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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임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이병기 주 일본 대사 <뉴시스> |
이병기 주일대사가 신임 국가정보원장에 지명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신임 국가정보원장 후보로 이병기 주일대사를 내정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 내정자는 안기부2차장과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청와대 의전수석 등을 역임하면서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해온 인물”이라며 “국내외 정보와 안보상황에 대해 이해가 깊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민 대변인은 “현재 엄중한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 속에서 정보당국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고 개혁을 안정적으로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돼 이 후보자를 내정하게 된 것”이라며 발탁배경을 설명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주일대사관에서 도쿄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국정원 본연의 임무는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을 보호하며 국가의 정체성을 보전하는 것”이라며 “국정원이 이런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하려면 일반적인 첩보가 아닌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정원 경력이 있는 친박인사
이 후보자의 발탁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박 대통령 당선 직후 만들어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이 후보자는 하마평에 올랐다.
이 후보자를 택한 것은 깜짝 인사를 통해 쇄신 이미지를 강조하기보다 내부인사를 발탁해 당장 시급한 국정원 개혁에 속도를 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는 내부인사이자 ‘박근혜의 사람’이며 동시에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경력을 지닌 거의 유일한 후보자였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안기부시절 제2차장을 역임한 이병기 후보자가 내부사정에 정통한 인물인 만큼 국정원 개혁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후보자가 정치권과 정부에 모두 적을 두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꼽혀 적절한 인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국정원이 대선개입 사건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무단 공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 등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만큼 정치와 관련된 인물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부에서 한 때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이나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 등 정치권과 거리가 먼 인물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장수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유력한 후보로 지목됐고 김관진 전 장관도 박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을 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달 김장수 전 실장이 남재준 전 원장과 함께 전격 경질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크게 줄어들었다. 또 김장수 전 실장의 자리를 김관진 전 장관이 넘겨받으면서 사실상 이병기 후보자 말고 신임 국정원장 후보로 마땅히 내세울만한 인물이 없었다.
안보 라인을 모두 군 출신 인사로 채우는 것이 부담스러운 점도 이 후보자의 발탁 배경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군 출신 대북 강경파들이 대북정책을 주도해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정부 안팎에서 국정원장으로 민간 출신 인사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는 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에 안보라인의 균형을 맞출 인물로 거론됐다. 또 민간 출신인 만큼 군 출신 원장들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소통부재’와 ‘군대식 업무스타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 인적쇄신 방향과 폭 주목
이 후보자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국정원 개혁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은 대북정보 기능 강화와 사이버테러, 경제안보 수호 등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맡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하고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하는 등 계속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논란을 키웠다. 최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파문이 일면서 정보기관으로서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 이 사건으로 서천호 국정원 제2차장이 물러났고 남 전 원장도 대국민 사과 후 경질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다시 한 번 국정원 개혁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며 “또 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면 반드시 강력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가 국정원장에 임명되면 가장 먼저 인적 쇄신이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 대선 때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 논란’을 일으킨 3차장과 이번에 간첩사건 증거조작 논란을 일으킨 2차장 산하 조직이 첫 번째 개혁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국정원 본연의 기능을 살리는 방안으로 조직개편도 예상된다.
현재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와 대북분석을 맡고 2차장이 국내와 대공 업무를, 3차장이 기술과 방첩 부문을 담당한다. 이는 원세훈 전 원장이 바꾼 것인데 업무가 중복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1차장과 2차장이 각각 해외와 국내를 총괄하고 3차장이 대북분석을 맡는 과거 조직 형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후보자가 외교 전문가인 만큼 안보라인에 포진해있는 대북 강경파들을 적절히 견제하며 박근혜 정부의 외교와 통일, 국방정책을 지원사격하는 역할도 담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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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5월23일 청와대에서 이병기 주 일본 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했다. <뉴시스> |
◆ 친박계 원로 그룹의 핵심 인사
이병기 후보자는 ‘친 박근혜계’ 원로 인사이자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무적 조언을 할 수 있는 이른바 ‘이너서클’의 핵심 멤버로 알려져 있다.
이병기 후보자는 1947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왔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케냐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1981년 당시 정무장관을 맡고 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서로 발탁됐다.
이 후보자는 1985년 민정당 총재보좌역을 맡으며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후 1987년 열린 13대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대통령 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과 외교부 본부대사 등을 맡았다.
이 후보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부터 정보 및 안보분야에 발을 들였다. 이 후보자는 김 전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장 제2특보를 맡았다. 이듬해부터 1998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을 지냈다.
안기부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이 후보자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그가 ‘일본통’으로 불리는 이유다.
2002년 열린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정치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다가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 후보자는 같은해 4월 열린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위원장으로 내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2년 대선 당시 이인제 자민련 의원에게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달라며 5억 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자 당직에서 물러났다.
이 후보자는 2005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그를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 고문으로 임명하면서 정계로 복귀했다.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열린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박 대통령 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았다. 이 후보자는 선거캠프에서 박 대통령에게 외교 및 안보 분야와 관련된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서 활동했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대신할 인물로 김장수 전 국방장관과 함께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재준 전 육군 참모총장이 국정원장으로 임명됐고 이 후보자는 주일대사를 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