초반 공공기관장 인사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일 국민의힘은 전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제기한 이른바 ‘문재인정부의 임기 말 대우조선해양 알박기 인사 강행’ 논란을 놓고 청와대는 물론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대표에 문재인 대통령 동생의 대학 동기를 선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를 넘은 알박기 인사라는 비판이 상당하다”며 “감사원의 감사가 필요한 사안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 출판 기념회에서 ‘가자 20년’이란 건배사로 스스로 민주당 편향 인물임을 드러낸 이동걸 회장의 영향력 행사 여부도 의혹으로 나오고 있다”며 “하필 문재인 대통령 동생의 동기를, 하필 친정권 인사가 회장으로 있는 산업은행이 영향력을 행사해서 하필 사장에 앉혔다니 도무지 우연으로 보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강민국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이날 ‘청와대 낙하산 좌표, 이제는 민간기업인가’라는 논평을 내고 “대우조선해양 수장을 추천하기 위한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 위원 위촉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협의 하에 이뤄진다”며 이 회장을 향한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가 전날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현 정부든 다음 정부든 정부가 눈독을 들일 자리가 아니다”며 인사 개입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공세 수위를 한층 더 높인 것이다.
정치권과 금융권에서는 이번 논란을 놓고 공공기관장 인사와 관련한 신구 권력의 갈등은 물론 이 회장을 향한 새 정부의 압박이 본격화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이 회장을 향한 새 정부의 압박은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논란부터 시작됐다.
올해 1월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보시절 부산에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직접 공약한 뒤 이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산업과 금융, 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니까 하는 말”이라며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의 공약을 깎아내렸다.
이 회장은 이후 윤석열 후보의 대통령 당선 뒤에도 별다른 입장 변화는 없었는데 윤 당선인이 인수위 출범 이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약속대로 하겠다”고 공약을 재차 확인하면서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당시 윤 당선인이 국정운영의 굵직한 정책방향이 아닌 특정 공공기관의 본사 이전 문제를 콕 짚어 말한 것을 놓고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회장은 앞으로 다시 진행해야 할 쌍용차 매각 등에서도 윤석열정부와 갈등을 겪을 불씨를 안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이 회장은 쌍용차 매각을 놓고 그동안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지원에 소극적 모습을 보였는데 업계에서는 차기 정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쌍용차 매각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본다.
산업은행은 정책 금융의 핵심 기관이다.
산업은행은 기획재정부가 지분 91.8%를 보유한 국책은행으로 산업육성, 산업구조조정, 사회기반시설 확충, 지역개발, 금융시장 안정 등 국가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해 금융산업과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산업은행 회장을 바꾼다면 새로운 정책을 펼치는 데 한결 수월할 수도 있지만 이 회장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새 정부에서 강제로 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검찰은 현재 문재인 정부 초기 각 정부부처 고위급 임원들이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에게 사표를 요구했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을 놓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이어 교육부, 통일부 등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이와 비슷한 블랙리스트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확정 받았다는 점까지 고려해 볼 때 윤석열정부가 정권 초기 임기를 남긴 공공기관장들에게 사표를 요구하는 일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공기업 인사와 관련해 “윤석열정부가 지닌 인사 방향은 상식과 공정이 순리인 인사”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사장 인사 논란과 관련해서는 “국민들께서 판단하실 것으로 생각한다. 공기업 인사와 관련해 추가적으로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