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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
박근혜 대통령이 장고 끝에 수를 뒀다.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악수가 될지 신의 한수가 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문 후보자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4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지난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자 문제로 물러나자 후임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에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언론인이 총리에 오르는 것은 역대 두 번째다. 제3공화국 시절 제8대 총리를 지낸 최두선 전 동아일보 사장 이 유일했다. 그런데 최 총리는 직접 기자 생활을 한 적이 없다는 점 때문에 문 후보자가 총리에 취임에 성공하면 사실상 첫 언론인 출신 총리가 된다.
박 대통령은 왜 ‘문창극 카드’를 빼들었을까?
언론인의 장점을 높이 샀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인은 사태를 직시하고 분석하는 데 능력을 발휘한다. 문제의 핵심을 빨리 파악한다. 또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소통능력도 뛰어나다. 이런 점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를 개조하려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구상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민경욱 대변인은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 대안을 통해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 온 분”이라며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 국정과제를 제대로 추진해 갈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문 후보자는 국정경험이 없다. 문 후보자도 자신을 “국정경험도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이 이미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 등 두 명의 부총리를 두겠다고 밝힌 만큼 국정경험은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청주 출신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지방선거에 충청도 민심은 완벽히 박 대통령에 등을 돌렸다. 이런 까닭에 여권 내부에서 지방선거 이후 충청 출신 총리론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도 깊이 검토되었을 것이다. 안대희 후보자가 낙마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박 대통령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언론계의 한 관계자는 “문 후보자가 반듯하고 깨끗한 사람이라 청문회에서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후보자의 강한 보수적 성향은 상당한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문 후보자는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 핵무장론을 주장하고 무상급식을 비난하는 등 일부 극우적 성향을 드러냈다고 정치권은 평가한다. 당장 야당은 “극단적 보수 성향으로 국민화합과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강단있는 언론인을 선택한 이유
문 후보자는 1975년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해 40년 가까이 중앙일보에서만 일했다. 그는 지난해 중앙일보 대기자(부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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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
문 후보자와 다르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현직 언론인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나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에서 권언유착이라는 말도 나오고 ‘언피아’도 관피아 만큼 척결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현직 언론인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기웃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정권의 언론장악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언론인 출신인 문 후보자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총리에 지명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이 총리 후보로 지명된 적이 있었지만 그는 기자 출신은 아니었다. 장대환 사장은 부동산 투기와 자녀 위장전입 의혹으로 낙마했다.
박 대통령이 언론인 출신을 선택한 것은 국가개조를 제대로 추진하고 싶은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총리가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강단이 있어야 한다. 정관계 인물들에 비해 언론인 출신은 상대적으로 공직사회와 직접적 이해관계로 얽혀있지 않다.
또 언론인다운 객관적이고 넓은 시야로 공직사회의 적폐를 걷어내 주길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공직사회의 적폐를 바로잡으려면 공직사회와 거리가 먼 인물을 총리로 지명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았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에서 뚜렷이 드러난 여론과 청와대의 시각차이가 언론인 출신 총리 후보를 지명하게 만들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새 총리가 여론을 반영해 정부를 이끌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이 “국민의 목소리에 가까운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문 후보자가 내각에 민심을 정확히 전달하길 기대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기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 '충북의 딸' 재확인 인사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를 지명한 이유는 문 후보자가 충청권 출신인 점도 크게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대전, 충북, 충남, 세종 등 충청권 광역단체장을 새정치민주연합에 모두 내줬다. 이에 따라 지방선거 이후 충청권 민심을 달래기 위해 총리에 충청권 출신 인사를 지명해야 한다는 ‘충청권 총리론’이 고개를 들었다. 박근혜 정권이 충청권을 너무 홀대했다는 여권 내부의 자기반성도 나왔다.
애초 지방선거 직후 총리후보 지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기에 충청권 참패가 총리지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총리후보 지명이 지방선거 다음 주까지 미뤄지면서 충청권 총리론은 더욱 힘을 얻었다. 지방선거의 영향으로 총리후보가 바뀐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충청권 출신 총리후보를 지명했지만 그동안 거명됐던 인물들과 전혀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충청권 총리론으로 물망에 오른 인물들은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조순형 전 의원 등이었다. 특히 정치와 행정 경험을 두루 거친 심대평 위원장은 지방자치발전위원장이 총리급이라는 점에서 더욱 유력한 인물로 꼽혔다.
박 대통령이 충청권을 끌어안기 위해 지명한 문 후보자가 총리로 임명되면 충북 출신 첫 총리가 된다. 김종필, 정운찬 등 충남 출신 총리는 있었으나 지금까지 충북 출신 총리는 없었다.
박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충북 옥천이 고향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인연으로 그동안 '충북의 딸'로 불리면서 대선 등을 통해 충청도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왔다. 이번에 충북 출신 총리후보를 지명해 자신이 충북의 딸임을 확인해주고 싶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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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
◆ 청문회 통과할까
차기총리 지명의 핵심 키워드는 ‘철저한 검증’이었다. 이전에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은 큰 허물 없이 무난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전관예우 논란으로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낙마했다.
그만큼 인사 검증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일부에서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며 “청문회 통과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도 나왔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차기총리 후보 인선에 더욱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총리지명까지 시간이 걸린 이유다.
민경욱 대변인은 총리후보 지명을 발표하며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본인의 철학과 소신 능력보다 개인적인 부분에 너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가족의 반대 등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았다”고 총리후보 인선에 시간이 걸린 배경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번에도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 안대희 전 후보자에 이어 연이어 인선에 실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어느 때보다 더욱 신중하게 후보자를 선별해 반드시 인사청문회를 통과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여러 인사들이 총리후보로 거론됐지만 쉽사리 선택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를 선택한 것도 이런 점이 배경으로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는 지난해까지 언론사에 재직했기 때문에 정치권이나 고위 관료들에 비해 신변의 잡음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문 후보자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 협회장과 관훈클럽 총무를 지내 언론친화적인 데다 여야 정치인들과 두루 소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치권에서 “문 후보자는 오랜기간 언론계에 몸담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인사검증 과정에서 언론의 뭇매를 맞을 가능성도 적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문 후보자의 앞길이 순탄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문 후보자의 총리후보 지명에 대해서 “극우 보수논객인 문창극 총리 후보를 지명한 것은 국민분열 국가퇴조를 가져오는 인사로 극우 꼴통시대를 여는 신호탄”이라는 트윗을 남겼다. 박 의원은 “전직 대통령께 막말을 일삼던 실패한 언론인”이라며 “낙마를 위해 총력 경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문 후보자가 지난해 5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발기인 총회에 이사로 참여했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초대이사장을 맡은 것으로 나타나 이 번 인사가 김기춘 실장의 천거에 의해 이뤄졌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청문회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벌써부터 인사청문회가 험난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칫 문 후보의 인사 청문회가 극심한 좌우 논리의 대결장이 될 수도 있고, 그만큼 우리 사회에 이념적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