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승계를 원하는 노조와 정치권의 압박이 강한 점을 고려할 때 유 행장은 고용승계에 유리한 전체매각을 추진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 이사회가 소매금융 출구전략을 놓고 단계적 폐지 준비절차도 검토하기로 하며 소매금융 매각 없이 청산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 행장은 씨티그룹의 아시아지역 소매금융 철수전략에 맞춰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을 전체적으로 매각하거나 카드, 자산관리 등 사업부문을 쪼개 매각하는 방식 등을 검토해왔다.
특히 전체매각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소매금융 출구전략을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왔으나 3일 이사회에서는 단계적 폐지 준비절차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를 놓고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단계적 폐지란 사업을 바로 청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며 "어떤 형태로든 매각이 실패하면 마지막으로 철수를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소매금융 출구전략과 관련해서 아직 확정된 내용이 없다"고 덧붙였다.
단계적 폐지 준비절차를 검토하겠다는 방안만 추가됐을 뿐 소매금융 매각을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은 바뀐 게 없다는 것이다.
유 행장은 7월 안에 소매금융 출구전략 실행의 윤곽을 제시하기로 하며 출구전략 결정을 다시 미뤘다.
유 행장이 소매금융 출구전략을 놓고 고심을 이어가는 이유는 씨티그룹과 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씨티그룹은 수익성 제고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13개국에서 소매금융 출구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한국씨티은행 이사회는 고객 및 직원 모두의 이익을 위해 소매금융 철수 과정을 단기간에 끝내고자 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은 소매금융 전체를 인수할 기업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들여서라도 소매금융 철수를 진행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러 기업을 대상으로 한 부분매각보다는 한 기업을 상대로 하는 전체매각이 고용승계 협상을 진행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어 인수 가능 후보군이 대규모 전략 및 계획을 빠르게 수립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내세운다.
유 행장은 모기업인 씨티그룹의 전략을 수행하는 동시에 노동조합과의 관계도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소매금융부분을 철수해도 남아있는 기업금융부분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 행장은 지난해 10월 한국씨티은행장에 선임되며 3년 임기를 보장받았다.
유 행장이 노동조합의 고용승계 요구를 무시한 채 소매금융 출구전략을 단기간에 마무리하는 것은 남은 임기 동안 경영활동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은 고용승계가 보장되지 않은 출구전략 추진과 관련해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진창근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날 오후 한국씨티은행 본점 주차장에서 규탄대회를 개최하고 "씨티그룹이 일방적으로 졸속적 소매금융 부분매각을 추진한다면 이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실직 위기에 처한 2500여명 직원들에 관한 고용안정방안을 먼저 마련하라"고 말했다.
유 행장이 소매금융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실업사태를 발생시킨다면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관여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앞서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은 4월23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만나 △한국씨티은행과 관련한 금융위원회의 인허가 업무 중단 △소매금융 전체매각, 분리매각, 단계적 폐지 등 각 시나리오별 전략 및 계획 보고 △전원 고용승계 및 근로조건 유지 최우선 반영 등의 내용을 담은 공식 요구서를 제출했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4일 열린 최고위원회 모두 발언에서 "대규모 실업사태를 야기할 수 있는 씨티은행 소매금융 부분매각이나 자산매각을 결코 인가해서는 안된다"며 "외국계 자본의 먹튀 방치로 또다시 국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국회는 물론 금융당국을 비롯한 범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 행장은 전체매각 성공을 위해 소매금융부분 인수가치를 높이는 데 온힘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씨티그룹과 노동조합 모두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고용승계를 포함한 전체매각을 이른 시일 안에 완료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소매금융 전체매각은 인수후보군으로 거론되던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와 DGB금융·BNK금융·JB금융지주 등 지방금융지주, OK금융그룹, 카카오뱅크, 현대카드 등이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전체매각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씨티은행에 정식으로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금융사들이 4곳 이상이며 일부는 전체인수도 희망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 행장이 소매금융 인수가치를 더 높인다면 전체매각이 이뤄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셈이다.
유 행장은 한국씨티은행이 강점을 지닌 고액자산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늘리고 씨티카드 사용 고객에게 혜택을 강화하는 등 소매금융 인수가치를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7일 고액자산을 보유한 고객을 대상으로 맟춤형 개인비서서비스를 선보였다. 앞서 1일에는 씨티 뉴 캐시백 카드의 적립혜택을 간편결제까지 확대하고 입출금통장 및 펀드 가입고객을 대상으로 경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실시했다.
소매금융 전체매각가격은 2조 원가량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씨티은행의 순자산 6조2942억 원을 금융지주 평균 주가순자산비율에 대입해 추산한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종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