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왼쪽)이 성과주의 도입을 추진하는 배경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의중이 들어 있다. <뉴시스> |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은행권 성과주의 도입의 총대를 멨다.
권 행장은 기업은행의 임금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성과주의 도입에 난항이 예상된다.
은행들은 권 행장의 시도가 성공할지 주목한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인 동시에 시중은행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기업은행에 성과주의가 성공적으로 적용되면 시중은행들도 뒤따를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기업은행과 같은 금융공기업에 성과주의를 우선 도입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기업은행을 시작으로 은행권에 성과주의를 확산하려고 한다. 그는 은행의 수익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성과주의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권선주, 성과주의 도입 가시밭길 전망
권 행장은 연초 열린 ‘2016년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기자들에게 “올해 업무계획에 성과주의 도입이 들어 있다”며 “태스크포스을 만들어 성과주의와 관련된 내용을 도입하려 한다”고 밝혔다.
권 행장은 지난해 말까지 성과주의 도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권 행장이 올해 성과주의 도입을 직접 언급하면서 기업은행 내부에서도 관련 논의가 가속화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태스크포스를 꾸려 직무분석 기준을 세우고 지금보다 더욱 세부적 직원평가 모델을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은 전체 임금에서 성과급의 비중을 30%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현재 전체 임금에서 성과급의 비중이 17% 수준이다.
권 행장이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데 열쇠는 결국 노조의 설득이다.
권 행장은 신년인사회에서 “성과주의 도입에 대해 기업은행 노조와 합의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노조가 지난해 말 성과주의를 도입하면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밝힌 점을 의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은행 노조는 성과주의 도입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4일 열린 선거에서 나기수 노조위원장을 새로 선출했다. 나 위원장은 지난해 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성과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번 선거에서 ‘성과연봉제 도입 저지’를 주요공약으로 내걸었다.
나 위원장은 “성과주의 도입의 전제조건인 개인의 성과측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기업은행 직원들은 성과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 은행권 성과주의 확산을 판가름할 기업은행
권선주 행장은 금융공기업인 기업은행에 성과주의를 도입해 은행권의 모범사례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
|
|
▲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
금융공기업은 정부에서 운영하거나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금융기업을 뜻한다. 기업은행의 최대주주는 전체 지분의 51.5%를 보유한 기획재정부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KDB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성과주의 모델을 만들면 향후 민간 금융회사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예시로 둔 금융공기업 4곳 가운데 기업은행에 성과주의 도입을 가장 강하게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전체 직원 1만2495명을 보유하고 있다. 산업은행 등 다른 금융공기업보다 훨씬 많은 직원을 두고 있어 성과주의를 도입하면 은행권에 미칠 파급력이 그만큼 크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은 기업은행에서 성과주의 도입을 놓고 노사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하고 있는 상태”라며 “기업은행의 성과주의 도입에 따라 시중은행에 성과주의가 확산될지 아닐지 판가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권 행장은 그동안 정부시책을 앞장서 시행해 왔다.
권 행장은 지난해 초부터 기업은행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참여를 추진했다. 핀테크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는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금융정책이다.
권 행장은 지난해 상반기 기업은행의 신규채용 규모를 기존의 2배로 늘리기도 했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금융회사의 채용인원 확대를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그러나 권 행장의 이런 태도가 기업은행의 성과주의 도입에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 행장이 적극성을 보일수록 성과주의 도입에 그만큼 힘이 실리겠지만 기업은행 노조의 반발도 더욱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IBK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11월 성명서에서 “정부는 금융공기업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개구리 해부 실험을 하듯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기업은행은 실험대 위의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임종룡이 성과주의 강조하는 이유
권선주 행장은 기업은행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성과주의 도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은행권의 성과주의 확산을 강조하고 있는 이상 권 행장도 계속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지난 12일 금융정책수요자 간담회에서 “금융개혁을 체감하려면 금융권에 성과주의 문화가 먼저 뿌리내려야 한다”며 “보수뿐 아니라 평가, 인사체계, 교육 프로그램 등도 성과주의에 따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
|
▲ 임종룡 금융위원장. |
금융위는 이르면 1분기 안에 금융공기업을 대상으로 성과주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이 가이드라인에 금융공기업의 성과급 비중을 기본급의 평균 30% 이상으로 책정하는 방안을 포함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금융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성과연봉제를 전면 확대할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된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금융공기업에서 고성과자와 저성과자 간 성과급 격차가 평균 1.5배에 불과하다”며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별적 보상을 보편화하기 위해서라도 격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금융공기업의 성과연봉제 확대에 따라 인건비 예산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임 위원장은 은행권에 성과주의를 도입해야 은행의 수익 하락을 막을 수 있다고 바라본다. 은행들은 대부분 해마다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직원들의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잘하는 사람이 더 좋은 대우를 받도록 금융권의 임금체계를 차등화하겠다”며 “공공부문이 성과주의를 선도해 민간으로 확산하도록 금융공기업 노동조합을 설득하는 노력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은행 7곳의 직원 평균연봉은 지난해 3분기 기준 7900만 원에 이르렀다. 이 연봉은 전체 산업의 노동자 평균급여보다 약 40%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은행원 1인당 평균 생산성은 2012년 8327만 원에서 2014년 6616만 원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임 위원장이 정부의 비효율을 은행직원들의 탓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문호 금융노조위원장은 “현재 은행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임금체계가 아니라 핀테크, 기술금융, 기업 구조조정 등 민간기업의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는 관치금융”이라고 꼬집었다.
김민석 금융노조 정책국장도 “성과주의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은 관치금융 때문에 발생한 손실을 은행권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은행권에서 가장 폭넓은 성과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산업은행은 매우 좋지 않은 실적을 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