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대표적 경기방어주로 꼽히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한국전력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비용부담이 증가해 올해 사상 최대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가스공사는 석유와 천연가스 판매가격이 오르면서 해외자원개발(E&P) 사업 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세계 3위 산유국이자 천연가스 주요 생산국인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제재가 본격화하면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하고 원자재 가격이 더욱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3.41달러에,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물 브렌트유는 104.9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다.
JP모건은 국제원유 가격이 올해 2분기 평균 110달러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최대 150달러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천연가스 가격은 2월에 전달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코로나19 이전보다 4배 정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월24일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35% 급등하기도 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재고량이 줄고 가격이 불안정해지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악화돼 유럽이 국제 LNG 물량을 대량으로 끌어가면 아시아에서 LNG 현물가격의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전력의 실적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동결된 반면 연료비와 전력구입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전력은 지난해 5조8천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에만 무려 4조7천억 원의 사상 최대 분기 적자를 냈다.
올해도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비용부담이 증가하고 있어 적자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는 한국전력이 올해 1분기에 5조3329억 원, 2분기에 4조4873억 원 등 상반기에만 10조 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증권은 “에너지 가격의 추가 상승을 배제할 수 없다”며 “기준연료비 인상과 연료비 조정단가 등을 고려해도 비용부담으로 영업적자가 20조 원에 이를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에 미래에셋증권과 유진투자증권, 신영증권 등은 한국전력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한국전력은 하락장의 대표적 방어주로 꼽혀왔지만 실적부진 우려가 커지면서 체면을 크게 구기고 있는 셈이다.
한국전력이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의 영향으로 물가가 급등하고 있어 전기료 인상과 관련된 불확실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 3%를 넘어선 이후 1월까지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하면서 4%대를 위협하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4%를 넘으면 2011년 이후 11년 만이다.
앞서 정부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연이어 동결해왔다. 물가 상승이 지속되면 전기요금 인상을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가스공사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1조2397억 원, 순이익 9645억 원의 호실적을 거뒀다. 2020년보다 영업이익은 37.9% 늘었고 순이익을 내면서 흑자전환했다.
이는 도시가스용·발전용 천연가스 판매량이 늘어난 데다 국제유가 등의 상승으로 해외 종속법인 실적이 개선된 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해외 사업 수익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종속법인의 판매단가가 국제유가 및 천연가스 가격에 연동되는 구조로 수익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올해 가스공사의 해외자원개발(E&P) 사업 영업이익은 41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86%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지난해 4분기에 발생한 화재로 가동이 중단된 호주 프렐류드 LNG 개발사업이 재개되고 올해 4분기부터 아프리카 모잠비크 LNG 생산이 시작된다면 추가 영업이익도 기대된다.
NH투자증권은 올해 국제유가가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1배럴당 75달러 이상을 보이면 유가가 1달러 상승할 때 가스공사 영업이익이 70억 원 이상 개선되는 효과가 생긴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NH투자증권과 신영증권은 최근 가스공사의 목표주가를 각각 3천 원씩 높여잡았다. 유진투자증권은 가스공사 주식 투자의견을 기존 매수(BUY)에서 강력매수(Strong Buy)로 상향 조정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은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