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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4월4일 회계감사 지정제 확대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한 공청회를 열고 있다. |
회계사 초임연봉은 외환위기 때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 15년 이상 시간이 지났는 데도 오히려 외환위기 때보다 낮은 연봉을 받기도 한다.
회계사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 추락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올해 초 대형 회계법인이 공인회계사를 계약직으로 뽑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10년 전 30대 1 정도 되던 공인회계사 시험 경쟁률은 최근 6대 1로 낮아졌다. 서울대가 배출하는 회계사 수도 3분의 1로 감소했다. 회계사 지망생들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한 때 회계사는 ‘사’자 돌림 직업 가운데 하나였다. 법대에 변호사가 있다면 상경대에 회계사가 있었다. 공인회계사시험은 고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영광스런' 자리였다.
회계사의 위상은 왜 이렇게 추락하고 있는 것일까?
◆ 회계사를 계약직으로 뽑는 대형회계법인
EY한영회계법인은 지난해 9월 30명의 계약직 회계사를 뽑았다. EY한영은 삼일, 삼정, 안진과 함께 4대 회계법인으로 불린다. EY한영에서 계약직 회계사를 뽑은 것은 현재 회계사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법인에서 방학 동안 대학생을 교육 차원에서 뽑는 경우는 있어도 공인회계사를 계약직으로 채용한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EY한영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운 탓에 회계법인 신규채용이 줄었다”며 “한국공인회계사회와 금융감독원 이 회계사를 더 채용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계약직 회계사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암울하다. 한 회계법인의 회계사는 “감사시즌의 경우 잡일이 많아 이 때 일하는 것으로 실무능력을 키우기 어렵다”며 “바쁜 감사시즌에만 일하는 소모품처럼 쓰일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EY한영 관계자는 “입사를 못한 회계사들에게 연수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전문직인 만큼 다르게 봐 달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4대 회계법인이 채용한 신입사원은 653명으로 2012년 866명에 비해 200명 이상 줄였다. 회계사 합격자가 904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200명 이상 줄어든 것은 회계사들의 취업문턱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2012년 시험을 통과한 회계사 중 85%는 4대 회계법인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제 이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국내 최대 회계법인들이 채용을 줄이고 있다는 것은 중소형 회계법인들의 경우 채용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회계법인은 회계보다 컨설팅에 적합한 인재를 선호한다”며 “비회계사 채용이 많아지면서 회계사의 입지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 회계법인에서 도망치듯 떠나는 회계사들
회계법인에 들어가기 위한 문턱도 높아졌지만 열악한 처우와 근무여건으로 회계법인을 떠나는 회계사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회계법인이 아닌 일반기업에서 활동하는 회계사가 2010년 4300명에서 2012년 5천 명 이상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2010년 당시 국내 회계방식을 국제회계기준으로 바꾸면서 특수 호황을 누렸던 점을 고려할 때 사정이 악화된 지금 더 많은 회계사들이 회계법인을 빠져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형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는 한 회계사는 “4대 법인 모두 내년에 신입사원을 대거 뽑을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며 “회계법인을 빠져나간 회계사가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사들이 회계법인을 떠나는 이유는 일이 늘어났지만 임금은 몇년째 똑같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으로 이직한 회계사는 “평일 새벽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과거에 비해 두 배는 많아진 것 같다”며 “반대로 임금은 수년째 동결 상태”라고 말했다.
4대 회계법인의 초봉은 대개 3800만 원 안팎이다. 외환위기 때 회계사의 초봉이 4천만 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초봉은 4천만 원 전후로 외환위기 전후에 비해 두 배 이상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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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인회계사 시험보는 수험생들 |
회계법인들의 처우도 열악하다.
회계법인을 나와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여성 회계사는 “회계법인에서 대기업 수준의 복지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회계법인이 임신한 회계사도 계속 지방출장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몇몇은 유산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안진회계법인에서 근무하던 부장급 간부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과로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부실감사와 그 책임에 대한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 언론사에서 회계사 290명을 대상으로 “스스로 작성한 감사보고서에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은 결과 7점 만점에 3.3점으로 나타났다.
회계사들이 본인의 감사결과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회계사들은 자칫 잘못하면 법정에 불려 갈 수도 있다는 엄청난 부담을 갖고 지낸다.
회계사들의 업무가 늘면서 개별 감사업무에 투입되는 인원과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 결과 부실감사가 늘었고 감사결과를 확신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 7급 공무원 대접받는 회계사
회계사가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이직뿐이다. 그러다 보니 이직을 고민하는 회계사들은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이직도 쉽지 않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회계사는 “공기업 회계 담당 자리를 놓고 회계법인을 빠져나온 회계사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며 “공기업 이직이 정말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사내 친목 게시판에 “신입공채에 회계사들이 다수 들어왔다”며 “신입사원들이 회계사와 비회계사로 나뉠 정도”라는 글도 올라왔다.
금융공기업의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금융감독원의 경우 매년 선발하는 50명의 신입직원 중 경제와 경영부문 직원의 80%가 회계사들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공인회계사 자격증은 서류전형 때 몇 점을 높여주는데 그 몇 점이 당락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지난 1월 회계사를 7급 공무원으로 뽑았다. 회계사들이 경력직 공무원으로 옮기면 대개 5급 대우를 해주던 시대는 먼 얘기가 됐다.
부산시 관계자는 “처음 회계사를 7급으로 뽑을 때 회계사 단체에서 직급이 너무 낮다며 회계사들의 응시를 만류하는 소동이 있었다”며 “하지만 일반 행정직 7급 공채의 경쟁률이 300대 1를 넘는데 계약직 신분에서 60세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신분으로 바뀌는 점을 고려하면 7급이 적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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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서울대학생 수를 조사한 결과 2004년 153명에서 100명이상 줄어든 49명으로 나타났다. |
◆ 회계사의 지위는 왜 떨어졌나
현재 공인회계사는 총 1만6천여 명에 이른다. 여기에 수습중인 공인회계사 2천 명을 합치면 1만8천 명으로 늘어난다. 2004년 5천 명에서 3배 이상 급증했다. 매년 900명 안팎의 회계사가 쏟아져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머지않아 공인회계사는 2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회계사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회계법인들은 감사업무를 확보하기 위해 저가수주에 나섰다. 과거 회계법인 앞에서 쩔쩔매던 기업인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회계법인은 저가수주가 늘어남에 따라 경영방식을 바꿨다. 고용 회계사들의 업무량은 늘리고 급여는 동결했다. 회계사들은 또 회사와 장기계약을 맺기 위해 회계감사를 할 때도 회사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됐다. 회계사는 회계법인과 회사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회계사의 사회적 지위가 떨어지자 회계사 시험 경쟁률도 약해졌다. 2014년 회계사 1차 시험 응시자는 1만500명으로 4년 전 보다 5천 명 가량 줄었다.
회계사가 되려는 서울대 학생이 확 줄어든 것도 회계사의 추락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2004년 159명이었던 서울대 출신 공인회계사 합격자는 2013년 43명으로 줄었다. 서울대 학생들이 그만큼 회계사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계사를 준비하는 한 학생은 "회계사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며 "회계사는 이제 상경계열 대학생이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을만한 자격증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